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이언 국립공원의 레드 게이트에 유품이 든 더플백과 함께 놓인 유해 |
1. 개요
Randall Dean Clark폴아웃: 뉴 베가스의 DLC 어니스트 하츠의 등장인물. 2053년생으로, 뉴 베가스 시점에서는 이미 150년 전에 사망해서 유골로만 그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다.
2. 상세
그의 행적을 정리한 팬메이드 단편 애니메이션[1] |
랜달 클라크는 솔트레이크 시티 출신으로, 캐나다 국경수비대[2] 소속의 미군 병사였다. 2077년 10월 23일, 가을 휴가를 받은 랜달은 같이 있어 달라는 아내를 뒤로 하고 자이언 국립공원으로 혼자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랜달이 도시를 떠나자마자 대전쟁이 발발했고, 랜달을 제외한 솔트레이크 시티에 있던 사람들은 그대로 몰살당한다. 이로 인해 랜달은 가족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을 평생 안게 된다.
심신을 겨우 추스린 랜달은 핵폭발 직후 몰아치던 검은 죽음의 방사능 비에서 몸을 피하던 와중 자이언 국립공원의 한 동굴에 위치한 미국 지리학 조사단 기지를 발견하고 몸을 숨긴다. 조사단원들은 핵전쟁의 소식을 듣고 황급히 몸만 피신한 건지 컴퓨터 같은 조사장비들은 물론 혼자서 5년을 버틸 수 있는 대량의 식량이 기지에 그대로 버려져 있었고, 랜달은 이를 이용해 방사능이 잠잠해질 5년 동안 동굴에서 은거했다. 하지만 물이 부족해 랜달은 바위에서 습기를 빨아먹는 등 갖은 노력을 다 해야만 했다. 동굴에 수년간 고립되며 정신적으로도 피폐해지고 식량도 물도 떨어졌으나, 방사능의 여파가 어느 정도 가라앉은 땅에서는 자연환경이 되살아나기 시작했고 랜달은 또다시 5년간 수렵과 채집으로 목숨을 이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랜달은 자이언 국립공원에 멕시코인들로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발견했다. 랜달은 섣부르게 이들과 접촉하여 경계심을 살 것을 우려하여 모습은 숨긴 채 물자를 던져놓고 오는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이들을 도와나가기 시작했으나, 볼트 22 거주민들이 대거 국립공원에 들이닥쳐 그 어떤 평화적인 시도도 하지 않고 자신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공격했고, 급기야 죽인 사람들의 시체를 먹는 등 식인까지 했다. 이 식인종들은 멕시코인들의 캠프를 공격해 모두 살해했고 이 만행에 분노한 랜달은 약 10개월에 걸쳐 국립공원 곳곳에서 이 식인종들과 전쟁을 벌였다. 상당한 숫자의 동료들을 잃은 식인종들은 죽은 동료들의 시신으로 만찬을 벌인 뒤 국립공원에서 도망쳤다.[3]
그러던 중 랜달은 식인종 캠프에서 한 여성을 구출하는데 여성의 이름은 실비, 볼트 22의 거주민으로 식인종들과 같은 출신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뜻에 따르지 않아 억류돼있던 사람이었다. 이성을 잃은 식인종들과 달리 온전한 정신상태를 유지하고 있고 갈 곳이 없기도 하여 랜달에 의해 거두어지고 곧 부부가 된다.
랜달은 곧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으나 불행하게도 아내 실비가 자신과 랜달 사이의 아이를 출산하던 중 난산으로[4] 실비는 물론 아이까지 사망하고 말았고 랜달은 극심한 우울감에 빠져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한다. 실패 직후 남긴 기록에 '내년에는 두병으로 해야겠다'라고 한 것을 보면 아마 술기운을 빌려 생을 마감하기 위해 술 한 병을 싹 비우고 머리에 바람구멍을 내려 했던 모양이다. 스스로를 겁쟁이라며 욕하는 것을 볼 때 결국 위스키 한 병 가지고는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기지 못해 자살에 실패한 모양이다.
이후 랜달은 약 10여 년 간 절망에 빠져 폐인처럼 살았으나 어느 날 왠 한 무리의 아이들이 국립공원에 도달하였고 멀리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아이들은 어느 '학교'에서 빠져나왔고 '교장'이 자신들을 잡으러 올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이에 랜달은 크게 분노하며 이 '교장'이라는 놈이 아이들을 노린다면 자신이 직접 박살을 내버릴 것이라 다짐한다.
랜달은 이후 멀리서 물자를 전달하고 책자를 건네며 이 아이들을 간접적으로 돕기 시작했고 어디선가 나타나 자신들에게 도움을 주고 홀연히 사라지는 '아버지'에 대해서 아이들은 랜달을 '동굴 속의 아버지'라 부르며 숭배하게 된다. 랜달의 도움으로 국립공원에 정착한 아이들은 훗날 슬픔 부족이 되었다.
