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노승호 盧承浩 | |
출생 | 1921년 3월 15일 |
사망 |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최종계급 | 육군 하사 |
복무 기간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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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승호(盧承浩, 1921년 3월 15일 ~ ?)는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2. 생애 및 군 경력
노승호는 1921년 3월 15일 출생하였으며,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하여 이천길 상사와 함께 통신병으로 복무하였다.
1951년 용문산 전투에서 이천길 상사와 함께 통신선을 연결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그의 전후 행적과 사망 시기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6.25 전쟁 참전
용문산 전투 (1951년 5월 16일 ~ 17일)
1951년 5월, 중공군은 1차 춘계공세를 감행하며, 서부전선과 중부전선을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 용문산(龍門山)을 집중 공격하였다.
용문산은 양평 동북쪽의 해발 700m 이상 험준한 고지로, 북한강과 남한강을 끼고 있어 자연적인 방어 요충지이자, 북진을 위한 핵심 전초기지였다.
중공군은 제189사단을 투입하여 353고지를 포위하고, 국군 제3대대는 고립된 채 치열한 전투를 벌이면서 통신이 완전히 두절되었다.
이로 인해 제2연대는 제3대대의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으며, 즉각적인 지원도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결사대 자원 및 통신선 복구
당시 통신대장은 "통신은 군대의 생명선이며, 제3대대의 생존과 353고지의 사수가 너희에게 달려 있다."**고 격려하였으며, 이들은 "죽음으로써 책임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들은 적의 매복을 피해 총탄과 포탄이 빗발치는 전장을 기어 나아갔으며,
적진이 형성된 지역을 통과하여 유선이 절단된 지점을 찾아냈다.
노승호 하사는 "이 중사님, 여기서 더 나가면 적진입니다!"라고 경고했지만, 이천길 상사는 "우리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절선을 찾아야 한다!"라며 계속 전진하여 결국 통신선을 복구하였다.
승리와 공적
이들의 희생적인 임무 수행 덕분에 제3대대는 본부와 다시 연결될 수 있었으며, 결국 역습을 감행하여 353고지를 사수할 수 있었다.
이천길 상사와 노승호 하사의 헌신은 국군이 용문산 전투에서 승리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