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47a0> 출생 | 1889년 5월 12일 |
평안남도 덕천시 | |
사망 | 1923년 9월 6일 |
평양형무소 | |
직업 | 독립운동가 |
상훈 |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
1. 개요
3.1 운동에 참여하고 대한청년단에 참여하여 만주지역에서 무장투쟁을 벌인 독립운동가.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2. 생애
1889년 5월 12일 평안남도 당시 덕천군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 운동에 참가하였고 만주로 망명하였으며 1921년에 대한청년단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종사하였다. 1920년에는 김성극, 홍두식 등이 만주 지역에서 조직한 광복단에 가입하였다.1921년 1월에는 무장투쟁에 참여하여 왕익붕 등의 동료들과 과 함께 평안남도 덕천군에서 활동을 하던 도중에 같은 달 27일 밤에 동군 태극면 영창리의 산 일대에서 태극면 주재 일본 순사 4명을 사살하고 26연발식 권총을 빼앗은 뒤 도피하였다.
그러나 왕익붕을 비롯한 그의 동료들은 얼마 후 체포되었으며, 그는 같은 해 5월까지 평안북도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등 계속 활동하다가 평안북도 강계시 인근에서 일제 경찰들에 의해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결국 1923년 3월 2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고 평양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1923년 6월 20일 기각되고 말았다. 결국 사형이 확정되었으며 1923년 9월 6일 사형을 당하며 순국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