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4 12:18:00

김영회

1. 개요2. 내력3. 주장4. 비판5. 저작6. 외부 링크

1. 개요

대한민국의 한문, 향가학자.

2. 내력

어려서 한문서당 영사재(永思齋)에서 사숙하였고 서울고등학교, 서울대학교를 졸업하였다.

1970년대 이래 향가를 연구해오고 있으며, 향가연구실 문학방(文學房)을 중심으로 다수의 문헌을 번역하였다.

동북아 고대문자 해독가 및 향가 만엽 칼럼니스트로 활동중이다.

3. 주장

김영회는 지금까지의 향가 해독은 오구라 신페이가 제시한 뜻글자+소리글자의 조합인 이른바 '향찰 가설'의 틀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음을 지적하며, 모든 글자를 뜻글자로만 해독해야 한다는 새로운 틀, 이른바 '향가 제작법'을 제시하였다. 물론 뜻글자로만 해독하다 보면 뜻 글자와 소리 글자 이중의 의미를 지닌 다기능글자[1]도 다수 등장하게 된다고 한다. #

김영회는 《향찰 가설 재고 제의와 향가 창작법 제시, 그리고 〈도솔가〉의 신해독》(불교철학 11호, 2022)#을 통해 지난 100년 동안 일본과 한국의 향가 연구가들이 향가 완전 해독에 실패한 이유는 "향가 문자들이 뜻글자 또는 소리글자로 기능한다"는 향찰 가설 자체에 오류가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대신 향가 25편이 표기되어있는 모든 한자 312글자를 전수 재검토해본 결과 향가 문자들은 '뜻글자 또는 소리글자'가 아니라 '표의문자 또는 다기능문자'였다고 결론내리고, 이를 근거로 향찰 가설에 중대한 문제점이 있으니 재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엽집에 실린 고대 일본 와카들이 사실 신라 향가였다고 주장하며 새로운 해석을 제시하기도 했다.

4. 비판

김영회의 주장은 향가에 사용된 향찰이 음차자 및 훈차자로 구성된 이두, 구결 등 여느 차자표기와 구조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간과한 주장이며, 김영회의 해독을 보더라도 실제 한자의 새김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듯한 뜻을 부여하는 등 자의적으로 끼워 맞춘 부분이 많다. 때문에 국어학계 및 국문학계에서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김영회는 향가에 자주 등장하는 隱, 乙, 尸, 羅, 音, 叱, 良, 衣, 於, 也, 沙 등의 글자들이 각각 "가엾게 여겨주소서", "절을 하라", "시체를 보이라", "징을 치라", "음률 소리를 내라", "꾸짖으라", "길하라", "가사를 입고 나가라", "탄식하라", "주전자 물로 손을 씻으라", "저승 가는 배의 뱃사공이 나가라"는 뜻의 '보언(지시문)' 또는 '청언(기도문)'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이 한자들은 여타 차자표기 자료에서 조사, 어미 등 형식 형태소를 표기하는 데 사용된 사실이 명백하므로 향가에서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보기 어렵고, 보언과 청언의 존재에 대한 외부적 근거도 전무하기 때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2]
향가 원문 고려가요 기존 해독 김영회 해석
東京明期月良 東京 ᄇᆞᆯᄀᆞᆫ ᄃᆞ래 東京 ᄇᆞᆯ긔 ᄃᆞ래 토함산 밝은 달아
夜入伊遊行如可 새도록 노니다가 밤드리 노니다가 깊은 밤 들어가 너는 여기저기 장례나 치르고 돌아다니면 되나여[3]
入良沙寢矣見昆 드러 내 자리ᄅᆞᆯ 보니 드러ᅀᅡ 자리 보곤 들어가라, 방을 보니[4]
脚烏伊四是良羅 가ᄅᆞ리 네히로섀라 가ᄅᆞ리 네히어라 뒤얽힌 다리가 너는 넷으로 바로잡아 죽이리라
二肹隱吾下於叱古 둘흔 내 해어니와 둘흔 내 해엇고 둘은 내 아래고
二肹隱誰支下焉古 둘흔 뉘 해어니오 둘흔 뉘 해언고 둘은 누구 다리 아래이고
'향가 제작법'의 허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처용가가 있다. 이 향가는 훗날 조선 초기의 악학궤범고려가요의 형태로도 채록되어 있어 6행까지의 내용을 일대일로 비교할 수 있는데, 위 표에서 드러나듯이 기존 '향찰 가설'을 통해 해독된 향가는 고려가요와 내용적으로 거의 일치하는 반면 '향가 제작법'으로 해독된 향가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이는 소위 '향찰 가설'의 신봉자들이 조선 초기부터 있었던 것이 아닌 이상, '향찰 가설'을 통한 해독이 향가의 원형에 보다 가깝다는 증거일 수밖에 없다.

