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 출생 | 생년 미상 |
평안남도 강서군 | |
사망 | 1919년 3월 |
평안남도 강서군 |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일제강점기 당시 3.1 운동이 발생하자 평안남도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한다.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2. 생애
김면호는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평남 대동군 금제면(金祭面) 반석면(班石面) 상사리(上四里) 원장(院場) 장날에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였다. 당시 평안남도 일대에서 만세시위를 준비하던 중 모락회 교회의 간부 10여명이 일제 헌병에 의해서 강제 연행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세운동은 3월 4일에 시작되었고 김면호도 이때 청년들을 이끌고 시위운동 준비중에 붙잡힌 동지들을 구하기 위해 모락장으로 행진하였다. 김면호는 시위군중을 주도하며 모락장 입구까지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하여 나아갔다. 시위에 참여하는 군중은 순식간에 3,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그때 잠복하고 있던 일본 헌병들이 총을 발포하며 이들을 저지하였지만, 오히려 시위군중들은 이에 투석으로 맞서며 계속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김면호는 일경들이 쏜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1]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공훈록 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