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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베컴/클럽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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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데이비드 베컴의 클럽 경력에 대해 소개하는 문서.

2. 클럽 경력

2.1.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

파일:DavidBeckham_ManUtd.jpg
390경기 85골 118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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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레알 마드리드 CF

파일:Beckham_RMA.jpg
159경기 20골 51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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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로스앤젤레스 갤럭시 / AC 밀란

파일:external/www.thetimes.co.uk/116983811__357676b.jpg
이적 이후 LA 갤럭시의 간판 스타로 활약. 하지만 이적 당시 갤럭시 구단은 비난을 많이 받았다. 야구나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에 절대적으로 밀리는 메이저사커 리그에서 베컴이 받은 돈은 다른 팀 동료들이 받는 돈을 다 합치고도 남는 돈이었기 때문.[1]
파일:DavidBeckham_Milan.jpg
로스앤젤레스 갤럭시에 몸 담고 있었던 시즌 중 두 시즌은 AC 밀란에서 임대 생활을 하기도 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파비오 카펠로 감독이 잉글랜드 국대 감독으로 부임하여 축구 변방으로 떠난 베컴에게 유럽 최상위 리그의 팀에서 뛰어야만 그를 국가대표로 뽑아주겠다고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게 전달하면서 AC밀란으로 가보는 게 어떻겠냐고 추천을 하여 이루어진 임대였다. 밀란의 감독이었던 카를로 안첼로티는 베컴을 굉장히 아까운 인재로 여겼는데, 안첼로티는 베컴은 미드필더로서 투쟁심, 활동량, 수비력, 축구지능, 킥력 등 미드필더에 필요한 모든 재능을 가지고 있지만 맨유에서 플레이 스타일을 한정짓는 바람에 재능만큼 꽃 피우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특유의 정확한 크로스에 노련미 넘치는 플레이까지 더해지며 밀란의 미드필드에 활력을 불어넣는 쏠쏠한 활약을 펼친다. 밀란의 팬들은 베컴의 활약에 매우 만족해했고, 베컴 역시 밀라노의 생활을 즐겼다.

다만 베컴은 이 시기에 원 소속팀이 명백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꽤나 대놓고 AC밀란에 남고 싶다고 해서 LA 갤럭시 팬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들었다. 다른 팀원들이랑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고액연봉자[2]가 팀 성적도 안 좋은데 원 소속팀 활동에 집중하지 않고 다른 팀에서 계속 임대로 뛰고 싶다고 하니 팬들이 불만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팬들 뿐만 아니라 LA 갤럭시 라커룸에서도 베컴에 대한 불만이 심했다. 특히 미국 축구의 슈퍼스타 랜던 도노반은 자국 리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MLS와 갤럭시를 등한시하는 베컴에 화가 많이 나서 책에 그를 저격하는 내용을 실을 정도였다. 이 둘은 실제로 서로를 프로답지 못하다면서 공격하는 등 갈등이 있었다. 이 불화는 구단이 직접 나서서 중재를하고 도노반과 베컴이 서로에게 사과를 하며 일단락되었다. 훗날 베컴은 당시 자기가 국가대표 합류에 눈이 멀어 동료들, 가족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었고 이기적이었다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파일:DavidBeckham_ReturnManchester.jpg
2010년, 안첼로티가 떠난 밀란에 임대 이적했을 때에는 절묘하게도 밀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대결하면서 처음으로 올드 트래포드에 서게 되었는데 비록 선발 출전하지는 못했지만 교체로 투입될 때 전 관중이 기립박수로 환대해줬다.[3]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팬들이 건네 준 노란색/녹색 스카프를 목에 두르고 퇴장하며 더 큰 환호를 받았다. 다만 그 스카프는 그 당시 경기장에서 구단주에 대한 항의 시위를 이어가던 팬들의 상징이라서 약간 논란이 있었다. 베컴 본인은 시위에는 큰 관심이 없고 그저 팬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는 듯. 그러나 2010년 시즌에 밀란에서의 최종전에서 아킬레스건 부상을 당하면서 2010년 월드컵 출전이 좌절되었다. 기량이 예전만 못하다거나 세간의 관심에서 조금 멀어졌다고 해도 베컴은 여전히 잉글랜드 국대 캡틴급의 위상을 가진 인물이었던 데다, 베컴 없이 치르는 국제 대회는 참 오랜만이었기에 잉글랜드 축구팬들에게는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성적도 늘 그렇듯이 큰 아쉬움이었다

