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혈뇌장벽(血腦障壁) , 혈액뇌장벽[1]Blood-brain-barrier, BBB
뇌와 혈관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으로, 뇌에 외부 물질이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2. 기능
뇌는 생물체에서 가장 민감한 부분이면서 기관 중 두번째[2]로 에너지를 많이 쓰는 곳이라 그만큼 위험하고 불필요한 것들도 함께 유입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뇌 혈관마다 혈뇌장벽이라 불리는 필터 세포층이 조성되고, 여기에서 여과돼 뇌에 다다르는 물질은 물이나 기체 분자, 포도당, 특정 지용성 물질 등 극소수이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무리 친수성이 높은 수용성 물질이라도 분자량이 조금만 높으면 통과하지 못하는, 현존하는 반투막 중에서도 아주 끝내주는 분자 여과성능을 보여준다는데 있다. 이로써 어느정도 분자량이 있을 수밖에 없는 대부분의 미소병원체 및 수용성 독성물질이 걸러진다. 물론 최신 인공 반투막이야 NaCl 이온까지 건드리는 수준이나, 뇌혈관장벽은 분자량이 큰 지방은 선별해서 통과시키는 극강의 선택능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장벽으로 인해 일반적으로 면역 세포들이 뇌에 접근할 수 없다. 심지어 항체도 들어갈 수 없다! 그래서 교세포 중 하나인 미세신경교세포(microglia)가 뇌내 면역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이 세포는 평소에는 불필요한 시냅스, 죽은 신경세포 조각 등의 노폐물들을 청소하고 뇌에 접근한 항원을 잡아먹는다. 또한 소화시켜서 나온 항원 조각을 림프구에 전달하는 항원제시세포 역할도 한다.
비슷한 예시로 안구와 고환이 있다. 안구와 고환은 일반적인 면역체계가 접근할 수 없도록 구성되어 있는데, 만일 이것들이 파열 등으로 인해 외부로 노출 될 시 면역체계는 이를 외부 침입자라고 인식해서 안구/고환 성분을 항원으로 하는 항체를 생성하여 이를 공격한다. 이 때문에 두 개 중에서 한쪽만 파열되고 한쪽은 멀쩡하더라도 파열된 한쪽을 빠르게 제거하지 않으면 멀쩡한 한 쪽마저 내 몸의 면역체계에 공격당해 곪아 제거할 수밖에 없다.
3. 구성
혈뇌장벽은 혈관을 뇌의 내피세포로 감싸는 모양을 띄며, 내피세포는 서로 밀착연접(tight junction)되어있기에 세포 사이로 물질이 지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뇌의 뇌교세포(glial cell, glia)중 하나인 성상세포[3]가 발을 뻗어 혈뇌장벽을 구성하는 내피세포를 지지한다.4. 응용
혈뇌장벽은 혈관을 타고 들어오는 외부물질로부터 뇌를 보호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동시에 인간이 만든 약물이 뇌에 들어가는 것을 막는 골치아픈 장벽이기도 하다. 100만 년 단위로 진화해온 현생인류의 화학적 방어 체계는 결코 무시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4] 다른 동물들도 마찬가지. 가령, 한 천재 과학자가 치매를 뉴런 단위에서 치료하는 기적의 약물을 만들었다고 가정하자. 이 약물이 뉴런 하나하나에 효과가 있더라도 정작 뇌에 도달하지 못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그렇다고 두개골을 여는 대수술을 통해 뇌에 직접 약물을 넣거나, 척수에 주사바늘을 꽂아 뇌척수액을 통해 약물을 전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5] 약물은 효능만 신경쓸 것이 아니라 체내에 가장 효율적으로 전달되도록 개발되어야 하며, 복용이 불가능할지언정 최소한 혈관주사로 전달은 되어야 비로소 쓰일 수 있다.또한 뇌의 병변[6]위치를 특정하는데도 이용되는데 병변이 발생한 부위는 혈뇌장벽이 파괴되므로 보통은 이를 통과하지 못하는 비확산성 RI를 정맥주사하여 추적한다.
다행히 혈뇌장벽이 아무리 촘촘해봐야 결국엔 세포로 되어 있고, 세포의 막은 인지질로 이루어졌으므로 지방 속에 녹아있는 지용성 물질까지는 거르지 못한다. 때문에 프로포폴같이 혈액에 녹지 않는 소수성 물질이 기름에 녹은 상태에서는 오히려 뇌에 잘 전달될 수있다. 이를 이용해 약물에 작은 나노 막을 씌워 뇌에 직접 약물을 전달하는 연구도 진행 중이다.
5. 세균 및 바이러스
이러한 뇌혈관장벽을 투과할 수 있는 세균 또는 바이러스에는 뇌염바이러스, 매독균의 신경매독이나 광견병바이러스등이 있다. 항체도 통과하지 못하는 뇌혈관장벽을 바이러스가 통과한다는 점 때문에 정확한 원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여러 가지 가설[7]만 나온 상태.물론 이 혈뇌장벽이 평생 불변인 건 결코 아니고, 외부 요인으로 손상되거나 뇌내 염증 반응에 호응해 느슨해져 혈관 내 면역 물질이 들어올 수 있게 되기도 한다. 문제는 그 병이 뇌염 질병인 주제에 뇌내 염증을 최소화하는 질병이거나 하면 이게 여의치가 않게 되어 면역 반응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게 어렵다는 것[8]
[1] 대한의학회의 의학용어사전에 따른 번역어[2] 첫번째는 간.[3] astrocyte, 이름 그대로 별 모양으로 생겼다[4] 치매의 치료제 개발이 지지부진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아무리 치료제를 개발하려고 해도 결국 혈뇌장벽을 못 넘기 때문이다.[5] 물론 실제로 치매를 뉴런 단위로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이 개발이 된다면, 환자들은 척수에 주사 놓은 것 정도는 흔쾌히 감수할 것이며, 경우에 따라 두개골 여는 것도 감수할 것이다. 어디까지나 예시.[6] 주로 암[7] 이를테면 광견병이나 소아마비, 신경매독 독소의 경우 병원체가 혈관 대신 신경절을 타고 신경세포의 매커니즘을 이용해 뇌까지 천천히 이동하거나 하는 식. 특히 광견병 바이러스의 경우 이 매커니즘들 중 꽤 느린 방법을 채택해(하루 50 ~ 100 nm) 잠복기가 매우 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별개로 드문 확률로 SARS 등 다른 바이러스들도 뇌, 신경 질환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바이러스 일부가 신경절에 침투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추측하는 중.[8] 물론 뇌에서 염증 반응이 커지면 짤없이 자가면역성 뇌염이 되어버리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뇌내에도 면역 기능을 수행하는 미세신경교세포가 존재하지만 아무래도 면역 반응 자체가 억제되는 면역 특권 구역이라는 게 문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