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23 07:15:15

내시

내관에서 넘어옴
파일:다른 뜻 아이콘.svg  
,
,
,
,
,
,
,
,
,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
호수 네스호와 관련된 크립티드에 대한 내용은 네시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내쉬균형 및 게임이론 등을 창시한 미국의 수학자에 대한 내용은 존 내시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다른 뜻에 대한 내용은 아래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
호수 네스호와 관련된 크립티드:
네시
문서의 번 문단
문서의 부분
*
내쉬균형 및 게임이론 등을 창시한 미국의 수학자:
존 내시
문서의 번 문단
문서의 부분
*
:
문서의 번 문단
문서의 부분
*
:
문서의 번 문단
문서의 부분
*
:
문서의 번 문단
문서의 부분
*
:
문서의 번 문단
문서의 부분
*
:
문서의 번 문단
문서의 부분
*
:
문서의 번 문단
문서의 부분
*
:
문서의 번 문단
문서의 부분
*
:
문서의 번 문단
문서의 부분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4C004C, #800080 20%, #800080 80%, #4C004C)"
{{{#!folding 【 기본 구성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tablewidth=100%><colbgcolor=#9E1B32><colcolor=#FFD700> 전임자 <colbgcolor=#FFF,#1C1D1F><colcolor=#000,#ddd>태상황 - 태상황후
상황 - 상황후
<colbgcolor=#fff,#1C1D1F><colcolor=#000,#ddd>전전임 황제 - 태황태후
전임 황제 - 황태후
태상왕 - 태상왕후
상왕 - 상왕후
전전임 국왕 - 태왕태후
전임 국왕 - 왕태후
태상왕 - 태상왕비
상왕 - 상왕비
전전임 국왕 - 대왕대비
전임 국왕 - 왕대비
군주 황제 - 황후 | 여제 - 국서
국왕 - 왕후 | 여왕 - 국서
국왕 - 왕비 | 여왕 - 국서
후계자 (원자[ruby(→, ruby=책봉)]) 황태자 - 황태자비 | 황태녀 - 부마 |
(원손[ruby(→, ruby=책봉)]) 황태손 - 황태손비 | 황태제 - 황태제비
(원자[ruby(→, ruby=책봉)]) 왕태자 - 왕태자비 | 왕태녀 - 부마 |
(원손[ruby(→, ruby=책봉)]) 왕태손 - 왕태손비 | 왕태제 - 왕태제비
(원자[ruby(→, ruby=책봉)]) 왕세자 - 왕세자비/[ruby(왕세자빈, ruby=(조선))] | 왕세녀 - 부마 |
(원손[ruby(→, ruby=책봉)]) 왕세손 - 왕세손비/[ruby(왕세손빈, ruby=(조선))] | 왕세제 - 왕세제비/[ruby(왕세제빈, ruby=(조선))]
자녀 황자 - 황자비 | 황녀 - 부마
왕자 - 왕자비/[ruby(왕자빈, ruby=(조선))] | 왕녀 - 부마
외척 장인([ruby(국구, ruby=(중국·고려·조선))]) - 장모([ruby(국태부인, ruby=(중국·고려))])
궁인 후궁 | [ruby(남총, ruby=남자애인)] | 상궁 | 내시 | 환관
【 범례 】- 부부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4C004C, #800080 20%, #800080 80%, #4C004C)"
{{{#!folding 【 주요국의 칭호·봉작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colbgcolor=#9E1B32><colcolor=#FFD700> 고려 <colbgcolor=#fff,#1C1D1F><colcolor=#000,#fff>해동천자·황제국왕
후계자(정윤왕태자왕세자) |
왕자(태자·→ {[ruby(→, ruby=승진)] }→ 부원대군·부원군) |
왕녀([ruby(공주, ruby=or궁부인)]궁주·택주[ruby(궁주, ruby=+공주)]·원주옹주적·서궁주)
조선 생부(대원군=부대부인) | 국구(부원군 - 부부인)
{국왕대군주} - {왕비왕후}
후계자(왕세자 - 왕세자빈) |
왕자(대군 - 부부인 | - 군부인) |
왕녀(공주|옹주)
왕세자녀(군주|현주)
···· 고모(대장공주 - {[ruby(부마, ruby=(당·송·원·명))]|[ruby(액부, ruby=(청))]})
천자·황제·[ruby(대칸, ruby=(원·청))] | 자매(장공주 - {[ruby(부마, ruby=(당·송·원·명))]|[ruby(액부, ruby=(청))]})
[ruby(황자, ruby=(당·송·원·명))](친왕 - 친왕비) | [ruby(황녀, ruby=(당·송·원·명))](공주=부마)
[ruby(황자, ruby=(청))](친왕|군왕) | [ruby(황녀, ruby=(청))](고륜공주|화석공주)
[ruby(황손, ruby=(원·명))](군왕 - 군왕비)
일본 천황 - 황후
[ruby(남성, ruby=1~2세)](친왕=친왕비) | [ruby(여성, ruby=1~2세)](내친왕)
[ruby(남성, ruby=3세 이하)]( - 왕비) | [ruby(여성, ruby=3세 이하)](여왕)
영국 국왕(+신앙의 수호자 + 랭커스터·노르망디 공작)
왕자(프린스 + [ruby(콘월·로스시 공작, ruby= 잉글랜드·스코틀랜드 확정상속인)] + [ruby(웨일스 공, ruby=왕세자)]) |
왕녀(프린세스 + [ruby(프린세스 로열, ruby=선임공주1인·왕실공주)])
프랑스 국왕(+ 나바르 왕·가장 기독교적인 왕)
왕자(프랑스의 아들 + [ruby(도팽 드 프랑스, ruby=왕세자·프랑스도팽)]) |
왕녀(프랑스의 딸 + [ruby(마담 루아얄, ruby=선임공주1인·왕실부인)])
스페인 [ruby(아스투리아스 공, ruby=왕세자·카스티야왕국계승자)](+ [ruby(지로나 공작, ruby=아라곤연합왕국계승자)[ruby(비아나 공작, ruby=나바라왕국계승자)])
러시아 제국 {차르황제} - {차리차황후}
([ruby(차레비치, ruby=왕태자·차르의아들)]→ )[ruby(체사레비치, ruby=황태자·카이사르의아들)] - [ruby(체사레브나, ruby=황태자비·카이사르의딸)]
독일 제국 [ruby(카이저, ruby=황제)]([ruby( ←, ruby=겸직)]프로이센 왕)
오스만 제국 술탄술탄(+ [ruby(파디샤, ruby=황제·왕들의주인)[ruby(로마 황제, ruby=동로마제국계승자)[ruby(칼리파, ruby=이슬람최고지도자)])
【 범례 】- 부부 | → 변천 | + 추가 |적출 |서출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4C004C, #800080 20%, #800080 80%, #4C004C)"
{{{#!folding 【 해설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font-size: 11px;"
  • 일반적인 서술이므로 예외가 있을 수 있다.
  • 친족 호칭은 군주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 황실왕실구성원 외에 외척, 궁인 등 관계자까지 포괄하였다.
  • 황실 명칭왕실 명칭은 칸을 구분하여 상하로 병기하였다.
  • 편의상 군주의 형제는 제외하였다. 황제, 왕제 문서 참조.
  • 일반적으로 왕세자의 배우자는 왕세자비라고 하나, 고려 말 왕세자빈으로 고친 후 조선에서도 이를 사용하였다.
  • 외척, 남총 등은 왕실 구성원이 아니다. 다수의 국가에서 부마는 왕실 구성원이 아니다.