그리고 그 사이 겨울 이적시장에서 토트넘에서 영입제의를 했으나 거절했다. 맨유 외의 프리미어 리그에서는 뛰지 않겠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일단 2012년 12월에 열리는 MLS컵 결승을 마지막 무대로 퇴단 절차를 밟고 있다. 선수생활을 계속 이어가려는 의욕을 보이고 있는데 아직 차기 행선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태. 다만 현지 언론에 따르면 중동으로 팀을 옮겨 마지막 축구 인생을 불사르리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미러, 피플 등에서) 현재 유력한 행선지로 꼽히는 곳은 카타르의 알 사드[4], UAE의 알 와슬 등이며 프랑스의 모나코나 PSG도 관심이 있다는 설이 있다. QPR의 레드냅 감독도 토트넘 감독하던 시절부터 계속해서 베컴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베컴은 맨유가 아닌 프리미어리그 팀에서 뛰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다면서 계속 거절했다.

2008-09 시즌과 2009-10 시즌 겨울 기간에 임대로 와서 AC밀란에서 활약을 한 것에 대해 밀란 팬들은 긍정적이지만 정작 LA갤럭시와 MLS팬들은 당연히 좋아하지 않았다. 체력적인 문제와 부상을 달고 복귀했기 때문. 2008-09 세리에 A에서는 짧은 기간에 18경기나 출전했지만 그 여파로 정작 2009 MLS에서는 11경기밖에 뛰지 못했다. 게다가 2009-10 시즌 겨울, 다시 세리에 A에 임대로 가서 11경기에 출전했지만 2010 MLS에서는 또 그 여파로 7경기밖에 뛰지 못한게 그 예시이다.

2.4. 파리 생제르맹 FC

파일:Beckham_PSG.jpg
그렇게 차후 행선지를 저울질하며 입단 타진을 하고 있던 중 아스널 선수들과 같이 훈련을 하게 됐는데, 언론에서는 베컴이 아스날에서 마지막 불꽃을 태운다는 기사를 써댔다. 베컴은 아스날 그리고 아르센 벵거 감독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MLS가 쉬는 겨울마다 아스날에 합류해 훈련을 해왔지만, 맨유의 서포터이자 레전드로서 맨유의 라이벌인 아스날의 유니폼을 입을 수는 없기에 아스날 입단설을 일축했다. 아르센 벵거 감독 역시 베컴은 아스날에 몸을 만드는 중이며, 아스날은 베컴에게 이러한 편의를 제공할 뿐이라고 입단설을 부인했다. 그리고 베컴은 자신 대신 아들인 로미오를 아스날의 유스팀에 입단 시키는 것으로 대신했다(...).[5] 그리고 신흥 강호로 떠오르는 파리 생제르맹 FC 입단한다는 기사가 떴다. 빅토리아 베컴의 명품수집을 위해서라는 이야기도 있더라

PSG는 1일(이하 한국시각)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베컴과 올해 6월 30일까지 계약을 했다"고 공식발표했다. 연봉 등 구체적인 계약 조건은 밝히지 않았으나, 주급은 15만 파운드(약 2억5000만원) 수준이며 5개월 이후 1년 계약 연장을 하는 조건이 첨부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젠 파리에서 택배크로스를 보게 되었다.

하지만 베컴의 연봉 실수령액은 0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베컴은 PSG 입단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5개월치 주급 전부를 어린이를 위한 자선사업에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베컴의 계약 조건은 일단 6월 30일까지 5개월 계약한 뒤 이후 1년 계약 연장 여부를 논의하는 방식이다. 베컴은 첫 5개월의 급여를 모두 기부하겠다는 뜻이다. 박찬호가 국내 프로야구에서 뛰었던 2012 시즌 연봉을 모두 기부한 것과 닮았다. 베컴의 5개월치 급여는 50억원이 넘을 전망이다.

