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북부지방 사람들을 차별하는 조선 조정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홍경래를 만나게 되었으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반란 계획에 동참하기로 결심한다. 이에 따라, 군사를 훈련을 시키는 등 홍경래 밑에서 반란 준비를 돕는다. 1811년에는 홍경래에 의해 반군의 부원수로 임명되어졌다. 그 뒤, 난이 발생하자, 북진군을 이끌고 남쪽으로 진격하여 곽산을 점령하는 활약을 펼친다. 곽주를 점령한 뒤에는 홍경래의 남군과 평안북도 정주에서 합세하고, 박천 송림리에 모인다. 하지만, 이곳에서 관군과 맞딱트리게 되고, 패배를 맛본다. 이 전투를 게기로, 점령했던 여러 고을도 차례데로 함락되자, 그는 정주성으로 후퇴했고, 성 안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였으나, 결국 관군이 쏜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