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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원/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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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그리스어 παράδεισος
라틴어 paradisus

1. 개요2. 가톨릭에서3. 개신교에서
3.1. 어떤 사람이 가는가
4. 대중매체에서

1. 개요

원래 '파라데이소스'란 고대 페르시아에 있던 일종의 수목원을 말한다. 어휘 자체가 페르시아어 차용어다. '70인역성경'에서는 '에덴 동산'을 이 어휘로 번역하였고, 불가타에서는 '에덴 동산'을 '기쁨의 동산'(paradisus voluptatis)으로 의역하였다.

2. 가톨릭에서

천국과 동의어로 쓴다. 자세한 내용은 천국/기독교 항목 참조.

가톨릭에서는 가톨릭 신앙을 아예 접하지 못하거나 가톨릭 신앙을 자기 탓 없이 알지 못한 불가항력적 무지 상태에 있는 비가톨릭 신자일 경우, 무지의 상태에서라도 자기의 도덕적 양심이 요구하는 바, 자의적인 기준이 아니라 하느님을 기준으로 양심을 실천하는 자는 하느님의 은총의 도움으로 구원의 길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가르친다. 신학자 칼 라너가 주장한 내용으로 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s)이라고 하는데, 복음을 접하지 못한 비기독교인이라도 본인의 제한적 상황에서의 양심을 철저히 따른 선량한 사람이면 아마도 구원의 길이 열려 있을 것이며 가톨릭교회에서 구원을 받을 수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고, 구원 여부를 판정하는 건 하느님의 뜻이라는 것.[1]

이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은 교회에서 정식으로 인정받은 신학적 이론은 아니지만 2차 바티칸 공의회에 영향을 많이 준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저 이론 자체가 실제로 교회에서 인정받은 이론이라고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이 경우에도 가톨릭 신앙이 아닌 다른 신앙에 의한 구원을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일단 가톨릭에서는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가시적인 가톨릭 교회 밖의 구원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으며, 김수환 추기경도 교회 밖의 구원이 존재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단 주의해서 이해해야 할 점은, 김수환 추기경의 해당 발언은 가톨릭 신앙을 알게 되었으면서도 고의로 거부하는 사람들이 믿음이 있든말든 상관없이 무조건 착하게 살면 구원받는다고 주장한 게 아니다. 만약에 이게 그런 주장이라면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을 위해 이 땅에 내려온 이유도 설명할 수 없고, 가톨릭이라는 가시적 종교도, 교황과 교리가 존재할 이유도 설명할 수 없으며, 그 주장 자체로 '행위구원론'이라는 이단이 된다. 행위구원론은 일찍이 초기 기독교 시절인 교부 시대부터 가톨릭에서 이단 교리로 단죄된 이론이다.

즉, 일반적인 비신자는 예수를 믿으면 하느님의 은총으로 구원받는 것이 당연하고, 또 비신자가 가톨릭 신앙을 어떻게든 알게 되었으면 신학적으로 비신자는 가톨릭 신앙을 반드시 믿을 의무가 생긴다. 그렇다고 자기 탓 없이 복음을 들어보지 못했거나 가톨릭과 예수를 불가항력적인 무지로 인해 믿지 않았던 이들까지 무조건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주장하는 것도 지나친 비약일 수 있다는 것이 핵심으로,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랑'의 관점에서 봤을 때 어디까지나 구원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하는 것 뿐이다. 가톨릭 교회의 구원에 관한 가르침은 '인간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되므로 최종적인 구원 여부는 하느님만이 아신다'는 것인데 이는 '구원받을 사람들은 예정되어 있다. 예수의 구속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구원이 예정된 존재이다'는 칼뱅의 주장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특정 개인의 구원/지옥행여부에 대해 단정적으로 논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긴다.

어쨌든 이러한 입장은 개신교와는 분명히 다른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가장 확실한 구원의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와 가톨릭 교회에 있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에서 '예수천국'만큼은 우리가 고백할 수 있는 확실한 것이라는 입장이다. 개신교 쪽에서는 이러한 연유로 가톨릭이 펠라기우스주의에 영향을 받아 행위구원론을 주장한다고 공격하는데, 가톨릭 교회도 비신자가 가톨릭 신앙을 어떻게든 알게 되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부활을 믿는 것이 가장 중요한, _필수적인_ 구원의 길이라고 가르친다. 다만 개신교 쪽에서 연옥을 부정하고 극단적인 이신칭의만을 주장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은총을 보존하는 노력으로 선행이 필요하다'는 가톨릭의 교리가 '믿음과 선행을 동등한 구원 조건으로 본다'는 식으로 착각되기 쉬울 뿐이다.