2124년 1월, 71세의 랜달 딘 클라크는 레드게이트 언덕에서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랜달은 그간 자이언 국립공원의 여러 동굴들을 아지트로 개조하여 은거지로 삼고 슬픔 부족을 도와주었다. 슬픔 부족은 '동굴 속의 아버지'와 만나기 위해 몇 차례 정찰대를 꾸려 이 아지트들을 발견하였으나 동굴로 들어간 정찰대들은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고 말았고 슬픔 부족은 '동굴 속의 아버지'가 자신들이 아버지를 찾는 것을 꺼리신다 여기며 이 동굴을 성역으로 지정하고 출입을 금하게 된다. 이에 랜달과 손톱만큼도 연관이 없던 죽은 말 부족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슬픔 부족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 자신들도 따라서 하겠다'는 이유로 금도를 어기지 않고 동굴로 발을 들이지 않는다.
정찰대가 실종된 이유는 랜달이 생전 아지트에 여러 함정을 설치해놨기 때문으로 게임 내에서 동굴에 들어가 보면 곰 덫, 그냥 놓거나 테디베어 인형 뒤에 숨긴 지뢰, 인계철선에 연결시킨 수류탄 더미 혹은 산탄총, 터미널에 의해 제어되는 잠긴 문 등 가히 봉쇄에 가까운 수준으로 함정이 들어차 있다. 무기라든가 하는 현대 문명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던 아이들이 주축이 되어서 세워진 부족이었으니 이런 트랩에 대해 자세히 알리는 없었고 그냥 아버지의 천벌 정도로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전직 미국 국경수비대원이 신적 존재가 된 상황이지만 현대 문명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슬픔 부족 입장에서는 랜달의 존재를 알아차릴 그 어떠한 증거도 발견하지 못했고 동굴 안으로는 들어갈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사항이다.
3. 랜달 딘 클라크의 기록
3.1. 2077년[5]
10월 28일
닷새나 걸었는데도 잠이 안 온다. 밖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하다. 하늘이 뭔가 낯설어 보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다. 토커빌 근처에 뒤집어진 방위군 트럭이 있었는데 거기로 돌아가 볼까? 뭐 물집 잡힌 거 없어지고 난 뒤에 생각하는 게 낫겠지.
USGS (미합중국 지질조사국) 조사팀이 이 동굴에서 뭔가 연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폭탄이 떨어지니 장비고 뭐고 다 내버려두고 떠나버린 것 같다. 그 친구들에게도 돌아가야 할 가족이 있었겠지.
닷새나 걸었는데도 잠이 안 온다. 밖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하다. 하늘이 뭔가 낯설어 보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다. 토커빌 근처에 뒤집어진 방위군 트럭이 있었는데 거기로 돌아가 볼까? 뭐 물집 잡힌 거 없어지고 난 뒤에 생각하는 게 낫겠지.
USGS (미합중국 지질조사국) 조사팀이 이 동굴에서 뭔가 연구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폭탄이 떨어지니 장비고 뭐고 다 내버려두고 떠나버린 것 같다. 그 친구들에게도 돌아가야 할 가족이 있었겠지.
10월 29일
샤르,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정말 수천 번은 되뇌었을 거야. 이렇게 써 두기라도 하면 너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 닿을까.
네가 옳았어.
그때 난 스패니쉬 포크 북쪽에 있었어. 프로보 베이 따라 77번 도로 타고 도시를 나오는 쪽으로 달리고 있었지. 한 시간이면 집에 닿는 거리였어. 갑자기 엔진이 꺼지더니 내 트럭이 서 버렸어. 반대편 차선에 있던 크라이슬러도 마찬가지였고.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곧바로 알아차렸지. 1분도 안 돼서 첫 번째 핵이 솔트레이크 시티를 강타했어. 그때 난 남쪽을 보고 있었지. 운도 좋지! 등 뒤에서 꼭 온 세상이 다 불타 버리는 것처럼 섬광이 번쩍이더라고. 크라이슬러에 타고 있던 노인 부부는 눈이 안 보인다고 비명을 지르더군.
샤르, 네가 죽는 걸 보지 못한 덕에 내 눈이 멀쩡할 수 있었어. 다음 7분 동안 섬광이 열두 번 더 번쩍였고 그 때마다 18초 뒤에 땅이 울렸어. 공격이 멈추고 30분쯤 지난 다음에야 네가 있던 쪽을 봤어. 너와 알렉스를 삼킨 거대한 불구덩이를 말이야. 더 이상 날 속이려 들지 않았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내 배낭과 라이플을 챙겼지. 노인 부부는 그때까지도 그 자리에 있었어. 차 밖으로 불러내서 서로를 꼭 껴안게 했어. 도와줄 사람을 불러오겠다고, 다 괜찮을 거라고 했지. 그리고 머리를 관통하도록 한 발을 쐈어. 확실하게 즉사하도록. 그리고 닷새 걸려서 시온 국립공원까지 걸어왔어.
