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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70년경 |
경기도 양주시 | |
사망 | 1919년 3월 28일 (향년 49세) |
경기도 양주시 가납리 | |
서훈 |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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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기도 양주에서 군중들과 함께 만세운동을 한 한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1870년경 양주에서 태어났다. 고향에서 농업에 종사하다가 양주군 만세운동이 이틀에 거쳐 광적면에서 관내로 확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김진성은 백남식, 이용화 등과 함께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이들은 주민들에게 만세시위를 알리는 한편 일장기를 변형하여 태극기를 만들었다. 원래 계획은 3월 28일 오전 9시 효촌리에서 시위할 예정이었으나 화재가 발생하여 진압한 후 가납리로 주민들과 나아갔다.시위대가 도착할 무렵 광적면과 백석면 주민들은 만세시위를 전개한 후 해산하려는 순간이였다. 다시 모여든 시위 군중이 900명으로 늘어나자 오후 4시경에 김진성은 앞장서서 시위행진에 들어갔다. 광적면장 이하용과 의정부에서 파견된 일본 헌병은 주모자를 찾았으나 시위 군중을 격렬하게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저항했다. 이에 당황한 일본 헌병들은 군중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총격을 가했다. 당시 사상자는 40여 명[1]에 달할 만큼 엄청 참혹하였다. 만세시위를 이끌던 김진성도 백남식, 이용화와 함께 현장에서 순국했다.
3. 사후
대한민국 정부는 2015년 김진성의 공로를 기리며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1]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