여담으로,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과 '화세'(열망의 세례)를 헷갈려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화세는 과거부터 가톨릭 교리 중 하나였고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교도권 차원에서 확정된 교리로서, 가시적으로 물 세례(가톨릭의 세례성사)를받을 기회가 없었으나 신자가 되기를 갈망하는 비신자가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열망(불)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다. 반면 익명의 그리스도인 이론은 신앙을 가지지 못했고 참 종교를 믿을 준비는 되어 있으나 죽을 때까지 천주교를 잘 몰랐던 사람들 중 양심적으로 선하게 살았던 인물들이 구원받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를 논하는 신학이론이라, 엄밀히 말하면 정신적으로는 이미 신자 상태인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화세 개념과는 좀 다르다. 다만 교리 차원에서는 화세의 적용범위를 넓게보아 직접 가톨릭을 열망하지 않더라도 익명의 그리스도인이라면(즉 참 종교와 진리를 찾아 믿고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외적인 불가항력적 무지로 인해 가톨릭을 알거나 믿지 못했던 사람이라면) 화세의 적용대상자가 될 수도(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견해가 주류인 듯 하다.

천주교에서는 마태오 복음서 3장 11절,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시다.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라는 구절을 근거로 화세를 인정한다.[2]

3. 개신교에서

개신교의 사후세계 가운데 하나로, 천국과는 다른 개념이다.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은 사람이 죽었을 때, 육체로부터 분리되어 죽은 자들의 세계로 간 그 영혼이, 이 세상의 종말에 부활하기 전까지 아무런 고통이나 슬픔을 겪지 않고 행복을 누리며 머문다고 하는 곳. 낙원에 가 있는 사람은 부활한 뒤에 천국에서 살게 되므로, 낙원과 천국에는 어느 정도의 관계가 있다. 개신교 신학에 따르면, 천국에서 살 자격이 있는 이들이 육체의 부활 이전에 낙원에 간다. 즉, 낙원은 종말이 되기 전에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은 다음에 죽은 사람이, 종말에 천국이 열리기 전까지 머무는 임시 대기실이다. 게임으로 따지자면 낙원은 데모 버전이고 천국은 본 버전이다.

낙원에 관한 언급은 성경에 총 3번 나온다.
  •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 누가복음 23장 43절
  • 나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 하나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십사 년 전에 셋째 하늘에까지 이끌려 올라갔습니다. 그 때에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나는 이 사람을 압니다. 그가 몸을 입은 채 그렇게 했는지 몸을 떠나서 그렇게 했는지를,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십니다. 이 사람이 낙원에 이끌려 올라가서,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사람이 말해서도 안 되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 고린도 후서 12장 2~4절
  • 귀가 있는 사람은, 성령이 교회들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사람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주어서 먹게 하겠다. - 요한 계시록 2장 7절

맨 위에 나온 내용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때, 옆에 있던 죄수가 예수에게 자신을 기억해 달라고 하자 예수가 한 말이다. 이를 통해 낙원이 죽은 사람의 영혼이 들어가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아래 인용된 장로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각주에서도 이 부분을 인용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견해에는 문제점이 있다. 이 견해대로라면 해당 죄수만이 아니라 그리스도 역시 '오늘', 즉 처형당한 그 날에 영혼이 낙원에 들어갔다는 건데, 이렇게 되면 '죽은 지 사흘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길 것'이라고 예언된 성경 내용이 어긋나 버린다. 사흘은 커녕 죽은 그 날에 벌써 그 (살아있는) 영혼이 어딘가로 갔다가 이후에 그저 새로운 육체에 영혼이 깃들어 제자들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일 뿐이게 되는데, 이것은 딱히 죽음의 권세를 이긴 것이라기보단 구약시대에 사람의 몸을 입어 종종 땅에 나타나곤 했던 천사들의 행동과 별 다를 것이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낙원의 반대 개념으로는 음부가 있다. 이곳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영혼이 고통과 슬픔 가운데 머무는 절망과 암울함의 장소이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음부'는 낙원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죽어서 육체와 분리된 영혼들이 머무는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우리말로 하면 '저승'이다. 그리고 이 음부에 간 사람은 종말에 부활한 다음,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 이 세상, 즉 천국에서 살지 못하고 밖으로 쫓겨나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고 개신교에서는 주장을 한다. 그러한 장소가 다름 아닌 지옥 개념이다. 즉 낙원=천국, 음부=지옥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관련은 있는 것이, 낙원에 가 있는 사람은 종말에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고, 음부에 가 있는 사람은 그러지 못하고 이 세상 밖으로 쫓겨나 영원히 고통을 받게 된다고 개신교에서는 주장하기 때문.

