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Lapuan patruunatehtaan räjähdys1976년 4월 13일 핀란드 라푸아의 군수공장에서 일어난 폭발 사고.
2. 사고 내용
사고가 난 공장은 1925년 1월에 세워진 군수공장으로, 핀란드 국방부에서 직접 운영하던 공장이다. 고용 인원은 약 500명이었다. 2차대전 이후엔 군수물품 판매 빈도가 줄어 자전거 체달이나 컨베이어 체인, 리벳 등도 제작했다. 공장 내엔 화약이 약 1.2톤 있었고, 탄피에 화약 담는 기계가 6개 있었는데, 이 6개는 종종 고장을 일으켜 전에도 작은 폭발이 몇번 일어났다.사고 당일 오전 7시 43분 경, 출근 끝나고 일 시작하려는 찰나, 기계 한대가 고장나 화약이 흩뿌려지더니 연쇄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로 공장이 무너졌고, 인근 건물 150여채가 피해입었다. 당시 폭발음은 20km 밖에서도 들릴 정도였다.
인근 소방서에서 정체불명의 폭발음을 듣고 바로 출동, 현장에 4분만에 도착했다. 폭발과 함께 화재도 일어났으나 폭발로 주변 산소가 희박해진 탓에 불은 오래 가지 않고 30분 만에 꺼졌다.
부상자들은 인근 세이네요키의 세이네요키 중앙 병원으로 이송됐다. 세이네요키엔 열차들이 많이 다녀서, 열차 충돌이나 탈선사고 같은 혹시 모를 비상상황을 대비한 덕에 부상자 치료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예상했던 거 보다 부상자 수가 많아 인원이 더 필요했다. 군 헬기 동원해 헬싱키에서 수혈용 혈액 수송해오기도 힜다.
핀란드 적십자에서도 구호 도왔는데, 핀란드 적십자의 첫 구호활동이었다.
사고로 40명이 사망하고 60명이 부상입었다. 사망자 중 35명이 여성이었다. 사고는 핀란드 역사상 최악의 산업 재해이자, 2차대전 이후 핀란드에서 일어난 최악의 폭발로 기록됐다.
3. 사고 이후
사고 당일, 국방부 장관 Ingvar S. Melin이 치료센터를 방문해 부상자들을 위로하고 유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했다.4월 24일, 라푸아 성당에서 희생자 40명 공동 장례식이 열렸다. 장례식은 라푸아 주교와 신부 20명이 진행했고, TV로 생중계됐다. 장례식에는 5,000명 참여했다. 핀란드 대통령 우르호 칼레바 케코넨과 마우노 코이비스토 총리, 그리고 국방부 장관 등 고위직 사람들도 참여했다.
전세계에서 도움이 모여 유가족들에게 보상해주는 협회 생겼다. 협회는 1999년에 해체, 돈이 너무 모여서 해체될 때에도 9만 유로 가량 남았다.
부상자들 위해 기금이 모여 523,000 마르카가 모였다. 국방부에서 여기에 더해 20만 마르카를 모았다.
기계가 고장난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사고 이후 군수공장 관련 법률이 강화됐다.
공장주는 기소됐으나 처벌은 없었다.
사고 이후 화약공장이 민가에 있으면 위험하다는 얘기 나와 인근 마을에서 6km 떨어진 Jouttikallio에 새로 지어졌다.
세이노스키에 희생자들 기리는 추모비 세워졌다.# 또 세이노스키엔 공장 재활용해 만든 박물관이 있는데 그곳에서 사고 관련 정보 및 당시 공장에서 나온 기계 부품 등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