네가 말했었지. 자연으로 도피하는 건 그만두라고, 남자는 가족을 돌봐야 한다고 말이야. 네가 옳았어. 네가 옳았어. 네가 옳았어. 네가 옳았다고. 너와 알렉스가 죽어갈 때 그 자리에서 너희 둘을 안아줬어야 했는데. 너희 둘이 나 없이 죽어가게 내버려뒀지. 이제 다시는 너희 둘을 안아줄 수 없겠지.
지금이라도 내 머리를 쏴 버리는 게 맞을 것 같아. 그게 나 따위한테 어울리는 최후겠지. 당장은 못하겠어. 얼마 안 있으면 저지르게 될 것 같지만.
샤르,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정말 수천 번은 되뇌었을 거야. 이렇게 써 두기라도 하면 너에게 조금이라도 더 가 닿을까.
네가 옳았어.
그때 난 스패니쉬 포크 북쪽에 있었어. 프로보 베이 따라 77번 도로 타고 도시를 나오는 쪽으로 달리고 있었지. 한 시간이면 집에 닿는 거리였어. 갑자기 엔진이 꺼지더니 내 트럭이 서 버렸어. 반대편 차선에 있던 크라이슬러도 마찬가지였고.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곧바로 알아차렸지. 1분도 안 돼서 첫 번째 핵이 솔트레이크 시티를 강타했어. 그때 난 남쪽을 보고 있었지. 운도 좋지! 등 뒤에서 꼭 온 세상이 다 불타 버리는 것처럼 섬광이 번쩍이더라고. 크라이슬러에 타고 있던 노인 부부는 눈이 안 보인다고 비명을 지르더군.
샤르, 네가 죽는 걸 보지 못한 덕에 내 눈이 멀쩡할 수 있었어. 다음 7분 동안 섬광이 열두 번 더 번쩍였고 그 때마다 18초 뒤에 땅이 울렸어. 공격이 멈추고 30분쯤 지난 다음에야 네가 있던 쪽을 봤어. 너와 알렉스를 삼킨 거대한 불구덩이를 말이야. 더 이상 날 속이려 들지 않았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내 배낭과 라이플을 챙겼지. 노인 부부는 그때까지도 그 자리에 있었어. 차 밖으로 불러내서 서로를 꼭 껴안게 했어. 도와줄 사람을 불러오겠다고, 다 괜찮을 거라고 했지. 그리고 머리를 관통하도록 한 발을 쐈어. 확실하게 즉사하도록. 그리고 닷새 걸려서 시온 국립공원까지 걸어왔어.
네가 말했었지. 자연으로 도피하는 건 그만두라고, 남자는 가족을 돌봐야 한다고 말이야. 네가 옳았어. 네가 옳았어. 네가 옳았어. 네가 옳았다고. 너와 알렉스가 죽어갈 때 그 자리에서 너희 둘을 안아줬어야 했는데. 너희 둘이 나 없이 죽어가게 내버려뒀지. 이제 다시는 너희 둘을 안아줄 수 없겠지.
지금이라도 내 머리를 쏴 버리는 게 맞을 것 같아. 그게 나 따위한테 어울리는 최후겠지. 당장은 못하겠어. 얼마 안 있으면 저지르게 될 것 같지만.
10월 31일
바깥으로는 새까만 비가 내린다. 가이거 계수기 바늘은 하늘을 찌를 것 같다. 당장이라도 나가서 죽어버리는 게 맞겠지만 뭐 동굴 뒤쪽에 괴어 있는 물 한 병만 마시면 되니 굳이 그럴 필요 없겠지.
바깥으로는 새까만 비가 내린다. 가이거 계수기 바늘은 하늘을 찌를 것 같다. 당장이라도 나가서 죽어버리는 게 맞겠지만 뭐 동굴 뒤쪽에 괴어 있는 물 한 병만 마시면 되니 굳이 그럴 필요 없겠지.
11월 2일
바깥은 죽은 것처럼 조용하지만 나가볼 수는 없다. 동굴 밖으로 5미터만 나가도 계수기 바늘이 펄쩍 튀어 오른다.
계산을 좀 해 봤다. 마실 물이 떨어지기 전에 방사선 수치가 떨어지지 않으면 동굴 밖으로는 영원히 못 나가는 신세가 될 거다.
바깥은 죽은 것처럼 조용하지만 나가볼 수는 없다. 동굴 밖으로 5미터만 나가도 계수기 바늘이 펄쩍 튀어 오른다.