그러나 이러한 관점을 모든 개신교의 입장으로 일반화하여 생각하면 곤란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예장합동 측에서 채용하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는 믿는 자들의 영혼은 중간 처소 없이 즉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며 마지막 때의 몸의 부활을 기다리게 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점에서 낙원을 천국과 동일한 개념으로 보고 임시처소로 여기지 않는다. 관련된 내용은 아래와 같다.
"32장 <사후 인간의 상태에 관하여>: 인간의 육체는 죽은 후에 흙으로 돌아가 부패하게 되지만, 그 영혼은 죽지도 자지도 않고, 본질상 소멸되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즉시 돌아간다. 의인의 영혼은 그 때 거룩함에 온전해져서 지극히 높은 하늘로 영접되고, 거기서 빛과 영광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그 육체의 완전한 구속을 기다린다."

개신교의 교리에 따르면 예수를 믿고 그의 법을 따르면 죽은 다음에 낙원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머무르며 부활을 기다린다. 정확하게는 아담부터 전해지는 '원죄 사함'을 받은 자만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한다. 기독교 입장에서는 모든 인간은 '죄'를 진 사람들이기 때문에 아무리 착한 일을 한다고 해도 죄 사함이 없으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라도' 천국에 갈 수가 없다고 말한다. 개신교에서의 죄에 대한 개념은 화살이 과녁에 미치지 못함과 같이, 인간이 야훼의 영광과 의로움의 수준에 이르지 못함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노력과 선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를 씻음받는 믿음만이 천국을 보증받는 길인 것이다. 애매한 것이 야훼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자들도 지옥행이라는 것인데, 이에 대해 사람마다 의견이 다르다. 예를 들어 그 사람들 양심에 따라 달려있다라고 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고도 한다.[3]

낙원과 음부에 다녀왔다는 메리 캐서린 백스터 목사의 영향을 받은 개신교 일부에서는 '첫째 하늘인 스카이, 둘째 하늘인 스페이스를 지난 곳에 셋째 하늘인 낙원, 즉 헤븐이 있다'고 주장한다. 백스터 목사가 집필한 원전(?)인 '정말 천국은 있습니다.'와 '정말 지옥은 있습니다.'[4]라는 두 책과 관련되어 한국에서 나온 서적이 꽤 된다. 심지어는 강원도와 경기도 지역의 일부 교회에서 이 책의 내용을 교리화하여 포교하는 것까지도 목격되었다. 여의도순복음교회조용기 목사도 서평을 쓰는 등 백스터 목사를 옹호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성경에서는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 절대로 이 책의 내용이 어느 정도 권위를 가진 교리로 행사하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5]

3개의 하늘이 있고 셋째 하늘이 낙원이나 천국이라고 믿으면 이단이다라고 단정짓기 보다는, 그들이 저술에서 말하는 성경 속 근거를 비평하고, 더 나아가 개신교 전체의 교리와 어떻게 충돌하거나 부합하지 않는가를 평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결론적으로 성경에서는 복수의 하늘들을 동일한 어휘로 기록한다.

