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차움은 1989년에 디지캐시라는 기업체를 설립한 후, 이캐시라는 암호화폐를 사업화 했다. 이캐시의 백서는 1982년에 작성되어 실제로 활용되었고, 오픈소스로 개방했기 때문에 비트코인 개발에도 이 개념이 적용되었다.
오늘날 이캐시는 생각보다 안 알려졌기 때문에, 한 사람의 단순한 연구나 시도 정도로 흘려 생각하는 경우도 많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꽤 사업적으로도 성공적이어서 도이체방크에서 법정화폐와의 거래까지 지원했다. 그 외에 수많은 국가와 은행에서 신용카드 수준의 중요한 기술로 인식하여, 사실상 실패할만한 여지가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데이비드 차움은 근본적으로 사이퍼펑크의 신념을 가진 사람으로서 자신의 이상향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암호화폐라는 단어에 쓰이는 '크립토그래피'는 돈 뿐만 아니라 대화, 지식, 개인정보, 자산 등 모든 방면으로 적용되어 개인의 진정한 자유를 달성하고 보다 높은 인간의 잠재력을 실현시키는 것이라는 점이다. 데이비드 차움은 이런 넓은 개념으로 사회에 실현을 바랐지만 되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데이비드 차움은 비트코인이나 기타 블록체인을 활성화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들을 환영하지만, 모순스럽게도 또 비트코인을 비롯한 많은 암호화폐에 대해 극단적인 수준으로 부정적이다. 왜냐하면 비트코인의 개념에 대해 어느정도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비트코인의 투명성'이 제3자의 감시 수단으로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이퍼펑크의 이상향과는 거리가 있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영지식 증명으로 유명한 지캐시와 밀접한 관계에 있기도 하다.
그리고 데이비드 차움이 사이퍼펑크 주의자이기 이전에, 오래전 실리콘밸리의 두 성향에 대한 색깔에 대해서도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 애플도 있기 이전, 베이 지역에서는 중앙화된 고성능 컴퓨터 주의자와 컴퓨터를 통한 개인 잠재력 확장 주의자의 두 입장이 자라나고 있었다. 오늘날 말로 바꾸면 전자는 중앙화 주의자, 후자는 분산 주의자인데 데이비드 차움은 후자이면서 가장 그 끝의 극단적인 성향에 해당하는 것이다. 즉, 일반적인 테크 업계의 사람을 넘어 다소 정치적인 색깔이 강하다.
데이비드 차움의 의견과 생각은 분명 가치가 있지만, 개인 컴퓨터와 스마트폰이 보급된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또, 데이비드 차움 자신은 부정하지만 과연 현실 세계에서 데이비드 차움의 생각이 적용될 가능성이 없는 모순에 대해서도 생각해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