계산을 좀 해 봤다. 마실 물이 떨어지기 전에 방사선 수치가 떨어지지 않으면 동굴 밖으로는 영원히 못 나가는 신세가 될 거다.
3.2. 2078년
1월 1일
해피 뉴 이어.
두 달 동안 동굴에 처박혀 있었다. 여전히 밖으로 나가는 건 자살행위다. 이해가 안 간다. 군대에서는 낙진은 2주에서 4주면 가라앉는다고 했는데.
마실 물이 한 달 치도 안 남았다. 동굴 벽에 맺힌 습기를 훔쳐서 병에 짜 모으고 있다. 칼로리를 물과 바꾸는 셈이다. 먹을 식량은 아직 넉넉하다. USGS 친구들에 감사해야겠지.
당신과 알렉스를 볼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텐데.
해피 뉴 이어.
두 달 동안 동굴에 처박혀 있었다. 여전히 밖으로 나가는 건 자살행위다. 이해가 안 간다. 군대에서는 낙진은 2주에서 4주면 가라앉는다고 했는데.
마실 물이 한 달 치도 안 남았다. 동굴 벽에 맺힌 습기를 훔쳐서 병에 짜 모으고 있다. 칼로리를 물과 바꾸는 셈이다. 먹을 식량은 아직 넉넉하다. USGS 친구들에 감사해야겠지.
당신과 알렉스를 볼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텐데.
1월 10일
이틀 동안 폭풍이 불었다. 방사선 수치가 500 밑으로 떨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이틀 동안 폭풍이 불었다. 방사선 수치가 500 밑으로 떨어졌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1월 15일
밖을 살짝 내다봤다. 눈이 내린다. 녹색으로 형광색을 띄는 눈이.
1월 28일
방사선 수치가 충분히 낮아졌다. 이제 잠깐은 밖에 나가도 된다. 한 가지 더. 이제 정화 약품을 쓰기만 하면 동굴 속의 시냇물을 마셔도 된다.
밖을 살짝 내다봤다. 눈이 내린다. 녹색으로 형광색을 띄는 눈이.
1월 28일
방사선 수치가 충분히 낮아졌다. 이제 잠깐은 밖에 나가도 된다. 한 가지 더. 이제 정화 약품을 쓰기만 하면 동굴 속의 시냇물을 마셔도 된다.
1월 30일
바깥엔 살아있는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바깥엔 살아있는 거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3.3. 2083년[6]
5월 5일
생물들이 살아나고 있다.
꿀 메스킷, 바나나 유카에 이어 선인장 열매도 살아남았다. 이상한 혹이나 변형 같은 게 보이긴 하지만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 조심해서 채집하고, 절대 한 번에 다섯 개 이상은 먹지 않도록 하고 있다. 보존식품이 아닌 걸 먹는다고 생각하니 먹을 때마다 입에서 군침이 돈다.
생물들이 살아나고 있다.
꿀 메스킷, 바나나 유카에 이어 선인장 열매도 살아남았다. 이상한 혹이나 변형 같은 게 보이긴 하지만 먹어도 괜찮을 것 같다. 조심해서 채집하고, 절대 한 번에 다섯 개 이상은 먹지 않도록 하고 있다. 보존식품이 아닌 걸 먹는다고 생각하니 먹을 때마다 입에서 군침이 돈다.
5월 7일
쓰러진 나무 주위에 내가 ‘내퍼’라고 부르는 침 쏘는 파리 떼가 있다. 가끔 그 파리 떼 한가운데에 잠자리만한 놈이 나타나서 놈들을 채 간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녀석이다.
쓰러진 나무 주위에 내가 ‘내퍼’라고 부르는 침 쏘는 파리 떼가 있다. 가끔 그 파리 떼 한가운데에 잠자리만한 놈이 나타나서 놈들을 채 간다.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녀석이다.
5월 20일
이 양은 뭔가 좀 다르다. 죄 근육질인데다 암놈도 수놈처럼 뿔이 굽었다.
조그만 도마뱀은 몇 마리 본 적 있지만 이렇게 큰 동물을 보는 건 처음이다.
횡재했군. 5-10년간 번식한 그 숫자에 신선한 고기, 가죽, 뿔까지.
이제 슬슬 돌아가 볼 때가 된 것 같아, 샤르. 이번 해 겨울이 지나고 나면 한 번 가 봐야겠어.
이 양은 뭔가 좀 다르다. 죄 근육질인데다 암놈도 수놈처럼 뿔이 굽었다.
조그만 도마뱀은 몇 마리 본 적 있지만 이렇게 큰 동물을 보는 건 처음이다.
횡재했군. 5-10년간 번식한 그 숫자에 신선한 고기, 가죽, 뿔까지.
이제 슬슬 돌아가 볼 때가 된 것 같아, 샤르. 이번 해 겨울이 지나고 나면 한 번 가 봐야겠어.