가장 자주 드는 내용은 구약 성경에서 하늘, 천으로 해석하는 הַשָּׁמַ֙יִם֙(hassamayim, the heaven 또는 the heavens로 일부 구절은 the sky 등으로 영어 성경에서도 NASB, KJV 등에서 구절마다 상이하게 번역)이다. 당해 히브리어 원어의 어미를 남성형 복수 어미인 im[6]으로 보고, 하늘이 여러개 있다고 보는 문자주의적 견해를 많이 든다. 창세기의 경우 1:1에서 הַשָּׁמַ֙יִם֙은 복수로, 땅을 뜻하는 הָאָ֖רֶץ(haares, earth로 일관되게 번역)는 단수로 적고 있다. 신명기 10:14에서는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개역개정),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하늘들 그리고 가장 높은 하늘과 땅과... 로 이어진다.[7] 이를 종합하면 최소 세개의 하늘이 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또한 신약에서는 고린도후서 12장의 사도 바울의 삼층천 낙원 계시를 이야기를 인용하면서 하늘이 세 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제3층은 낙원이라는 구절을 제시한다. 다만 당해 성경 구절이 무리한 장엄복수형까지 가지 않더라도[8] 그저 높은 하늘을 여러 층으로 묘사한 구절로 볼 여지가 충분하다. 삼층천 계시의 경우 셋째 하늘이 낙원이라고 했지,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을 묘사한 적은 전혀 없다. 또한 제3층이 최상층이 아니라면 제2층과 제4층이 같은 우주 공간이고 제3층인 낙원은 우주 속에 끼여 있는 구조일 수도 있다.

하늘이 세 개 혹은 그 이상의 층으로 되어 있다는 문자주의적 해석을 받아들이더라도, 1, 2층이 우리 물리세계의 하늘과 1:1로 대응하는지는 다른 문제이다. 결론은 성경에서 낙원은 복수 층의 셋째 하늘에 있다고 말하고 있으나, 성경에서는 모든 하늘들을 동일한 단어로 기록하면서 다른 하늘들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하고 있지 않으므로 이러한 성경 해석은 지양해야 할 필요가 있다.

3.1. 어떤 사람이 가는가

성경을 종합적으로 보자면, 사람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하나님의 기준에 결코 미칠 수 없는 존재이기에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세로 자신의 잘못들을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되고 성령을 받게 된다. 그리고 그 믿음이 정말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완벽하진 못해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이웃을 용서하면서 탐심, 미움, 교만, 질투, 음란 등의 죄들을 멀리하는 삶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게 된다. 그리고 그런 믿음의 삶을 회개와 믿음과 실천[9]을 통해 힘써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사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 행복한 영생을 누리게 된다.

4. 대중매체에서

대중매체에서 이 낙원은 태양 가까운데에 위치해있기 때문에, 유황이 끓는 지옥보다 더 지독한 더위라고도 한다. 기독교적인 입장에서 천국과 지옥이란 단테 시대에 공간적인 개념으로서 생각되는 것과 다른, 영적인 실체로서 시공의 개념을 초월한 것이다.

사우스 파크에서는 1999년 기준으로 인구는 1,408명(?). 사실 모르몬교 빼곤 모두 지옥행이라는 정보도 있다.

제멋대로 카이조에 의하면 낙원의 화폐단위는 페소이다.

멋진 징조들에서는 낙원에서는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보면서 찬송가를 부르는 것밖에 할것이 없다. 덤으로 배급되는 식량은 베헤모스 고기라는 루머가 있다. 물론 전부 상상력에 맡긴 것.


[1] 티모테오 1서 2-4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2] 반면 개신교에서는 에페소서 4:5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라는 구절을 근거로 화세를 인정하지 않는다. 단, 개신교에서도 대다수 교파는 이신칭의에 의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을 열망이 있다면 가시적 세례와 별개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견해를 가진 교단들이 압도적으로 많으므로 화세라는 교리개념으로 직접 칭하지는 않더라도 좁은 의미의 화세와 동일한 개념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3] 일단 현재에는 전자를 더 많이 주장한다고들 하는데 어쩔 수 없는게 후자라면 불세출의 명장유례없는 성군도 모두 지옥에 간다는 것으로 일반 사람들에게는 납득되기 어려운 이야기다.[4] 책 제목이므로 그대로 썼으나, 실제로 여기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은 각각 낙원과 음부의 개념이다.[5] 이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베뢰아 귀신론이다.[6] 엘로힘, 세라핌, 케루빔 할 때 그 im이다. 여성형 어미로는 베헤모스 등의 oth가 있다.[7] 현 개역개정의 번역은 대역본인 킹 제임스 성경의 구조를 답습한 영향으로 보인다.[8] 장엄복수형이지 장엄3층형은 아니지 않냐는 비판이 가능하므로[9] 실천은 자칫하면 자기 의를 세우기 위한 행위로 변하기 쉬운데, 올바른 실천은 결국 끊임없이 예수님을 적극적으로 찾음으로써 성령의 충만함을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