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니키포로스 콤니노스 (영어: Nikephoros Komnenos, 그리스어: Νικηφόρος Κομνηνός) |
출생 | 970년 |
사망 | 미상 |
직위 | 바스푸라칸 테마 절도사 |
반란 대상 | 콘스탄티노스 8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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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동로마 제국 마케도니아 왕조의 반란자. 조지아 왕국과 내통하여 콘스탄티노스 8세를 상대로 반란을 꾀하다 체포되어 실명형에 처해졌다.2. 생애
역사에서 처음 등장하는 콤니노스 가문 일원 중 한 명이지만, 가문의 시조로 알려진 마누일 에로티코스 콤니노스와 어떤 관계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마누일의 동생이라는 설이 있으나,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강하다. 그리스 역사가 콘스탄티노스 바르조스는 그가 970년경에 출생했다고 기술했다. 1022년, 바스푸라칸의 왕 세네케림 호반네스는 이슬람 세력의 군사적 압박을 더 이상 독자적으로 막아낼 수 없다고 판단하고, 동로마 제국에 왕국을 헌납하는 대가로 세비아스테의 통치권과 넓은 영지를 하사받았다. 바실리오스 2세는 바실리오스 아르히로스에게 바스푸라칸을 다스리게 했으나, 워낙 무능해서 니키포로스로 대체했다. 그는 바스푸라칸 테마 절도사로서 나름대로 잘 운영했던 듯하다.그런데 1026년 또는 1027년, 콘스탄티노스 8세에 의해 절도사 직위를 해임당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소환되었다.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진다. 동로마 연대기 작가 요안니스 스킬리치스는 니키포로스가 인근의 투르크족을 고용하는 서면 계약을 작성했는데 콘스탄티노스 8세가 이를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세력을 불리려는 의도로 간주하고 소환령을 내렸다며, 바스푸라칸을 지키려는 그를 지나치게 의심한 황제를 비난했다. 반면 아리스타케스 라스티베르치는 그가 바스푸라칸을 독립시켜서 왕을 자칭하게 위해 조지아 왕국과 내통했다고 한다.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소환된 그는 동료 8명과 함께 1년간 조사받았고, 반역 혐의가 확정되면서 실명형에 처해졌다. 이후의 행적은 알려진 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