3.4. 2084년
6월 14일
막 돌아온 참이다. 피곤하다. 오는 길에 이것저것 많이 챙겼다. 결국 카트 하나 가득 잡다한 물건을 챙겨 오는 걸로 끝났다.
내일 마저 써야겠다. 지금은 자야겠다.
막 돌아온 참이다. 피곤하다. 오는 길에 이것저것 많이 챙겼다. 결국 카트 하나 가득 잡다한 물건을 챙겨 오는 걸로 끝났다.
내일 마저 써야겠다. 지금은 자야겠다.
6월 15일
4월 10일에 출발했다. 솔트레이크 시티까지 15일 걸려 도착했다. 옛날 같았으면 이레에서 아흐레면 도착했겠지만 방사선을 피해 가느라 빙 돌아서 가야 했다.
대체 뭘 기대했던 걸까. 집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돌 좀 들어내고 파내고 하면 뭔가 찾아낼 수 있겠지 그런 생각. 그래, 당신이나 우리 꼬맹이 유골을 찾아서 묻어줘야지 그런 생각을 했지. 가능하면 여기 시온 국립공원에 말이야.
솔트레이크 시티는 대부분이 거대한 크레이터가 되어 있었다. 고층빌딩이 있었던 자리에 남은 거라곤 휘어진 빔에 벽돌 더미 같은 것 뿐이었다. 우리 집은 자취도 찾을 수 없었다. 집이 있었던 거리조차도 찾지 못했다. 크레이터 이외에 남은 거라곤 새까맣게 불타 버린 흔적 뿐이었다.
순간이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냥 순간, 섬광이 빛나는 순간 두 사람이 사라져 버렸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생각에 하는 거짓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영원히 알 수 없겠지. 첫 번째 폭탄이 도시의 어떤 구획에 떨어졌을까? 가능하면 북동쪽에 떨어졌기를 바란다. 그래서 너희 둘이 눈 깜빡할 새에 사라졌기를. 더 먼 곳에 떨어져서 산 채로 불탔거나 박살난 유리창, 혹은 벽돌에 햄버거처럼 갈아 엎어지는 그런 꼴을 당하지는 않았기를.
똑바로 봐 이 겁쟁이 새끼야. 거기서 시선을 돌릴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네가 배짱 있는 사내였다면 진작 네 머리를 날려 버렸겠지. 하지만 넌 배짱 있는 사내 따위 아니잖아? 총 한 발 쏴서 뒈지는 대신 한 세월 걸려서 도로 걸어왔지. 오는 길에 즐겁게 쇼핑이나 하면서 말야. 이 땅거지 새끼야.
스패니쉬 포크 북쪽 77번 도로에 세워 뒀던 트럭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크라이슬러도. 하지만 노인 부부의 유골은 찾을 수 없었다.
네피 근처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았다. 남자 세 명. 파운틴 그린 쪽으로 향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따라가 볼까 했지만 그만뒀다. 친구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멍청한 환상 따위 개한테나 주라지. 차라리 식인종을 만나는 게 그럴듯할걸.
4월 10일에 출발했다. 솔트레이크 시티까지 15일 걸려 도착했다. 옛날 같았으면 이레에서 아흐레면 도착했겠지만 방사선을 피해 가느라 빙 돌아서 가야 했다.
대체 뭘 기대했던 걸까. 집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했다. 돌 좀 들어내고 파내고 하면 뭔가 찾아낼 수 있겠지 그런 생각. 그래, 당신이나 우리 꼬맹이 유골을 찾아서 묻어줘야지 그런 생각을 했지. 가능하면 여기 시온 국립공원에 말이야.
솔트레이크 시티는 대부분이 거대한 크레이터가 되어 있었다. 고층빌딩이 있었던 자리에 남은 거라곤 휘어진 빔에 벽돌 더미 같은 것 뿐이었다. 우리 집은 자취도 찾을 수 없었다. 집이 있었던 거리조차도 찾지 못했다. 크레이터 이외에 남은 거라곤 새까맣게 불타 버린 흔적 뿐이었다.
순간이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냥 순간, 섬광이 빛나는 순간 두 사람이 사라져 버렸을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려는 생각에 하는 거짓말일지도 모르겠지만. 아마 영원히 알 수 없겠지. 첫 번째 폭탄이 도시의 어떤 구획에 떨어졌을까? 가능하면 북동쪽에 떨어졌기를 바란다. 그래서 너희 둘이 눈 깜빡할 새에 사라졌기를. 더 먼 곳에 떨어져서 산 채로 불탔거나 박살난 유리창, 혹은 벽돌에 햄버거처럼 갈아 엎어지는 그런 꼴을 당하지는 않았기를.
