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8 19:42:02

낸터켓

파일:난터킷.jpg

1. 개요2. 역사
2.1. 포경 산업 도시2.2. 대화재와 쇠락2.3. 현대의 부활
3. 교통4. 매체에서5. 여담

1. 개요

Nantucket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섬이자 도시. 난터켓, 난터킷, 낸터킷 등으로도 표기된다. 케이프 코드 곶 근해에 위치하며, 인근 대도시로는 보스턴이나 프로비던스가 있다. 현재는 인구 1만 4천의 소도시지만, 과거 18-19세기에는 미국 포경 (고래잡이) 산업의 중심지로 번영하였다. 소설 모비 딕의 배경 중 하나로, 이를 이용한 관광 마케팅이 활발하다. 시내에는 호황을 누리던 19세기 콜로니얼 양식의 건물들이 즐비하여 고풍스러운 느낌을 준다. 미국 동부의 대표적인 휴양지로, 여름 피서 기간에는 인구가 8만으로 급증하기도 한다.[1]

2. 역사

지명은 과거 뉴잉글랜드 해안에 거주하던 왐파노아계 원주민 부족인 니안틱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17세기 들어 유럽 이주민들이 서쪽에 이웃한 섬인 '마사의 포도원(Martha's Vineyard)' 정착하며 알려졌고, 1641년 그 지도자인 토마스 메이휴가 일대의 도서들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였다.[2] 이때부터 유럽인들이 현지 원주민들과 협정을 맺으며 정착하였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 덕에 필립왕 전쟁 때에도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다. 17세기 말까지도 대륙의 원주민들은 계절마다 섬에 왕래하여 물고기와 해안에 밀려온 고래를 잡았다. 본래 뉴욕의 두크스 카운티에 속해 있던 낸터켓 섬은 1691년 신설된 매사추세츠 만 주에 편성되었고, 1695년에는 낸터켓 카운티가 설립되었다.

토마스 메이휴는 섬에 더 많은 이주민들을 유치하기 위해 권리를 분할하였고, 권리자의 수는 10인에서 31인으로 늘어났다.[3] 또한 기술이 뛰어난 상인들에게 최소 3년간 섬에 살며 무역에 종사하는 대가로 재산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이로써 정착한 주민들은 본래 농업과 목축업에 주로 종사했으나, 남용으로 토지가 훼손되자 기존의 원주민들처럼 어업에 나서게 되었다. 한편 도시의 본래 이름은 셔번(Sherburne)이었고, 섬의 서쪽에 있었다. 하지만 바다와 연결된 만이 퇴적으로 인해 연못으로 변하자, 주민들은 좀 더 동쪽에 있는 현재의 시가지에 도시를 이전하였다(1795년). 도시의 이전과 함께 지명 역시 섬과 동일한 낸터켓(Town of Nantucket)으로 변경되었고, 이는 당시 주지사이던 새뮤얼 애덤스 에 의해 승인되었다.

2.1. 포경 산업 도시

지표의 2/3은 낸터켓의 것이었으니, 제국이 황제의 것이듯 바다가 그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소설 모비 딕 14장에서[4]

도시 동쪽에서 섬 북동쪽까지 깊게 파인 만에는 종종 길을 잃은 쇠고래들이 유입되었다가 썰물 때에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헐떡이는 경우가 많았다. 원주민들과 이주민들은 모두 스크라그라 불린 이들을 사냥하였고, 더 나아가 약 7m 길이의 소형 선박을 타고 나가 고래들을 죽인 후 해변으로 끌고 오는 사냥에 나서기도 하였다. 선원들은 부채에 의해 예속된(debt servitude) 원주민 노꾼 5인과 조판을 잡은 이주민 조타수 1인으로 구성되었다. 1720년대까지 섬의 인구는 원주민이 더 많았다 한다. 낸터켓에서 잡힌 고래에서 추출된 향유는 주로 영국에 팔렸고, 따라서 주민들은 미국 독립 전쟁기에도 중립을 지키며 사태를 주시하였다. 모비 딕에서 잘 묘사되었듯, 19세기 초엽 낸터켓은 미국 줄지의 포경 도시였다.