2013년 2월 24일, 베컴은 마르세유와의 리그 1 홈 경기에서 76분에 교체로 들어가 파리 생제르맹 데뷔전을 치렀다. 그에 따라, 베컴은 psg의 400번째 출전 선수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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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5월 12일, 베컴은 파리 생제르맹이 리옹을 상대로 1-0 으로 이기면서 리그 1 우승을 확정지었으며 4개국 1부 리그 우승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5월 16일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은퇴하겠다고 발표했다. 은퇴 발표 후 이틀 뒤인 5월 18일, 베컴은 브레스투아와의 리그 최종전에서 주장 완장을 차고 경기를 뛰었다. 이 경기에서, 베컴은 마튀이디의 골을 코너킥으로 어시스트하였으며, 80분 동안 경기장을 누비다가 교체되었다. 교체되면서 동료 선수들과 감독과 포옹했고, 서포터들의 기립 박수를 받으면서 눈물을 흘리면서 그라운드를 빠져나갔다. 한편, 파리 생제르맹은 이 경기에서 3-1로 이겼다.

2.5. 은퇴

BBC기사

BBC, AP통신 등을 통해 2012-13 시즌을 끝으로 현역 선수 생활에서 은퇴한다고 밝혔다. 베컴도 2000년대를 풍미했던 수많은 별들과 함께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은퇴 이후에는 FA의 홍보대사를 하고싶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기사도 돌고 있다. 2013년 5월 16일부로 은퇴.

2007년 LA갤럭시로 이적할 당시, 데이비드 베컴은 MLS의 프랜차이즈를 인수할 권리를 부여받았았는데 2014년 2월, 권리를 실현하여 미국 메이저 리그 사커 마이애미(가칭)의 구단주 취임이 확정되었다. 2016년 또는 2017년에 본격적으로 리그에 참가할 예정이었다. 구장 문제 등이 금방 해결되지 않아 리그 참여가 더 늦어질 뻔 했지만 2015년 7월 경기장 문제가 해결이 되었고 이후 2~3년안에 MLS에 진입할 예정이다.

참고로 인터뷰에서 은퇴를 결심한 순간을 '리오넬 메시에게 제쳐졌을 때'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인터뷰어가 게리 네빌이었기에 농담조이긴 했지만. 다큐멘터리에서 좀 더 진지하게 얘기했을때는 PSG에서 뛸 당시 몸이 예전만하지 않다는 게 너무 잘 느껴졌다고 한다. 경기를 뛰고나면 다음날 온몸이 피로에 젖어있어서 정말 힘들었다고.

[1] 베컴은 미국에서의 축구 인기를 높이기 위해 LA 갤럭시에 갔다고 밝혔으며, 실제로 LA 갤럭시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 관중이 상당한 수 늘어나는 등 미국 축구 리그 MLS를 어느 정도 부흥시키는데에 기여했다. 또한 유니폼 팔이도 평균의 3배 이상으로 다른 선수들과 비교를 불가하며, 아디다스의 인터뷰에 의하면 미국 최고의 농구선수인 르브론 제임스 등보다도 판매율이 높다고 한다.[2] 당시 LA 갤럭시 선수들은 베컴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는 시간을 재봤는데 베컴이 그 시간동안 버는 돈이 팀의 다른 선수들이 1년동안 받는 돈의 몇 배가 된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3] 당시 맨유의 선발 스쿼드 명단에는 함께 한솥밥을 먹었던 사이나 다름없던 폴 스콜스게리 네빌이 포함돼있었다. 여담으로 이 경기, 박지성안드레아 피를로를 지워버린 그 명경기 맞다.[4] 전 레알 팀메이트인 라울 곤살레스가 캡틴이다.[5] 로미오는 열렬한 아스날의 서포터로서 맨유가 아닌 아스날의 유스팀에 입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