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축구인 | ||
<colbgcolor=#eeeeee> 이름 | 김원택 Kim Won-taek | |
출생 | 1956년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직업 | 축구 선수 (포지션 미상 / 은퇴) 금융인 축구 경영인 | |
소속 | <colbgcolor=#eeeeee> 선수 | 서울은행 축구단 (1976~1985) |
기타 | 대전 하나 시티즌 (2022~2024 / 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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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인, 금융인. 現 대전 하나 시티즌 단장.2. 선수 경력
1976년부터 서울은행 실업 축구단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했으며 1985년 은퇴했다.3. 금융인
실업선수 은퇴 후 서울신탁은행 창구 직원으로 전향했는데 어린 시절부터 줄곧 축구만 해왔기에 어려운 은행 업무는 그에게 넘을 수 없는 장벽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이에 초등학생들과 초급 주산 수업을 듣기도[1] 했다.그가 주로 진행했던 영업 방식은 축구인 출신 답게 축구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김원택은 본인이 부임하는 은행 지점마다 조기 축구회를 조직해서 코치를 맡았다. 그에게 축구를 배우는 조기 축구 회원들이 돈을 걷어서 주기도 했지만 김원택은 축구 강습료를 일절 받지 않는 대신 연습을 혹독하게 시켰다. 그리고 축구를 가르치는 동안은 은행 예금이나 대출 상품을 들어달라는 얘기는 절대 꺼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3개월간 축구를 정성껏 가르치자 그의 정성에 감동한 회원들이 은행으로 몰려왔다고 한다. 특히 이 같은 방법으로 1991년 서울신탁은행 회현동지점에서 일할 당시 남대문시장 대형상가 6개동의 상인들이 모두 그를 찾아오면서 그야말로 남대문시장 상인들을 평정했다.
그가 일하던 서울은행이 하나은행에 인수되면서 하나은행 직원이 된 그는 대출영업의 귀재로 변신하기 시작했는데 2004년 하나은행 면목동지점에 부임할 당시 약 375억 원이던 해당 점포의 대출 규모가 2007년 2월 1365억 원으로 불어났다. 2년 반 동안 지점의 대출 실적을 1000억 원가량 늘린 것이다. 1000억 원이 모두 소규모 가계 대출과 소기업 대출로만 이뤄진 것이다.
하나은행 삼선교지점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다시 6개월 동안 200억원의 신규 대출을 했고 이에 2007년 하나은행 가락동지점장으로 승진했다. 이는 차장에서 부지점장을 건너뛴 파격적인 인사였는데 2년 반 동안 1000억 원의 신규 대출 실적을 올린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었다.
이후 2012년까지 하나은행에서 지점장을 맡은 후 하나금융그룹 자회사 HN서브 본부장, 두레시닝 본부장을 거쳐 2021년에는 축구 전문 용품 회사인 유한회사 싸카의 부사장직을 역임했다.
4. 대전 하나 시티즌 단장
2022년에는 친정인 하나금융그룹의 부름을 받아 프로축구팀 대전 하나 시티즌의 신임 단장으로 선임됐다.2024시즌 들어 팀이 부진한 성적을 이어감과 동시에 이민성 감독 사임 이후 신임 감독 선임 과정에서 2002 한일 월드컵 멤버로 후보를 추리는 등 여러 석연치 않은 부분 등에 대해서 김원택 단장 책임론 역시 불거졌으며, 5월 29일 제주 유나이티드와의 홈 경기와 6월 2일 대구 FC와의 홈 경기에서는 연달아 팬들이 김원택 단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걸개를 내걸기도 하였다.
이후 2024 파리 올림픽 진출 실패로 물러난 황선홍 감독을 부정적인 여론을 무릅쓰고 선임하면서 김원택 책임론이 일었다.
하지만 황선홍 감독이 팀을 잘 추스르고 8월 이후 황선홍 감독의 대전은 무려 8승 3무 2패를 기록하며 시즌 종료 1경기를 남겨두고 팀을 잔류시키는데 성공하였다.
2024시즌이 끝나고 임기 만료로 단장직에서 물러났다.
5. 여담
- 은행에서 일하는 동안 한 번도 안 거르고 매주 토요일, 일요일을 조기 축구 회원들과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1] 김원택이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던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은행에서 주판알을 튕기면서 업무를 보는 것은 일상이었다. 주판이 은행 창구에서 사라진 것은 1990년대 후반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