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26 03:25:32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1. 개요2. 설립 배경 및 한계3. 활동4. 해산

1. 개요

1946년 2월 14일에 미군정이 만든 기관.

줄여서는 "민주의원" 이라고 부른다.

이 기관은 법적으로 정해진 기관은 아니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2. 설립 배경 및 한계

1946년 2월 1일과 2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측은 새로운 정부를 만들기 위해 비상국민회의를 열었고, 여기서 28명의 대표를 뽑았다. 이후 미군정의 요청으로 이들을 자문기관으로 삼아 민주의원을 만들었으며, 2월 14일 공식적으로 출범했다.

민주의원은 이승만이 의장, 김구와 김규식이 부의장을 맡았으며, 남한의 주요 정당 지도자들이 참여했다. 원래는 새로운 정부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지만, 실제로는 미군정 사령관 하지(Hodge)의 자문 역할에 머물러 활동에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의원은 한국의 독립과 민주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선언했다.

3. 활동

2월 23일, 민주의원은 조직을 정비하고 32개 규칙을 정하였으며, 매주 화요일, 목요일, 토요일에 창덕궁에서 회의를 열며 국정을 운영해나갔다.

3월 18일에는 임시정책대강 27개 조항을 발표했기도 하였으며[1], 미소공동위원회에 제출할 안건을 정리하고 여러 소위원회를 만들어 협상을 준비하기도 하였다.

그 외에도 식량 문제 해결, 일본식 도로명 변경, 우측통행 실시, 미군정의 2500만 달러 차관 도입 승인 등 여러 가지 정책을 추진했다. 법적으로 정해진 기관은 아니었지만,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4. 해산

그러나 1946년 12월, 미군정이 남조선 과도입법의원을 만들면서 민주의원의 역할은 사실상 끝이 났다. 이후 1948년 5월 29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공식적으로 해산되었다.
[1] 경제를 계획적으로 운영해 모든 국민이 골고루 잘 사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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