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4-09 17:35:52

누누 멘데스(포르투갈 백작)

파일:포르투갈 백국 국장.png
포르투갈 제1백국 백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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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5098><colcolor=#fff> 포르투갈 백작
누누 멘데스
Nuno Mendes
출생 미상
사망 1071년
재위 포르투갈 백국의 백작
1050년에서 1054년 사이 ~ 1071년
아내 곤시나
자녀 노바 누녜스
아버지 멘도 누녜스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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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 백국 10대 백작.

2. 생애

포르투갈 백국 9대 백작 멘도 누녜스의 아들로, 1050년에서 1054년 사이에 포르투갈 백작이 되었다. 노게이라, 산타테클라, 다딤, 세르케타, 구알타르, 바로스(브라가) 일대에 영지를 소유했으며, 기마랑이스 수도원에 여러 차례 기부한 사실이 수도원 기록에서 확인되었다. 그는 레온 왕국의 국왕 페르난도 1세가 포르투갈의 중소 귀족들을 행정직에 임명해 포르투갈 백국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하고, 1062년에 고디노 베네가스를 포르투갈 총독으로 선임해 직할 통치를 실시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065년 페르난도 1세가 사망한 뒤 그의 세 아들 산초 2세, 알폰소 6세, 가르시아 2세가 아버지의 영역을 세 개로 나눠서 통치했다. 이때 갈리시아와 포르투갈 백국은 가르시아 2세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세 형제가 서로를 꺾고 영역을 확장하려는 야심을 품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틈을 타 1070년 반란을 일으켜 가르시아 2세로부터 독립하려 했다. 그러나 1071년 페드로소 전투에서 가르시아 2세의 진압군에 참패하고 전사했다. 그의 영지는 몰수되었고, 나중에 페르난도 1세의 영토를 통합한 알폰소 6세가 포르투갈의 총독으로 임명한 부하 시스난도 다비데스에게 넘겼다.

그는 '곤시나(Goncina)'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여인과의 사이에서 적어도 노바 누녜스라는 딸 한 명을 낳았다. 노바는 시산도 다비데스와 결혼해 엘비나 시스난데스를 낳았다. 엘비나 시스난데스의 남편인 무니오 프로마리게스의 아들 마르팀 모니스는 훗날 시스난도의 뒤를 이어 포르투갈 총독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