  • 주요국의 칭호 · 봉작에서는 항렬별로 가로 구분선을 두었다. 단 영국프린세스 로열, 프랑스마담 루아얄은 항렬이 더 높을 경우도 있다.
  • 고려 항목에서 왕자·왕녀의 명칭은 칭호 개념과 봉작 개념이 혼재되어 있다. 왕녀의 명칭에는 여러 등급이 있으나 가장 높은 등급 위주로 대표적인 경우를 상정하여 기술하였다. 외명부 작위는 공주·옹주 등으로, 내명부 칭호는 [ruby(전주, ruby=殿主)]·[ruby(궁주, ruby=宮主)]·[ruby(원주, ruby=院主)]·[ruby(택주, ruby=宅主)] 등으로 나뉘었다.
  • 조선 초기에 생부·국구·대군·의 배우자는 국대부인 봉작 대상이었다.
  • 당·송·원·명·청 항목에서 특별한 표시가 없는 부분은 공통 사항이다. 친왕, 군왕 작위의 등급 개념이다. 명나라에서 대장공주·장공주·공주의 배우자는 부마로, [ruby(군주, ruby=郡主)]·[ruby(현주, ruby=縣主)]·[ruby(군군, ruby=郡君)]·[ruby(현군, ruby=縣君)]·[ruby(향군, ruby=鄕君)]의 배우자는 의빈으로 책봉했다. 청나라는 이전 왕조들과 달리 적서차별에 엄격했고, 황자는 승강 과정을 거쳐야 친왕 또는 군왕에까지 이를 수 있었다. 당·송 및 청에서는 일반적으로 황손을 군왕보다 낮은 등급의 작위로 봉작하였다.
  • 일본 구황실전범(1889)은 1~4[ruby(세, ruby=世)](황자~황현손)를 친왕·내친왕, 5[ruby(세, ruby=世)] 이하를 ·여왕으로 하였으나, 개정 황실전범(1947)은 친왕·내친왕의 범위를 1~2[ruby(세, ruby=世)](황자~황손)로 축소하였다. 천황의 직계 후손의 [ruby(세수, ruby=世數)]는 황자를 1[ruby(세, ruby=世)]로 하여 차례로 세어나간다.
  • 영국 항목은 왕위계승법(1701)을 기본으로 하여 작성하였고, 왕위 계승 순위에서의 성별 차별 폐지를 골자로 한 2013년 법 개정 사항은 반영하지 않았다. 콘월 공작, 로스시 공작, 웨일스 공의 배우자의 칭호는 각각 콘월 공작부인, 로스시 공작부인, 웨일스 공비이다.
  • 프랑스 왕세자의 칭호에서 도팽은 돌고래를 뜻한다.
  • 각국 황실·왕실의 칭호·봉작 등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황실/왕실 명칭 문서 참조.
}}}}}}}}} }}}}}}}}}

