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31:47

남정철(독립운동가)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족보명 남정철(南定喆)
자 / 호 극오(極五) / 청강(靑江)
본관 영양 남씨[1]
출생 1888년 2월 5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현동면 당촌
(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개일리 진두들마을)[2]
사망 1970년 9월 25일[3]
경상북도 청송군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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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남정철은 1888년 2월 5일 경상도 청송도호부 현동면 당촌(현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개일리 진두들마을)에서 아버지 남희혁(南熙爀)과 어머니 월성 김씨 김유초(金有初)의 딸 사이의 네 아들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삼종숙(三從叔, 9촌 숙부) 남희재(南熙在)[4]에 입양되었다.

그는 1906년 정용기가 영천에서 의병대를 일으키자 합세하여 종사(從事)로 임명되어 적의 형세를 수색하여 본진에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정용기가 체포된 후에는 귀가했다가 1907년 8월 정용기가 재차 의병을 일으키자 다시 합세하여 동대산, 화장 등지에서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그러나 1907년 9월 1일 입암 전투에서 정용기가 패사하자, 그는 정용기의 부친 정환직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일본군에 항전했다. 그러나 정환직마저 일본군에게 체포된 뒤 총살당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은거했고, 1970년 9월 2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2년 남정철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1] 송정공파(松亭公派)-청송 문중 14대손 철(喆) 하(夏) 항렬. 영양 남씨 22세.[2] 인근의 도평리·거성리·월매리와 함께 영양 남씨 집성촌이다. 독립유공자 남상현·남석우도 이 마을 출신이다.[3] 남씨대동보 2권 대광공후 송정공파(영양 본관) 218쪽에는 1971년 8월 14일에 별세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다.[4] 남희재는 본래 남정철의 생부 남희혁의 사촌 형으로 남정철에게는 5촌 당숙(堂叔)이 되어야겠으나, 남정철의 친조부 남태순(南泰恂)이 자식이 없던 종조부 남도보(南道輔)의 봉사손(奉祀孫)으로 입적되었기에 족보상으로는 삼종숙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