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남성혐오 불성립론/비판 및 반론
1. 윤김지영 교수의 의견
그들은 혐오/증오라는 파토스에 의해 추동되는 자가 아니라 분노(indignation)라는 파토스에 의해 촉발된 이들이다. 혐오/증오의 파토스는 소수자라는 하위 계급자들에게 향하는 것으로 낙인적 이름들의 증식을 통해 여성을 세분화된 범주 속으로 분류, 식별하려 한다.[1]
이러한 맥락에서 남성혐오는 없다. 나아가 여혐혐이라는 여성혐오에 대한 혐오도 없다. 단지 남근질서[2] 에 대한 분노(indignation), 여성혐오에 대한 분노만이 있을 뿐이다. 혐오는 하위 계급자들을 향한 파토스로 기존 질서의 부조리를 재생산하는 방식이자 기존의 자리와 위치를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이라면, 분노는 상위 계급자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뒤흔들어놓는 파토스로서 어떠한 것도 안전하고 안온하게 보전하려하지 않는 급진성을 띤다. 즉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와 일상의 배치방식 자체를 탈구하는 것은 기존 질서의 보존에 기여하는 혐오라는 파토스의 연장으로 결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윤지영 전복적 반사경으로서의 메갈리안 논쟁 - 남성 혐오는 가능한가, 한국여성철학 제24권, 2015.11, pp64
철학자인 윤김지영 교수는 혐오는 사회적 강자에서 사회적 약자로 진행되는 감정[3]이기 때문에 남성이 사회적 강자인 현재에서는 남성혐오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7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유럽권 페미니즘 철학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극단적인 현학성을 보이는 논문인데, 굳이 간추리자면 혐오는 "기존의 가부장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나타나는 것이니, 기존의 질서를 무너뜨리기 위한 여성들의 소위 '남성혐오' 는 혐오가 아니라 분노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이러한 맥락에서 남성혐오는 없다. 나아가 여혐혐이라는 여성혐오에 대한 혐오도 없다. 단지 남근질서[2] 에 대한 분노(indignation), 여성혐오에 대한 분노만이 있을 뿐이다. 혐오는 하위 계급자들을 향한 파토스로 기존 질서의 부조리를 재생산하는 방식이자 기존의 자리와 위치를 그대로 보존하는 방식이라면, 분노는 상위 계급자들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마저 뒤흔들어놓는 파토스로서 어떠한 것도 안전하고 안온하게 보전하려하지 않는 급진성을 띤다. 즉 여성혐오에 대한 비판적 문제제기와 일상의 배치방식 자체를 탈구하는 것은 기존 질서의 보존에 기여하는 혐오라는 파토스의 연장으로 결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윤지영 전복적 반사경으로서의 메갈리안 논쟁 - 남성 혐오는 가능한가, 한국여성철학 제24권, 2015.11, pp64
2. 이나영 교수의 의견
“남혐이란 존재하지 않아요. 자, ‘백인혐오’ 존재하나요? 백인의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거지, 백인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에요. ‘자본가혐오’는 어때요. 재벌의 이중적인 행태를 비판하는 거지, 돈이 있는 걸 혐오하지는 않잖아요. 다 돈 많이 벌고 싶어 하니까. 더 중요한 건, 거꾸로 백인이 흑인을 혐오하면 어떤 일이 일어나죠? 인간으로 안보죠. 그러니 노예제를 만들었고, 흑인을 비하하고 멸시, 조롱하고 폭력이나 착취, 심지어 살인도 정당화하죠. 그래서 흑인이 백인에게 저항한다고 그게 백인혐오는 아니죠. 그 효과가 백인에 대한 차별, 멸시, 비하, 폭력, 살인 같은 구조적 차별로 이어지나요? 그럴 수 없어요. 힘이 없으니. 마찬가지 아니에요? 개인 남성이 여성들의 언어로 충격을 받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는 있겠죠. 그런데 그 다음 무슨 일이 일어나나요? 실제로 남성 차별, 폭력, 성폭력, 살인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이를 정당화하는 기제가 되나요? 혐오발언은 효과를 봐야 해요. 특정 집단을 열등한 집단으로 만들고 그럼으로써 차별 구도가 확증, 재생산돼야 혐오라는 거죠. 같은 발언을 해도 집단마다 효과가 그래서 다른 거예요. 그걸 종합적으로 판단해야죠. 영어로 미소지니(misogynyㆍ여성혐오)란 단어는 있어도 ‘남혐’은 없어요.”