1. 개요2. 한국사
2.1. 고려 시대2.2. 조선 시대
3. 중국사4. 대중매체

1. 개요

[1]

임금을 곁에서 모시는 직위. 일종의 비서로 원래는 임금의 근처에서 경호나 잡일을 해 주는 역할이었다.

내시는 실권자의 옆에서 부리는 시종 의미를 가졌으며, 중국에서는 이 의미가 확장되어 내시라고 하면 정식으로 관직을 받았거나 황제의 명을 직접적으로 받드는 중신이 아니라 실권자의 심복 정도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2]

그 특성상 높은 품계를 받긴 어려웠으나 실권자와 친밀하여 권력이 강할 수도 있었고, 내시 생활을 끝내며 중신으로 옮겨오는 사례도 많았다.

후술되어 있듯 환관과는 다르다. 하지만 중화권에선 환관이 내시를 맡는 경우가 제법 흔한 편이었고, 한국에서도 조선시대의 영향으로 '환관=내시'로 통하기도 한다.

2. 한국사


2.1. 고려 시대

오늘날 한국의 현대인들이 '내시'라고 하면 왕이 들어오기 전에 "주상전하 납씨오~", "전하~ 수라를 들이겠사옵니다."라고 소리치는 할아버지를 생각하는 것과 달리 고려 시대에는 내시를 명문가 출신으로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문관들 중에서 선발했다. 즉, 현대인들이 "내시 = 환관"이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고려시대는 환관이 아닌 "내시=현대의 비서실" 개념이였다.

