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10:06:56

김성룡(바둑기사)/김성룡 바둑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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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콘텐츠
2.1. 친선 대국 해설2.2. 기전 해설 방송2.3. 외국 반응
3. 부정적 의견4. 기타
<colbgcolor=#cccccc,#323232> 구독자 수 22.5만 명[1]
조회수 173,770,705회[1]
유튜브 파일:유튜브 아이콘.svg(김성룡 바둑랩)
파일:유튜브 아이콘.svg(바둑랩 강좌) 파일:유튜브 아이콘.svg(바둑랩 라이브)
바둑을 재미있게 볼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항상 고민하며 방송해설을 시작한지도 20년이 넘었습니다.
방송에서는 보여 드릴 수 없는 썰을 유튜브에서 여러분과 함께 하려 합니다. 편파적인 느낌과 기존 방송과는 다른 느낌 때문에 불편하실 수도 있지만 바둑을 즐겁게 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재미있는 방송은 김성룡 바둑랩, 바둑 실력을 늘리시려면 바둑랩강좌를 통해 얻어가시길 바랍니다.
채널 정보에 나오는 소개 글 中

1. 개요

前 프로 기사 김성룡한국기원에서 제명된 이후 생계 및 바둑 활동을 이어나가기 위해 만든 채널. 2018년 11월에 개설하여 처음에는 큰 인지도 없이 활동했지만 점차 구독자들이 늘어나 구독자 수가 22만 명을 넘었고, 무려 3만 명이 그의 바둑 방송을 실시간으로 시청하는 등 전세계 바둑 유튜버 중에서는 1인자 자리를 구가하고 있다.

2. 콘텐츠

2.1. 친선 대국 해설

타이젬 바둑, 한큐바둑에서 프로 기사들이 하는 친선 대국을 해설한다. 원래 다 둔 바둑을 수순에 따라 해설하는 방식을 채택했으나, 언젠가부터 친선 대국을 처음부터 본인이 직접 관전하며 실시간으로 해설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2.2. 기전 해설 방송

친선 대국과는 달리 상금이나 타이틀이 걸린 공식 기전은 실시간으로 방송을 한다.

현역 해설위원이었을 때보다 더 활달한 자세로 해설에 임하고 있다. 아무래도 해설장에서는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분위기가 아니기도 하고, 유튜브에서는 혼자서 하는 방송이다 보니 남들 눈치 안 보고 마음 가는 대로 해설할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기사들이 장고할 때면 아무리 바둑 해설을 하더라도 할 얘기가 떨어져서 방송이 지루해지기 쉽지만, 김성룡은 사이사이에 입담을 계속 이어가기 때문에 뻘쭘해지는 때가 하나도 없다. 소위 '오디오가 비지 않는다.'는 것.

김성룡도 25년 이상 프로 기사로 활동했었던 만큼 포석, 중반 전투, 끝내기까지 확실한 지식이 있기 때문에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해설하는 것이 보통이긴 하나, 바둑 인공지능 카타고를 참고하여 몇 집 차이인지, 누가 유리한지, 방금 둔 수가 잘 둔 수인지, 앞으로 어디 둬야 하는지 해설하는 경우가 많다. 블루 스팟(blue spot)[3]을 확인하고 '여기 두면 이긴다.' 하는 식으로 까불곤 한다. 특히 한국 기사와 외국 기사가 맞붙을 때, 한국 기사가 블루스팟에 둘 경우와 외국 기사가 블루스팟에 두지 못했을 경우에 많이 흥분하며 설레발을 치게 된다(...).

김성룡의 기전 해설 방송은 시청자가 기본적으로 수천 명 남짓 들어오는 수준까지 성장했는데, 그것도 모자라 2020년 8월부터 돌연 시청자 1만 명을 돌파, 2020년 8월 21일 박정환셰얼하오의 대국 방송에서는 동시 시청자 2만 6천 명을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파일:김성룡이만육천.jpg

2020년 8월 22일 박정환커제가 맞붙은 농심신라면배 최종국에서는 시청자 3만 1천 명을 돌파했다.
파일:김성룡삼만천.jpg

2020년 9월 말부터는 몇몇 비판여론[4]을 의식한 것인지는 몰라도 해설이 상당히 차분해졌다.

2021년 2월 4일 제25회 LG배 최종국에서는 시청자 3만 2천 명을 돌파하였다.

2023년 10월 3일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남자 단체전 금메달 결정전에서는 무려 3.9만명을 돌파했다. 원래는 TV조선에서 생중계를 하겠다고 발표했던 것 때문에 남자 단체전 결승전은 생중계를 안하려고 했는데 해외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은 방송을 못본다는 채팅을 보고 생중계를 하는 방향으로 틀었다. 이게 신의 한수가 되었던게 바둑 유튜버 중에서 치고 올라오는 이현욱 9단도 다른 일정으로 중계를 못했고 TV조선은 중계를 한다고 해놓고 끝까지 안했기 때문. 덕분에 시청자가 전부 몰려서 본인의 최고 시청자수를 갱신했다.