똑바로 봐 이 겁쟁이 새끼야. 거기서 시선을 돌릴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네가 배짱 있는 사내였다면 진작 네 머리를 날려 버렸겠지. 하지만 넌 배짱 있는 사내 따위 아니잖아? 총 한 발 쏴서 뒈지는 대신 한 세월 걸려서 도로 걸어왔지. 오는 길에 즐겁게 쇼핑이나 하면서 말야. 이 땅거지 새끼야.
스패니쉬 포크 북쪽 77번 도로에 세워 뒀던 트럭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다. 크라이슬러도. 하지만 노인 부부의 유골은 찾을 수 없었다.
네피 근처에서 사람의 흔적을 찾았다. 남자 세 명. 파운틴 그린 쪽으로 향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따라가 볼까 했지만 그만뒀다. 친구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멍청한 환상 따위 개한테나 주라지. 차라리 식인종을 만나는 게 그럴듯할걸.
6월 20일
이틀 걸려 문을 만들고 문에 전기가 통하게 해 뒀다.
잡상인 사절이다, 씹새들아. 존나게 행복한 우리 집.
이틀 걸려 문을 만들고 문에 전기가 통하게 해 뒀다.
잡상인 사절이다, 씹새들아. 존나게 행복한 우리 집.
3.5. 2095년
9월 20일
다 해서 스물여덟 명이다. 성인 남자 11명, 여자 8명, 2~10세 사이 어린애 9명. 상태 나쁜 라이플과 권총 여럿. 구세계 옷가지. 추레함.
다 해서 스물여덟 명이다. 성인 남자 11명, 여자 8명, 2~10세 사이 어린애 9명. 상태 나쁜 라이플과 권총 여럿. 구세계 옷가지. 추레함.
9월 22일
지난밤에 이야기를 나누는 걸 엿들을 만큼 가까이 가 보았다. 스페인어 같다. 멕시코에서 왔나? "파라디소"라고 말하는 걸 열댓 번은 들은 것 같다. 파라다이스라는 뜻인가 보지? 그럼 있어 보든지.
보기에 위험한 곳은 아니니까. 보기에는.
지난밤에 이야기를 나누는 걸 엿들을 만큼 가까이 가 보았다. 스페인어 같다. 멕시코에서 왔나? "파라디소"라고 말하는 걸 열댓 번은 들은 것 같다. 파라다이스라는 뜻인가 보지? 그럼 있어 보든지.
보기에 위험한 곳은 아니니까. 보기에는.
10월 5일
내가 "마리아"라고 부르는 여인은 임신 중이다. 애 아버지는 "호세"라는 사람 같지만, "파블로"란 사람과도 친밀한 관계인 것 같다.
내가 "마리아"라고 부르는 여인은 임신 중이다. 애 아버지는 "호세"라는 사람 같지만, "파블로"란 사람과도 친밀한 관계인 것 같다.
10월 7일
"페드로"가 시냇물에 볼일 보러 나왔다가 나를 볼 뻔했다. 시선을 왼쪽으로 흘끗 돌리기만 해도 날 봤을 거다. 너무 가까이 갔다. 거리를 좀 둬야겠다.
"페드로"가 시냇물에 볼일 보러 나왔다가 나를 볼 뻔했다. 시선을 왼쪽으로 흘끗 돌리기만 해도 날 봤을 거다. 너무 가까이 갔다. 거리를 좀 둬야겠다.
11월 10일
"호세"가 큰뿔이를 쫓다가 그만 다리가 부러졌다. 고함소리가 닿기에는 캠프로부터 너무 먼 거리였다. 그냥 내버려두고 떠나라고 몇 번이고 되뇌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캠프에서 한 300m 떨어진 거리까지 간 다음, 캠프에서 몇몇이 무슨 일인지 보러 나올 때까지 할 수 있는 최대한 호세 비슷하게 고함을 쳐서 그들을 진짜 호세의 목소리가 들릴 산마루까지 끌고 갔다.
쓸데없는 짓인지도 모르겠다. 복합골절로 뼈가 피부를 뚫고 나올 정도였으니.
"호세"가 큰뿔이를 쫓다가 그만 다리가 부러졌다. 고함소리가 닿기에는 캠프로부터 너무 먼 거리였다. 그냥 내버려두고 떠나라고 몇 번이고 되뇌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다. 캠프에서 한 300m 떨어진 거리까지 간 다음, 캠프에서 몇몇이 무슨 일인지 보러 나올 때까지 할 수 있는 최대한 호세 비슷하게 고함을 쳐서 그들을 진짜 호세의 목소리가 들릴 산마루까지 끌고 갔다.
쓸데없는 짓인지도 모르겠다. 복합골절로 뼈가 피부를 뚫고 나올 정도였으니.
11월 11일
"인펙씌온."[8]. 비슷한 단어가 더럽게 많다. 아마도 스페인어에 유창해진 모양이다[9] 뭐 어쨌든 호세의 다리가 감염돼서 내버려뒀다간 죽을 거다. 저 친구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기도만 하고 있다.