고려의 내시는 여러 관청기관을 원래 소속으로 하고 국왕에 의해 선발되어 '내시원(內侍院)'에 근무했다. 내시원 근무 신하는 본래 관직명 앞에 '내시(內侍)'를 붙였다. 고려 내시들은 왕의 행차에 동행하는가 하면 왕명의 초안 작성, 유교 경전의 강의, 왕실재정 관리 전반을 담당했으며, 때로는 국왕을 대신하여 궐 밖의 민정을 살피기도 했다. 현대로 보면 청와대의 행정관에 대응된다. 내시는 권설직(權設職)[3]이며 특별 봉급으로 별사미를 받았다. 때문에 고려 내시 관료는 선망 대상이었으며, 내시 출신 중 재상에 오른 자가 무려 22명이었다. 과거 합격자가 아니더라도 실무 능력을 인정받아 내시가 되기도 하고, 의술, 점술, 잡기 등으로 내시에 발탁되기도 했으며, 무신정권 시대에는 무신이 내시가 되기도 했다.[4] 왕을 보좌하는 직업이기에 무술시험도 봤다. 이후 공민왕 대에 내시부가 만들어진 후에는 관료들이 담당하던 내시원은 군 복무 대신으로 하는 궁궐 숙위 성중관(成衆官)으로 역할이 위축되었으며, 조선세조에 의해 폐지될 때까지 궁궐 숙위의 기능만을 담당했다.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환관이 곧 내시부를 담당했던 조선 시대의 영향 때문에 환관과 내시를 너무 쉽게 혼동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고려시대의 내시직은 엄연히 당대의 고위가문 자제들만이나 들어갈 수 있는 엘리트직인데도 이를 환관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드라마 《무인시대》에서는 내시 한뢰정중부에게 "개도 안 물어갈 환관 놈"이라고 욕을 먹는 이상한 장면이 나오고[5], 오히려 진짜 환관이었던 왕광취는 멀쩡히 수염 달린 관료로 묘사되어 고증오류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드라마 《정도전》에서는 이를 신경쓰려다가 진짜 환관이었던 최만생조차 수염을 기른 관료로 묘사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였다.

2.2. 조선 시대

조선 시대에 들어서 환관들이 내시부를 맡게 되면서 '내시=환관'이라는 이미지가 생겼으며 환관들은 고자였기 때문에 내시라는 말에 고자라는 의미를 포함하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태조 시대에 당시 세자 의안대군의 아내 현빈 유씨가 내시 이만간통한 사건으로 인해 이만은 처형되고 세자빈은 폐출된 것에서 시작되어 이후부터는 거세한 사람들만 내시가 되게 함으로서 내시와 환관의 차이가 없어졌다.

흔히 내시는 죽을 때까지 궁 안에서 사는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어느 쪽이든 고령이 되면 진상품 관리 등의 파견명목으로 궁 밖에 나가 말년을 보냈다. 경상북도 청도군 임당리에 있는 7동짜리 한옥이 그 중 하나로 내시들의 양로원 같은 역할을 하던 장소다. 집안이 부유하거나 돌봐줄 수 있는 가족이 있으면 귀가해서 살 수도 있었다. 이는 궁녀도 마찬가지다. 이는 오로지 왕과 왕족만이 궁궐 안에서 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왕의 여자'인 궁녀들과 달리 내시들은 혼인도 가능하고 양자를 두어 가문을 이어갈 수 있었다. 이렇게 내시들이 가문을 이은 족보인 양세계보도 기록으로 남아있다. 성기를 모두 제거하는 중국의 환관들과 달리 조선의 내시는 고환만 제거했기 때문에 사춘기 이후 거세한 경우에는 성관계도 가능했다.

이때도 내시의 체력이 중시되었으며 기록엔 두 내시를 밧줄로 묶고 서로 반대 방향으로 뛰게 했다는 내용이 있다.

내시들은 환관이 되기 위해 잘라낸 자신의 고환을 잘 말린 후 '양물단지'에 보관했으며 그 양물단지는 내시들의 대장인 상선이 일괄 관리했다. 죽은 후 고환을 다시 몸에 접합시켜 관에 넣어야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속설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시들은 자신의 고환이 담긴 양물단지를 보물처럼 아꼈다. 서울특별시 노원구 월계동의 초안산에 분묘군이 있는데, 여기 묻힌 사람들의 상당수가 내시다.
파일:93369_73519_2727.jpg 파일:image_readtop_2017_216431_14908566652829567.jpg
영국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조선시대 내시 임진왜란 공신이었던 내시부 상선 김새신 영정

