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남수 (1957 ~ )는 함경북도 온성군 출신으로, 북한에서는 상당히 젊은 나이에 기업소의 지배인이 되었다. 그러나 (북한 법 기준으로)비위를 저질렀던 사건이 고난의 행군 시기와 맞물려 일이 커지는 바람에 무작정 탈북을 하였고, 우여곡절 끝에 남한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당시 알려지기로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탈북 몇 년 뒤 자발적으로 재입북을 하였는데, 의외로 김정일의 '따뜻한' 특별 지시 덕택에 별다른 박해 없이 북한에서 인간 선전도구로 살다가 또다시 탈북하여 한국 언론의 관심을 '뜨겁게' 받았다.자발적 재입북 및 자발적 재입북 후 재탈북의 1호 사례이니만큼 월북 이슈가 터질 때마다 뉴스 기사 또는 뉴스 출연자들의 기억으로 소환되는 인물이다.
2. 생애
- 이 내용은 시사저널 <“북한 가서 환영받고 탈북 방지 강연도 다녔다”> 기사 (2010.08.03 승인)를 대폭 참조하였음을 밝힌다. 해당 기사에서만 찾을 수 있는 내용은 [(시사저널)] 각주를 사용하였다.
2.1. 탈북 전
북-중 국경지대인 함경북도 온성군에서 태어났다는 것 이외에 우산공장 지배인이 되기 전까지는 자세히 공개된 내용은 별로 없다. 17세에 군에 입대하여 소좌로 전역 [(시사저널)]하였고, 31세의 나이로 온성군 우산공장으로 배치받아 그곳의 지배인이 되었다[4]는 정도만 알려져 있고, 그 전후로 결혼을 하여 자식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5]이 젊은 지배인은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서운 것 없이 일을 추진'했고, 여기에는 공장 건물을 신축하는 사업도 포함되었다. 당시나 지금이나 북한의 경제사정이 열악한 건 다름이 없는지라 건물 자재를 조달하는 것도 어려웠는데, 특히 시멘트가 제일 큰 문제라서 그가 스스로 시멘트 공장에 들어가 1달 동안 일을 하기도 하고, 돈도 많이 썼다고 한다. 그런데 이 돈의 출처가 공장 직원이 (장마당 등지에서) 우산 천을 팔아다가 마련한 것이라는 게 북한의 법을 위반한 것이었고, 이 때문에 중앙검찰소에서 검열을 나와 온성군의 조선로동당 책임비서까지 모가지가 잘릴 위기에 놓였다. 군당책임비서가 탄광(로동단련대)에 6개월만 있으라고 하여 처음에는 따랐다가, 이후 군당책임비서는 연락을 끊고 자신이 모든 책임을 혼자 뒤집어쓰게 되고 팔자에도 없는 감옥생활을 할 처지가 되었다고 한다.[(시사저널)]
이 상황을 그대로 두고볼 수는 없었던 그는 결국 무작정 두만강을 건너고…
2.2. 탈북, 그리고 재입북
2.3. 가족을 데리고 또다시 탈북하다
그의 모친은 탈출을 하려거든 남수의 동생[7]도 데려가라고 하여, 온 가족에다가 자신의 동생까지 이끌고 2003년 6월 다시 두만강을 건넜다. 다른 가족들은 무사히 남한까지 왔으나 베이징까지 걸어가던 과정에서 그의 아내가 잡혀서 북한으로 다시 끌려갔는데, 2008년에 아직 감옥에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2009년에 고생 끝에 아내까지 남한으로 데려와 끝끝내 온 가족이 탈북에 성공하였다.[(시사저널)]
그는 결국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2년 살고 나왔고, 이 것이 문제가 되어 출소 이후로도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재입북 전 받은 심장 수술로 인해 장애 3급을 받아 힘든 일도 많이 못 하였기 때문에, 철원군에 있는 그의 친구의 땅에서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은둔생활을 하며 노후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시사저널)]
3. 평가
그가 재탈북하여 남한에서 구속송치되고 징역형을 선고받을 때까지, 언론에서는 남수를 '남한에서 빨간물이 덜 빠지고 불평하다 재입북하더니 거기서도 적응 못하고 아내와 불화를 겪다 탈출한 종자' 정도로만 평하였다. (# ##) 나중에서야 '기구한 인생역정' (#)이라느니 '김정일을 망신 주고 북한 인민들에게 진실을 알려준' 영웅적 행위 (#)라느니 하는 논평이 나오긴 했지만 이미 그는 세상에 실망하고 은둔한 후였다.그러나 북한의 인민들은 그의 강연 내용과 재탈북을 통해 느끼는 바가 달랐다. 예시로 드는 탈북자의 영상을 보면, 그가 강연에서 밝힌 (그나마도 북한 특성 상 부정적 왜곡이 많이 들어간) 남한에서 지냈던 생활상에서 신기함과 부러움을 느꼈고,[10] 그가 가족까지 데리고 재탈북한 것이 후에 소문으로 돌 때 주민들이 "우산공장 지배인 그 새끼 이번에는 가족까지 데리고... 저럴 줄 알았다!"거나 "하루에 200불 번다는데 가야지, 우산공장 지배인이면 뭐하니? 1달에 1불도 못 버는데" 등등 생각을 나눴다고 증언한다.
[1] 그냥 재입북 및 재탈북으로는 유태준이라는 사람이 더 앞선다. 유태준은 북한에 두고 온 아내를 만나겠다고 남한을 떠서 실제로 북한 땅까지 갔다가 체포되었고, 겨우 탈출하여 남수보다 약 1년 빨리 재탈북하였으나 이후 남한에서 살인미수를 저지른 데다 아내를 데리고 오겠다면서 월북 시도가 잦아 평이 좋지 않다.[(시사저널)] [(시사저널)] [4] 남한으로 치면 회사의 사장이 된 것인데, 남이나 북이나 한 기업의 사장 자리를 갑자기 젊은 사람이 꿰차는 건 결코 흔한 일이 아니다. 남수 스스로도 시사저널 인터뷰에서 자기가 알기로는 30대에 지배인 직함을 단 건 자신이 처음일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5] 인민군의 복무 기간을 고려해보면 전역하자마자 배치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시사저널)] [7] 나이가 20살 차이 난다고 한다.[(시사저널)] [(시사저널)] [10] 이런 부분은 임수경의 사례와도 유사하다. 차이가 있다면 임수경은 상류층이었고 남수는 잘 쳐줘도 서민층이었다는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