최근 수정 시각 : 2024-01-28 09:44:21

김률



金律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통일신라 말기 신라의 관료. 관등은 아찬[1]이다. 아찬인 점으로 볼 때 진골귀족이거나 6두품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2. 생애

920년 후백제대야성을 함락시킨 후 진례성까지 진격하자, 경명왕은 김률을 고려에 사신으로 보내 지원을 요청하였다. 왕건은 군사를 보내 신라를 지원했고, 견훤은 고려의 지원군 소식을 듣고 후퇴하게 된다.

김률이 고려에 방문했을 때, 왕건은 그에게 신라의 세 가지 보물 중 천사옥대(성제대)가 신라에 그대로 있는지 물었지만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천사옥대는 수소문 끝에 찾아서 남고에 보관했다가, 신라가 항복한 후인 937년에 경순왕이 바쳤다고 한다.

3. 기타

  •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도 등장한다. 여기서는 927년 후백제군이 급습한 서라벌 전투에서 신라군 500명을 이끌고 후백제군과 싸우는 모습이 그려졌다. 신라군은 중과부적으로 전멸하고, 김률도 북을 치면서 항전하다 화재에 휩싸이면서 장렬히 사망하고 만다.[2]

[1] 신라 17관등 중 6관등에 해당된다.[2] 한편 경애왕은 박씨 왕실에 불만을 품은 유염, 김응겸 등이 후백제와 내통해 정보를 차단하면서 후백제군이 신라를 침공하고 있는 것도 모르고 포석정에서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그러다 왕궁에서 도망친 내관으로부터 전말을 듣고 대피하려다가 후백제군에게 사로잡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