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22:06

김문준

<colbgcolor=#0047a0> 출생 1894년 2월 10일
제주도 제주시
사망 1936년 5월 22일
일본 오사카
직업 독립운동가
상훈 건국훈장 에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서 노동운동을 한 독립운동가. 200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2. 생애

김문준은 1894년 2월 10일 제주도 제주시 조천리에서 태어났다. 1910년 사립 의신학교 보통과를 졸업한 후 1912년에 제주공립농림학교를 졸업하였다. 같은 해 그는 조선총독부농림학교에 입학해 1915년에 졸업한 후 조선총독부 권업모범장의 직원이 되었다. 이후 그는 동료들과 함께 제주도에 구좌중앙교라는 사립학교를 개설하여 교장으로 2년간 재임하였다.[1]

1927년 7월에 일본의 심한 간섭으로 그는 일본에 건너갔고 고무공장에서 근무하면서 노동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는 조선노동총동맹 산하의 오사카 조선노동조합 집행위원, 오사카 노동조합 북부지방 상임집행위원 등을 맡게 되었다. 이어 1928년 5월에는 중앙집행위원으로 선임되었고 1929년에는 간사이지방협의회 집행위원장 등에 취임하였다.[2] 같은 해 그는 제주도 출신 소년들을 중심으로 오사카조선소년동맹을 조직하고 제주도와의 왕래를 도모하는 제주통항조합준비위원회를 결성하였다.[3]

1930년 그 해 조선노동총동맹이 일본노동조합전국협의회로 해소되려자 이에 강력히 반대하였다. 그러나 동맹은 결국 해소되고 전협이 되었고 김문준은 그 해 5월에 전협 일본화학산업노조 오사카지부의 책임자가 되었고 각종 선전물과 격문을 배포하며 항일운동을 전개하고 일본공산당의 확대를 주도하였다. 결국 그는 오사카 고무공장의 파업을 배후에서 지도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1932년 4월 12일 오사카공소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아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1935년에 석방된 그는 민중시보 발간 및 일본공산당 재건운동과 노농후원회와 혁명가 구원회 등을 조직하였다. 동시에 조선인들을 이끌며 일본인들과 연계하였다. 그 해 민중시보를 발간해 재일 조선인들을 지원하고 그들의 여론을 보도하고 민중운동-민족운동의 기관지로서의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는 내선 융화 정책에 저항하면서 재일 조선인 노동자, 상인, 해녀 등의 노동과 생활, 보건 위생, 교육, 문화, 스포츠 등의 차별당하는 조선인들을 대변하였고 그들의 권리신장을 주장하고 나섰다.[4]

인민전선의 결성에 힘을 쓰던 김문준은 일경에게 체포되어 구속되어 있던 중 폐결핵이 악회되었고 병보석으로 풀려났다. 그 후 오사카에 있는 한 요양원에 입원했으나 1936년 5월 26일 43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하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1] 김문준, 세계한민족문화대전[2] https://www.jeju.go.kr/culture/history/person.htm;jsessionid=6HZH4OWNRLxw8yKe35tnpjKOw9Hqb9wNp9U5fjioGgnx81bP95COfGSLrnHrgfm2.was1_servlet_engine1?pageSize=95&act=view&seq=598[3] 김문준, 세계한민족문화대전[4] 김문준, 세계한민족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