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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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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82e59><colcolor=#fff> 박근혜 정부 제3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
김상률
金尙律 | Kim Sang-yule
파일:/image/003/2014/11/18/NISI20141118_0010361738_web_99_20141118143203.jpg
출생 1960년 3월 12일 ([age(1960-03-12)]세)
서울특별시
재임기간 박근혜 정부 제3대 교육문화수석비서관
2014년 11월 18일 ~ 2016년 6월 7일
학력 대일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인문과학대학 (영어영문학 / 학사)
한양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 / 석사 · 박사)
뉴욕 주립대학교 버팔로대학원 (박사)
가족 배우자 오경희, 슬하 2남
경력 숙명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부 교수
숙명여자대학교 사회봉사실장
숙명여자대학교 대외협력처장
국립도서관 자문위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국제분과위원장
한국대학국제교류협의회 회장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비서관 (제3대 / 박근혜 정부)

1. 개요2. 생애3. 정치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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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교수. 前 청와대 교육문화수석, 숙명여자대학교 교수.

2. 생애

1960년 3월 12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1979년, 대일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4년 한양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한양대학교 대학원에서 찰스 디킨스의 사회관을 연구한 석사 학위 논문 「Dickens의 이상적인 사회관 : Bleak house와 little Dorrit를 중심으로」으로 영어영문학 석사 학위를, 1997년 8월에는 동 대학원에서 「Ralph Ellison의 탈식민지적 상상력」이라는 박사 학위 논문으로 영어영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미국으로 유학하여 1999년 뉴욕 주립대학교 버팔로 대학원에서 「The Postcolonial Wright : W/ri(gh)ting Violence in His Early Works」(탈식민 지식인 리처드 라이트 - 폭력의 글쓰기)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이 논문은 미국 흑인문학과 폭력에 관해 다룬 것이었다.

2000년 3월 숙명여자대학교의 교수로 임용된 후, 2003~2007년 숙명여자대학교 사회봉사실장, 2008~2012년 숙명여자대학교 대외협력처장을 역임했다.

그 외에 국립도서관 자문위원, 한국대학국제교류회 회장, 한국 풀브라이트 동문회 부회장, 유엔협회세계연맹 상임고문, 한국비평이론학회 부회장 등을 맡았다.

2014년 11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교육문화수석에 임용되었다. 정치성향상 오히려 진보쪽에 가까운 인물이었는데,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 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되었다.

3. 정치 성향

2005년 탈식민주의 시각에서 미국문화를 비판한 ‘차이를 넘어서’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 책에서 “북핵은 열강에 에워싸여 있는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할 때 민족 생존권과 자립을 위해 약소국이 당연히 추구할 수밖에 없는 비장의 무기일 수 있다.”라고 썼다. “진짜 9.11 테러범들이 누구인지 아직 오리무중이지만, 그들은 끔찍한 테러의 결과가 미국인들을 단결시킬 것을 예상하고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9.11 테러와 관련된 미스테리 문서 참조.

2006년에는 KTX 여승무원 비정규직 사태와 관련하여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는 KTX 여승무원의 투쟁을 지지했다. 2013년 11월에는 논설위원으로 있던 한국대학신문에 “등록금 문제를 대학과 시장에만 맡기면 고등교육의 미래가 없다.” “언론사 대학평가는 대학을 순위경쟁에 매몰케 해 살벌한 경쟁의 도가니로 몰아간다.”는 논설을 기고했다. 언론사 대학평가는 우리 고등교육 현실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서구식 평가 잣대로 서열화해 대학의 본질을 왜곡하고 기형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한 것.
한겨레신문에 기고한 ‘위대한 개츠비’ 관련 글에서는 피츠제럴드가 미국 소비자본주의의 파국을 예언했고 루카치의 낭만적 반자본주의의 이상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다. 연구영역도 에드워드 사이드 등 탈식민주의, 미국 흑인·소수자 문학 등 비주류 분야에 집중돼 있었으며, 비슷한 시각을 가진 국내 학자 10명과 함께 <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오리엔탈리즘을 넘어 화해와 공존으로>(2006년)라는 책을 펴냈고, 발레리 케네디 터키 빌겐트대 교수의 <오리엔탈리즘과 에드워드 사이드>(2011년)라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