이나영, 한국일보와의 인터뷰. 연구실 문에 '페미니스트다' 쓴 교수 “남혐은 없어”
여성학자인 중앙대 교수 이나영 역시 윤김지영 교수와 비슷하게 사회적 강자인 남자를 향한 남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이나영, 한국일보와의 인터뷰. 연구실 문에 '페미니스트다' 쓴 교수 “남혐은 없어”
3. 손희정 연구원의 의견
저는 사실은 사회적인 현상으로서의 남성 혐오는 이야기될 수 없다라고 생각하는 입장이고요. 여성 혐오라고 하는 것은 여성에 대한 차별과 멸시의 문화를 바탕으로 구조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남자가 싫어라는 개인적 감정의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사회적으로 문제 삼아야 하는 남성 혐오는 구조적으로 사실 아직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런 남성 혐오가 성립하려면 남자들이 제도적으로 차별당하고 생존,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폭력에 시달리며 그리하여 생존적으로 위협에 처했을 때 그런 남성혐오를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지금 페미니즘 운동이 하고 있는 건 남성들의 얼굴, 실제로 여성들이 염산을 맞는 시대인데 남성들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신문기사
《페미니즘 리부트》 의 저자인 손희정 연세대 젠더연구소 연구원도 역시 위와 같이 남성혐오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본다.그래서 사회적으로 문제 삼아야 하는 남성 혐오는 구조적으로 사실 아직 불가능한 상태라는 것이죠. 왜냐하면 그런 남성 혐오가 성립하려면 남자들이 제도적으로 차별당하고 생존, 그러니까 물리적으로 폭력에 시달리며 그리하여 생존적으로 위협에 처했을 때 그런 남성혐오를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지금 페미니즘 운동이 하고 있는 건 남성들의 얼굴, 실제로 여성들이 염산을 맞는 시대인데 남성들의 얼굴에 염산을 뿌리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거죠.
신문기사
4. 정희진 여성학자의 의견
이분법적 사고의 핵심 문제는 3가지다. 첫째, 위계를 대칭으로 위장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은폐한다. 둘째, ‘대립’하는 이항 외 다른 존재 혹은 다른 방식의 사고 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셋째, 남성과 여성의 구분은 이분법적 사고방식의 원형(源塑, archetype)이 되어 모든 언어의 모델, 척도, 기원, 전형으로 인류를 지배해왔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방식은 남성이든 여성이든 ‘제3의 성’이든, 모든 인간의 상상력을 제한한다.
정희진, '남성 혐오'는 가능한가 - 여성주의와 양성평등, 인물과사상 2015년 10월호(통권 210호), pp 115
정희진, '남성 혐오'는 가능한가 - 여성주의와 양성평등, 인물과사상 2015년 10월호(통권 210호), pp 115
여성주의는 이분법이 ‘A’와 ‘A가 아닌 것(not A)’, 다시 말해 A를 기원(origin)으로 규범(norm)으로 진리로 만들기 위한 방식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 남녀 관계가 비대칭적이라는 현실 인식에서 나온 것이다.
정희진, '남성 혐오'는 가능한가 - 여성주의와 양성평등, 인물과사상 2015년 10월호(통권 210호), pp 118]
정희진, '남성 혐오'는 가능한가 - 여성주의와 양성평등, 인물과사상 2015년 10월호(통권 210호), pp 118]
양성 패러다임에서는 남성 혐오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제까지 논의해온 것처럼 양성은 일방적 차별을 상호 대립으로 둔갑시키는 이데올로기다. 여성들의 대응은 남성 혐오’가 아니라 ‘여혐혐(여성 혐오를 거부함)’이다. 여성주의는 ‘여혐’에 대해 ‘남혐’으로 맞서는 사유가 아니다. 여성주의는 ‘인간’과 ‘인간의 여자’ 혹은 '남성’과 ‘비(非) 남성’으로 나누는 권력에 대한 질문, 인간의 범주에 관한 인식론이다.
정희진, '남성 혐오'는 가능한가 - 여성주의와 양성평등, 인물과사상 2015년 10월호(통권 210호), pp 121]
여성학자 정희진은 남성혐오는 비대칭적 사고인 이분법적 관점, 즉 양성 패러다임에서는 가능하다고 보지만 여성주의가 가지는 경계선상의 관점에서는 남성혐오가 아닌 여성혐오를 혐오하는 것이라고 본다.정희진, '남성 혐오'는 가능한가 - 여성주의와 양성평등, 인물과사상 2015년 10월호(통권 210호), pp 121]
5. 홍성수 교수의 의견
“혐오는 일시적이고 사적인 감정이 아니라 소수자집단에 대한 극단적으로 부정적인 관념이나 감정을 뜻하는 것으로서, 특정한 이데올로기, 예컨대 인종주의, 호모포비아, 제노포비아, 자민족중심주의, 반유대주의, 백인우월주의, 성차별주의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중략)...메갈리아 게시물들이 남성을 혐오하는 감정을 표출하고 있기는 하지만, 남성을 소수자 집단으로 보기는 어렵고, ‘hate speech’를 지칭하는 혐오표현의 개념에서는, 주류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백인에 대한 혐오표현’이 불가능한 것처럼, ‘남성에 대한 혐오표현’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및 한국여성민우회 법 부문 자문위원인 홍성수 교수는 혐오를 소수자 집단에 대한 극단적인 부정적인 관념이나 감정으로 규정하여, 소수자에 대한 차별만이 혐오에 해당하기 때문에 여성혐오는 존재할 수 있지만 남성혐오는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비소수자인 남성에 대한 소수자인 여성의 차별적인 행동이나 관념은 혐오가 아니라 그들이 사회에서 당한 울분을 표출한 분노라고 설명했다.6. 관련 문서
[1] 윤지영 전복적 반사경으로서의 메갈리안 논쟁 - 남성 혐오는 가능한가, 한국여성철학 제24권, 2015.11, pp61~62[2] 동성사회성을 말한다.[3] 실제로 사회적으로 쓰이는 혐오는 이런 의미로 쓰인다. 대표적인 게 아시안혐오, 동성애혐오, 노조 혐오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