3행의 '昆'은 고려시대 석독구결 문헌에서 '古隱'의 형태로 자주 문증되며 조선 전기 한글 문헌에도 등장하는 연결어미 '-곤'[5]으로 해독하는 견해가 일반적이지만, 김영회는 고려가요에서 찾아볼 수 없는 '뒤얽힌'의 뜻으로 풀이하였다. 또한 김영회는 5~6행의 '下'를 '아래'로 풀이했으나, 학계의 통설은 해당 부분이 고려가요에서도 똑같이 '하'로 나타나는 점을 들어 '것'을 뜻하는 옛 의존명사 '하'[6]의 음차자로 풀이하는 것이다. '如'를 '여'로 해독한 부분 역시 한국어의 통시적 변화를 간과한 것으로, 통일신라 당시 如의 한자음은 ㄴ으로 시작했으며 조선 전기에는 반치음으로 시작했다.[7]
향가 원문 한역시 기존 해석 김영회 해석
直等隱心音矣命叱使以惡只 진중하고 곧은 마음의 시킴이니[8] 곧은 마음의 명에 따라[9] 맞서는 무리들은 마음에 (덩어리 보언)[10]
삼국유사에 한역시(漢譯詩)가 실려 있어 대략적인 의미를 유추할 수 있는 도솔가의 한 구절을 보더라도, 기존 학계의 해석이 김영회의 해석보다 한역시의 내용에 더욱 부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향가 원문 한역시 기존 해석 김영회 해석
塵塵馬洛佛體叱刹亦 티끌 하나하나마다 부처의 나라요[11] 티끌마다 부처의 절이요[12] 먼지가 잔뜩 끼어있는 불상, 절 그리고
刹刹每如邀里白乎隱 곳곳의 절마다 부처 모신 법당이로다[13] 절마다 모셔 놓은[14] 절들에 매양 안 된다. "맞이하리" 아뢰오는
(중략)
歎曰身語意業无疲厭 몸과 말과 마음의 업에 피곤해함이나 싫증 없이[15]
此良夫作沙毛叱等耶 이에 한결같음을 삼으리라[16] 이에 한결같음을 삼으리라[17] 대저 행하자, 무리야
고려 초 승려 균여가 지은 예경제불가최행귀가 예경제불송이라는 제목으로 한역한 시가 남아있는데, 마찬가지로 기존 학계의 해석이 김영회의 해석보다 한역시의 내용에 훨씬 근접해 있는 모습이다. 김영회는 마지막 행의 '夫作'을 대저[夫]와 행하다[作]로 분석했지만, 언어학적 관점으로는 조선시대 이두에서 '作文'이 '질문'이라 읽히는 점을 반영하여 '부질'로 해독하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 '부질'은 한자어 '무상(無常)하다'와 같은 뜻인 '부질없다'에 흔적이 남은 어휘로서 한결같음을 뜻하며, 한역시의 시어 '常'과도 의미가 맞아떨어진다.

만엽집의 일본 와카들이 사실 향가였다는 김영회의 주장 역시 과거에도 제기된 적이 있으나, 언어학계의 연구 성과와 전혀 일치하지 않을뿐더러 증거도 빈약하여 일찍이 논파된 상황이다. 그나마 만엽집 1권 제9수의 앞부분은 언어학자 알렉산더 보빈의 주장대로 한국어로 쓰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보빈의 해석은 가마쿠라 시대 승려 센가쿠(仙覚)의 주석과 내용이 일치하는 반면 김영회의 해석은 완전히 동떨어져 있다.[18]

또한 김영회는 일반적으로 한시라 여겨지는 고대가요 구지가를 '향가 제작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구지가의 '也'가 강조의 의미를 갖는 보조사 '야'를 음차한 것이라고 주장했다.[19] 문제는 이 '야'가 조선 전기까지만 해도 'ᅀᅡ'였고, 고려시대 석독구결 문헌에서는 '沙(사)'라고 나타난다는 점이다. 현대 방언에도 '남이사', '하기사', '이제사' 같은 표현에 그 원형이 남아있다.