일부 사극에서 조선시대 내시들은 뿔이 없는 사모를 쓰고 흉배가 없는 녹색 단령을 입는 것으로 묘사되는데, 고증 오류이다. 조선시대에 그려진 내시들의 초상화를 보면 일반 관료들처럼 뿔이 있는 사모를 쓰고 품계에 따른 흉배가 달린 관복을 입었다.[6]

조선시대 내시들이 뿔이 없는 사모를 쓰고 사극 드라마에 나오는 이유는 과거 흑백 TV 때문이다. 상복 색으로 품계와 직책을 구분하던 조선 사회이다 보니 흑백 TV에서 사극을 방영할 때 지위고하를 시청자들이 인지할 수 없었고 드라마 제작측에서 내시를 다른 문신들과 구분하기 위해서 사모 뿔을 일부러 잘라낸 채 연출하였다. 그 때 자리잡은 이미지가 현재까지 이어져 오는 것이다.

내시라고 하면 보통 거세한 남자들 특유의 유약한 이미지가 지배적인데, 내시들은 왕의 최측근인 동시에 비상시 경호의 역할도 맡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무예를 익혔고, 생각보다 강인한 집단이었다. 내시는 내시가 되는 과정 때문에 강한 사람들만 될 수 있었는데 싹둑을 할 때 살아남을 정도로 강해야만 내시가 될 수 있다. 내시 지망생들은 싹둑 과정에서 과반수가 사망한다. 무협지에서도 내시들이 힘을 숨기거나 하는데, 실제에 의거한 것이다.

3. 중국사

내시 직종의 원조인 중국 왕조들은 아주 오래 전인 춘추전국시대부터 내시가 곧 환관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인구의 차이 및 내명부로 대표되는 궁궐 내 분위기의 차이 등으로 보인다. 춘추전국시대 제환공의 말년을 끝장낸 수초가 환관인 내시였다.

역사서 사기의 저자 사마천을 환관 내시로 떠올리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히는 처음에는 일반적인 관직 생활을 했으나 죄인으로 몰려 궁형을 당한 것이고, 궁형을 당한 후에야 사실상 환관[7]으로서 일했다.

4. 대중매체

  •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내시(영화)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 2007년 SBS 드라마 왕과 나에서 국내 처음으로 비교적 내시들의 위치를 고증했다. 심지어 내시가 되는 고환 제거 수술 장면까지 나온다. 그전까지는 내시는 목소리가 얇고 체격이 왜소하며 주로 임금의 심부름꾼처럼 묘사되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내시들이 무관 수준의 무예와 액션신이 등장한다. 특히나 부모들이 절망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가문이 닫히는 일이라며 조상님들께 무슨 낯으로 본다며 한탄했다.

[1] 여기서 시(侍)는 일본의 사무라이(侍(さむらい、サムライ))와도 의미가 통하는데, 한자가 같다.[2] 삼국지에서 허저가 조조의 신임을 얻게 된 사건이 있었는데, 조조가 자고 있을 때 하후돈이 막사에 들어가려고 하자 그걸 제지하면서 '공은 인척에 떳떳한 중신이고 이 사람은 한낱 내시에 지나지 않으나, 일국의 승상이 잠을 청하는데 누군가가 들어가는 것을 내버려둘 수 없다'라는 말을 한 사건이다. 장송이 양수에게 '중신이 되어야 할 이가 승상부의 내시를 하고 있다'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례는 무수히 많다.[3] 임시 관직. 경국대전에는 대군사부, 왕자사부, 왕손교관 등으로 정이되어 있다.[4] 무신정변의 주역인 이의방의 동생이자 이성계의 6대조인 이린이 무신정변 이후 내시집주로 재직하였다.[5] 그런데 정작 환관이라면서 한뢰가 멀쩡히 수염을 달고 있어 작가가 고자의 고증도 완벽히 실패했다.[6] 여말선초가 배경인 사극이자 고증 반영면에서는 뛰어난 용의 눈물이나 왕과 비, 대왕 세종에서는 내시들도 사모와 단령을 착용하고 다닌다. 또한 영화 남한산성에서도 인조 옆에 붙어다니는 상선 역시 맞는 복식을 하고 나온다.[7] 사마천이 후일 받은 관직 중서령은 보통 환관들이 맡는 자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