2.3. 외국 반응

자주 만드는 콘텐츠는 아니지만, 기전이 한국 기사의 승리로 끝난 후[5]의 외국 바둑팬들의 반응을 영상으로 올리기도 한다. 문민종이 2020년 8월 돌연 글로비스배 우승을 했을 때의 중국인들의 반응을 올린 것 따위가 있다. 문민종은 당시 한국 랭킹 150위로 말 그대로 무명이었으나 셰커, 랴오위안허, 리웨이칭이라는 2000년생 중국 기사 세 명을 각각 8강, 준결승, 결승에서 격파하며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김성룡은 일본어중국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알아서 일본 및 중국의 바둑 관련 사이트나 포털 사이트에 접속하는 모습을 종종 보여 주는데, 시청자들을 위해 일본어 및 중국어 댓글들을 해석해 주곤 한다.

3. 부정적 의견

다만 바둑 갤러리 등지나 일부 시청자들은 김성룡이 특정 한국 기사들에게 영상을 편중하고[6], 편파적으로 해설하며, 인공지능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이유로 바둑랩의 해설영상을 보기가 불편하다고 말한다. 인공지능을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대놓고 인공지능에만 의존하는 것으로 비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바둑 특성상 시청자들의 평균 연령대가 높다 보니 딱히 크게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7] 불만이 있으면 K바둑과 같은 다른 바둑 방송을 보라는 분위기이고, 실제로도 맞는 말이긴 하다.

방송상에서 다른 기사들과 직접적인 교류를 하는 장면은 없다. 좋지 않은 이유로 제명 당한 탓이 클 것이라는 추측은 있지만 따로 밝히지는 않았기에 상세한 이유는 불명. 일부 바둑기사들은 그런 점과 관련하여 김성룡이 바둑 컨텐츠로 유튜브를 하는 것에 불편함을 표하기도 한다.

예전에 업로드했던 대국 하이라이트 영상을 시간이 지나고 나서 재탕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하여 시청자들은 대국 날짜를 명시해 달라고 몇 번이고 얘기하지만 가끔 들어줄 뿐이다(...). 이 때문에 이미 보았던 옛날 대국 영상에 낚여서 들어오는 시청자들의 불만이 자자한데 이 또한 시청자들이 대부분 중년 이상의 연령대라서 그런지 다들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이다.

2021년 삼성화재배에서 신진서 9단이 결승에 진출하여 박정환 9단과 결승전에서 만나게 되자, 결승 진출에 실패한 중국을 초상집에 비유하며 김인 9단의 영결식에서 박정환, 신진서의 운구사진을 썸네일에 사용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다.

4. 기타

  • 바둑이라는 어찌보면 마이너한 주제만을 다룸에도 불구하고 구독자 수 대비 조회수가 높은 편이다. 2020년 12월 16일 기준으로 1억 5천만회를 넘겼는데, 이는 구독자 수 13.3만의 1000배가 넘는다. 이 때문에 구독자 수가 훨씬 많은 채널보다도 실제로 버는 수익은 더 높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월 500만원 정도라는 썰이 있다.
  • 생방송 중에 나무위키를 굉장히 많이 활용한다.(...) 자신도 평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는듯.

[1] 2024년 4월 25일, 김성룡 바둑랩 계정 기준[1] [3] 인공지능이 추천하는 최적의 다음 한 수. 바둑판 화면 위에 파란색 점으로 위치를 띄우기 때문에 '블루 스팟'이라고 부른다.[4] 오디오가 비지 않는 것은 좋은데 너무 시끄럽다는 비판이 있었다.[5] 우리나라 기사가 졌을 때 외국인들이 통쾌해하는 걸 영상으로 올려봤자 구독자들이 좋아할 리 만무하다(...).[6] 보통 박정환, 신진서, 최정, 김은지 등에 영상들이 집중되었다. 그러다가 2020년 8월 문민종이 글로비스배에서 우승하자 바로 문민종의 바둑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등 집중대상은 계속 바뀐다.[7] 젊은 층은 남녀 상관없이 커뮤니티 사용이 활발하기 때문에 이런 비판이 있으면 의견교환이나 전달이 바로바로 되는 편이지만, 중장년층은 상대적으로 회자되는 빈도도 적고 이런 느낌 자체를 신경 쓰는 정도도 젊은 층보다 적다. 더군다나 바둑 인구가 젊은 층에서는 계속해서 줄어든다는 점도 한몫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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