2.2. 대화재와 쇠락

한 세기 이상 호황을 누리던 도시는 1846년 7월 13일, 고래 기름과 목재에서 발화한 대화재로 40 헥타르의 시가지가 전소되는 큰 손실을 입었다. 이로써 수백 가구가 집을 잃고 빈민으로 전락하였고, 다수의 주민들이 섬을 떠났다. 동시에 퇴적으로 인해 큰 배들의 항만 진입이 불가능해졌고 도시의 쇠퇴는 가속화되었다. 한편 심해항이 있고, 철도를 통해 향유를 대량으로 빠르게 운송할 수 있는 뉴베드포드가 낸터켓을 대체하는 포경 산업의 중심이 되었다. 낸터켓에 그나마 남아있던 포경선들 역시 남북전쟁 당시 남부 해군의 기습으로 전부 파괴되고 말았다.

2.3. 현대의 부활

한 세기 이상 거의 방치되어 있던 낸터켓은 오히려 미개발로 인해 19세기 중반의 건축을 보존한 곳으로써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50년대 들어 사업가들이 노후 주택들을 매입하여 미국 동북부 부유층의 피서지로 개발하였고, 여기에 모비딕이란 요소를 덧붙여 관광 도시가 되었다. 낸터킷의 부흥 2022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낸터켓에서 추수감사절 연휴를 보낸 바 있다. #

3. 교통

  • 난터켓 여객 터미널에서 케이프코드의 히아니스 포트 및 마서스바인야드 (마사의 포도원) 섬으로 이어지는 여객선이 운항한다.
  • 섬 남쪽에는 난터킷 메모리얼 공항이 있다.

4. 매체에서

미국에서 낸터켓은 뭔가 이야기가 많은 도시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심슨 가족에서도 간혹 언급되며, 낸터켓을 모티브로 한 바니클 베이(Barnacle Bay)란 섬그리고 얌얌 피시을 주제로 한 에피소드도 있다.[5] 호머 심슨은 한번 '낸터켓에서 온 남자가 있었다'로 이야기를 해보려 하지만, 더 생각이 나지 않자 그대로 이야기를 끝내버리기도 했다.

5. 여담

별명으로 '바다의 작은 회색 여인'이 있는데, 자주 섬 주변에 안개가 낀 것에서 유래한다.

모디빅의 등장 인물 중 스타벅스의 어원이 된 스타벅과 아합이 낸터켓 출신으로 나온다.

섬 북동쪽의 만을 따라 가늘게 이어진 모래 사주의 이름이 코추 해변(Coatue Beach)이다.

2023년 여름부터 낸터켓 섬의 모든 해변을 누드 비치로 전환하는 조례가 통과되었다. #

[1] 대략 미국의 제부도나 을왕리 정도의 위치이다[2] 스털링 남작 윌리엄 알렉산더에게서 권리를 매입하였다. 그리고 1659년 그는 다시 9명의 투자자들(Tristram Coffin, Peter Coffin, Thomas Macy, Christopher Hussey, Richard Swain, Thomas Barnard, Stephen Greenleaf, John Swain and William Pile)에게 권리 대부분을 매각하고 자신은 1/10만을 유지하였다. 그러한 10인은 각각 1인의 사업자를 초청할 수 있었고, 따라서 섬의 관리인은 20인으로 규정되었다. 주식회사 1/10의 양은 30파운드와 (자신과 아내를 위한) 비버 모자 2개였다고 한다. 앞서 나온 10인은 낸터켓의 창립자들로 여겨지며, 현재까지도 주민 대부분이 그들의 후손이다. 12지파[3] 10인 -> 2배 하여 20인 -> 포기하거나 합병하여 27인 -> 외래 상인 더하여 31인(1667년)[4] 모비 딕의 등장인물 중 스타벅스의 어원이 된 스타벅과 에이허브가 낸터켓 출신으로 나온다. 에섹스 호 역시 낸터켓의 포경선이다.[5] 이때 호머와 바트가 선원으로 나갔다가 죽을 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