5. 저작

대표 저서로는 『일본 만엽집은 향가였다』(2021),『향가 루트』(2021), 『천년 향가의 비밀』(2022)이 있다.

쓴 논문으로는 『신라 향가 창작법 제시와 만엽집에의 의미』(동아인문학 51호, 2020), 『찬기파랑사뇌가의 새로운 해독과 사뇌의 의미』(동아시아고대학 59호, 2020), 『향찰 가설 재고 제의와 향가 창작법 제시, 그리고 <도솔가>의 신해독』(불교철학 11호, 2022)『가장 오래된 노래 :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 등 향가 11곡 발견 보고서』(한국불교사연구 23호, 2023)『천년의 강: 『만엽집(萬葉集)』은 향가였다』(문학/사학/철학 73호, 2023)가 있다.

6. 외부 링크



[1] 다기능글자란 하나의 글자가 뜻글자와 소리글자로 동시에 기능하는 등 여러가지 기능을 하는 제3의 문자를 일컫는다[2] '보언'이라는 용어는 삼국유사에 실린 원왕생가 중 '惱叱古音' 부분에 "우리말로 보언(報言)을 말한다"는 주석이 붙은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국어학계에서는 해당 부분을 "힘들이다", "힘쓰다"를 뜻하는 옛말 'ᄀᆞᇧ다'의 활용형 'ᄀᆞᆺ곰'으로 해독한다.(국립국어연구원, 1998, 〈국어의 시대별 변천 연구 3 - 고대 국어〉 p101 참고) 이에 따르면 惱叱古音多可(ᄀᆞᆺ곰다가)는 "힘써다가"로 해석되며, '보언'은 단순히 그 뜻을 설명하는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3] 김영회는 2행의 可를 3행의 첫 글자로 간주하여 해석에서 제외했다.[4] 김영회는 3행의 昆을 4행의 첫 글자로 간주하여 해석에서 제외했다.[5] 석독구결 용례, 한글 문헌 용례[6] 한글 문헌 용례. 현대 한국어에도 '해'의 형태로 남아있다.[7] 학계에서는 중세 한국어 시절에 '같다'를 뜻하는 '다ᄒᆞ다'와 '같이'를 뜻하는 '다히'가 있었음을 근거로 如를 '다'로 훈독하는 견해가 정설인데, 실제로 고려가요 처용가에서 如可에 대응되는 부분이 '다가'라는 점과 원왕생가의 4행에 '다가(多可)'가 등장한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외에도 안민가의 9행에서는 如와 多支(다히)가 대응 관계를 이루기도 한다.[8] 원문은 殷重直心之所使.[9] 해독문은 '고ᄃᆞᆫ ᄆᆞᅀᆞᄆᆡ 命ㅅ 브리이악'.[10] 김영회에 따르면 命叱使는 "혜성에게 명령하는 투로 꾸짖고 시키라", 以惡只는 "따비로 땅을 파고, 죄인을 무거운 형벌로서 죽여, 처를 과부로 만들어버리라"는 뜻의 '보언'이라고 한다.[11] 원문은 一一塵塵諸佛國.[12] 해독문은 '塵塵마락 부텻 刹이여'.[13] 원문은 重重刹刹衆尊堂.[14] 해독문은 '刹刹마다 모리ᄉᆞᆯᄫᅳᆫ'.[15] 한역시의 원문은 身體語言兼意業 / 總無疲厭.[16] 원문은 此爲常.[17] 해독문은 '이에 부질 사ᄆᆞᆺᄃᆞ라'.[18] 문제의 구절 "莫器圓隣之大相七兄爪謁氣"에 달린 센가쿠 주석은 "저녁 달을 우러르며 물었네(夕月の仰ぎて問ひし)", 보빈의 해석은 "저녁 달을 쳐다보며 물었네", 김영회의 해석은 "야단스럽게 떠들지 말고 원만하게 지내야지. 중대형 황자님께서 탕처럼 끓어..."이다. 보빈의 해석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만요슈 문서 참고.[19] 首其現也를 "임금이 나타나야", 若不現也를 "만약에 안 나타나면야", 燔灼而吃也를 "제사 고기를 불에 태워 연기를 마시게 하리야"라고 해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