"인펙씌온."[8]. 비슷한 단어가 더럽게 많다. 아마도 스페인어에 유창해진 모양이다[9] 뭐 어쨌든 호세의 다리가 감염돼서 내버려뒀다간 죽을 거다. 저 친구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기도만 하고 있다.
11월 12일
지난밤에 캠프 밖의 눈에 잘 띄는 바위 위에 항생제를 한 병 두고 왔다. 그 친구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신(디오스)[10] 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 망할 새끼가 세상을 싸그리 불태워 놓고서도 바위 위에 약을 놔둘 정도로 너흴 챙겨준다고 생각하나 보지.
지난밤에 캠프 밖의 눈에 잘 띄는 바위 위에 항생제를 한 병 두고 왔다. 그 친구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신(디오스)[10] 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 망할 새끼가 세상을 싸그리 불태워 놓고서도 바위 위에 약을 놔둘 정도로 너흴 챙겨준다고 생각하나 보지.
11월 15일
호세는 계속 다리를 절게 되겠지만 어쨌든 괜찮아졌다. 금월의 선행.
저 친구들이 겨울을 견뎌낼 수 있을까?
호세는 계속 다리를 절게 되겠지만 어쨌든 괜찮아졌다. 금월의 선행.
저 친구들이 겨울을 견뎌낼 수 있을까?
3.6. 2096년[11]
2월 11일
개새끼들이 남자를 모두 죽였다. 여자들은 대부분 살려서 데려간 것 같지만 마리아와 셀레나, 그리고 다른 몇몇은 응전하다가 아이들과 함께 사살당했다.
그 친구들에게 경고해줄 수만 있었다면.
개새끼들이 남자를 모두 죽였다. 여자들은 대부분 살려서 데려간 것 같지만 마리아와 셀레나, 그리고 다른 몇몇은 응전하다가 아이들과 함께 사살당했다.
그 친구들에게 경고해줄 수만 있었다면.
2월 12일
엘레나와 카르멘, 그리고 다섯 명의 어린애는 아직 살아있다. 우리에 갇힌 채로.
이 하나같이 시퍼런 색에 등짝에 22라는 숫자가 박혀 있는 옷을 입은 새끼들은 100명이 넘는다. 뭐하는 놈들이지? 남자 중 대략 60%는 기관단총과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모두 검은 머리의 사내를 따르는 것 같지만 이야기를 엿들을 만큼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 이 개새끼들은 잘 조직되어 있다. 순찰을 돌고 경비를 세운다. 그 말은 즉 뭔가 볼일이 있다는 거겠지.
일단은 한밤중에 접근해서 여자들과 애들을 우리에서 꺼내야겠다. 그 다음은 어떡한다?
어쨌든 저들을 구출해야겠다. 그래야만 해.
엘레나와 카르멘, 그리고 다섯 명의 어린애는 아직 살아있다. 우리에 갇힌 채로.
이 하나같이 시퍼런 색에 등짝에 22라는 숫자가 박혀 있는 옷을 입은 새끼들은 100명이 넘는다. 뭐하는 놈들이지? 남자 중 대략 60%는 기관단총과 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모두 검은 머리의 사내를 따르는 것 같지만 이야기를 엿들을 만큼 가까이 가지는 못했다. 이 개새끼들은 잘 조직되어 있다. 순찰을 돌고 경비를 세운다. 그 말은 즉 뭔가 볼일이 있다는 거겠지.
일단은 한밤중에 접근해서 여자들과 애들을 우리에서 꺼내야겠다. 그 다음은 어떡한다?
어쨌든 저들을 구출해야겠다. 그래야만 해.
2월 13일
한밤을 틈타 정찰을 했다.
정말 잘 조직되어 있다. 대부분의 접근 가능한 경로에 경비를 세워뒀지만 다행히 시냇물 쪽으로는 경비가 없다.
어디 아픈가? 쉴 새 없이 기침을 해댄다. 결핵인가?
여자와 어린애들은 아직 우리 안에 있다. 내일 밤쯤 시냇물 쪽으로 침투해 봐야겠다.
한밤을 틈타 정찰을 했다.
정말 잘 조직되어 있다. 대부분의 접근 가능한 경로에 경비를 세워뒀지만 다행히 시냇물 쪽으로는 경비가 없다.
어디 아픈가? 쉴 새 없이 기침을 해댄다. 결핵인가?
여자와 어린애들은 아직 우리 안에 있다. 내일 밤쯤 시냇물 쪽으로 침투해 봐야겠다.
2월 14일
놈들이 그들을 먹었다.
놈들이 그들을 먹었다.
