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30 07:17:26

김명하

1. 개요2. 생애3. 참고 문헌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독립유공자 김경하의 친동생이다.

2. 생애

1900년 8월 30일 평안북도 강계군 강계읍 동부동에서 출생했다. 1919년 4월 8일, 그의 형이자 영실중학교 교사를 맡고 있던 김경하는 같은 영실중학교 교사인 정준, 강계읍내 교회의 장로이자 명신학교 회계인 한봉민과 협의하여 강계읍내에서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결의했다.

당시 영실중학교에 재학하고 있던 김명하는 형으로부터 태극기를 제작할 것을 지시받고, 동창생인 김성길, 문태선, 강석문, 김형준 등과 함께 김성하의 집에서 2천여 매의 태극기를 제작하고 싸리나무를 구하여 여기에 대를 매었다. 또한 2천여 매의 독립선언서로 별도로 등사되었다.

1919년 4월 8일 오전 11시 남장대교회의 높은 종각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지자, 영실중학교 학생을 중심으로 한 시위군중이 몰려들어 독립만세시위를 개시했다. 이때 김명하도 군중과 함께 헌병분견소를 지나 북문을 향해 행진했다. 이에 일본 기마헌병들이 총검을 휘두르며 위협하다가 무차별 사격을 감행했다. 군중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해산되었다.

이후 체포된 김명하는 신의주지방법원에서 태형 90대를 선고받고 5월 16일 이후 3일간 하루에 30대씩 태형을 받았다. 그러나 태형을 받은 후유증이 심하여 1919년 5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김명하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

3. 참고 문헌

  •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