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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 없음 |
출생 | 1898년 11월 13일 |
서울 | |
사망 | 1981년 11월 23일 (향년 83세) |
한반도 | |
묘소 | 국립서울현충원 |
학력 | 이화학당 (졸업) |
서훈 | 대통령표창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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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유공자. 독립운동가 최창식은 김원경의 남편이다.2. 생애
이화학당을 졸업하였으며, 1919년 3.1운동에 참여하였다.그리고 동년 4월에 최숙자, 백성현, 경하순, 김희옥 등과 함께 대조선독립애국부인회를 조직하고 임시정부를 지원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5월에 애국부인회의 특사로 상해에 파견되었으며, 그곳에서 동년 9월에 혈성단과 통합하여 애국부인회가 조직되자 이화숙을 회장에 추대하고 김원경은 부회장이 되었다.
1920년 2월말에는 다시 김원경이 회장에 선출되어 계속 애국부인회를 이끌고 임시 정부를 지원하였다.
1920년 11월에는 상해 대한인거류민단이 조직되자 김원경은 최창식과 같이 서구의원에 뽑혀 교민 복지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였다.
1922년에 모스크바에서 극동인민대표회의가 열리게 되자 김원경은 권애라와 같이 한국 대표로서 이 회의에 참석하여 각국 대표에게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기도 하였다.
이어 임시정부 요인인 최창식과 결혼하여 임정의 뒷바라지를 계속하였으며, 1930년대에는 고려공산당의 여자청년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