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律
생몰년도 미상
1. 개요
통일신라 말기 신라의 관료. 관등은 아찬[1]이다. 아찬인 점으로 볼 때 진골귀족이거나 6두품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2. 생애
920년 후백제가 대야성을 함락시킨 후 진례성까지 진격하자, 경명왕은 김률을 고려에 사신으로 보내 지원을 요청하였다. 왕건은 군사를 보내 신라를 지원했고, 견훤은 고려의 지원군 소식을 듣고 후퇴하게 된다.김률이 고려에 방문했을 때, 왕건은 그에게 신라의 세 가지 보물 중 천사옥대(성제대)가 신라에 그대로 있는지 물었지만 대답하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천사옥대는 수소문 끝에 찾아서 남고에 보관했다가, 신라가 항복한 후인 937년에 경순왕이 바쳤다고 한다.
3. 기타
-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도 등장한다. 여기서는 927년 후백제군이 급습한 서라벌 전투에서 신라군 500명을 이끌고 후백제군과 싸우는 모습이 그려졌다. 신라군은 중과부적으로 전멸하고, 김률도 북을 치면서 항전하다 화재에 휩싸이면서 장렬히 사망하고 만다.[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