2월 19일
강변 산책로를 따라 기습했다. 남자 여섯 명 처치. 이 새끼들 기침 소리는 1km 밖에서도 들린다.
놈들의 수류탄을 시체에 엮어 부비트랩을 만든 다음 절반은 챙겼다. 기관단총 여섯 정, 10mm탄 500발, 수류탄 여섯 개 획득.
강변 산책로를 따라 기습했다. 남자 여섯 명 처치. 이 새끼들 기침 소리는 1km 밖에서도 들린다.
놈들의 수류탄을 시체에 엮어 부비트랩을 만든 다음 절반은 챙겼다. 기관단총 여섯 정, 10mm탄 500발, 수류탄 여섯 개 획득.
2월 20일
강변 산책로에서 다시 기습했다. 두 놈은 시체를 확인하다 죽었고 소총으로 두 놈 더 쏴 죽였다. 한 놈은 다른 씨발놈들한테 이 일을 알릴 수 있게 종아리를 쏴서 기어가게 내버려뒀다. 마치 내가 폐라도 쏜 것마냥 기침을 해 댔다.
강변 산책로에서 다시 기습했다. 두 놈은 시체를 확인하다 죽었고 소총으로 두 놈 더 쏴 죽였다. 한 놈은 다른 씨발놈들한테 이 일을 알릴 수 있게 종아리를 쏴서 기어가게 내버려뒀다. 마치 내가 폐라도 쏜 것마냥 기침을 해 댔다.
2월 23일
콜핏츠와시에서 동쪽으로 0.5 km 거리에서 기습했다. 남자 여덟 명 처치.
콜핏츠와시에서 동쪽으로 0.5 km 거리에서 기습했다. 남자 여덟 명 처치.
2월 28일
협곡에서 기습했다. 남자 여섯 명 처치. 10mm에 허벅지를 뚫렸다. 다행히 동맥은 비켜갔다. 운도 좋지. 동굴까지 돌아오는 길에 혈흔이 남지 않게 지혈대를 사용했다. 동굴로 들어오는 통로에 함정을 죽 깔아뒀지만 놈들이 날 찾아낸다면 내가 죽는 건 시간문제일 거다. 뭐, 어쨌든 지난 열흘 동안 스물 넷을 죽였으니 전투원의 최소 1/3은 없앤 셈이다. 노땅치곤 나쁘지 않아.
협곡에서 기습했다. 남자 여섯 명 처치. 10mm에 허벅지를 뚫렸다. 다행히 동맥은 비켜갔다. 운도 좋지. 동굴까지 돌아오는 길에 혈흔이 남지 않게 지혈대를 사용했다. 동굴로 들어오는 통로에 함정을 죽 깔아뒀지만 놈들이 날 찾아낸다면 내가 죽는 건 시간문제일 거다. 뭐, 어쨌든 지난 열흘 동안 스물 넷을 죽였으니 전투원의 최소 1/3은 없앤 셈이다. 노땅치곤 나쁘지 않아.
3월 2일
럭키 럭키 럭키 럭키. 순찰대는 3명밖에 안 됐다. 선두가 함정에 걸려 지른 비명에 깼다. 동굴 안에 마구잡이로 쏴대는 통에 거의 맞을 뻔했지만 기어서 다가간 다음 기관단총으로 다 쏴 죽였다. 하마터면 수류탄을 쓸 뻔했다. 멍청하긴, 파편이 튀면 어쩔 셈이었어.
즉시 동굴을 떠났다. 구내에 다른 순찰대는 없었지만 그 셋을 찾으러 곧 협곡을 뒤질 거다. 식량을 챙길 수 있을 만큼 챙긴 다음 남쪽의 동굴로 향했다.
럭키 럭키 럭키 럭키. 순찰대는 3명밖에 안 됐다. 선두가 함정에 걸려 지른 비명에 깼다. 동굴 안에 마구잡이로 쏴대는 통에 거의 맞을 뻔했지만 기어서 다가간 다음 기관단총으로 다 쏴 죽였다. 하마터면 수류탄을 쓸 뻔했다. 멍청하긴, 파편이 튀면 어쩔 셈이었어.
즉시 동굴을 떠났다. 구내에 다른 순찰대는 없었지만 그 셋을 찾으러 곧 협곡을 뒤질 거다. 식량을 챙길 수 있을 만큼 챙긴 다음 남쪽의 동굴로 향했다.
3.7. 2097년[12]
1월 13일
콜록이들이 마침내 꺼졌다. 여태껏 살아남은 건 34명밖에 안 됐다. 체력 보충이라도 할 심산이었는지 죽은 놈들 시체를 먹고 남동쪽으로 꺼져 버렸다.
10달의 살육 끝에 승리했다. 하지만 오직 한기만 느껴진다.
그 우라질 것들이 자초한 거다. 전부 다.
콜록이들이 마침내 꺼졌다. 여태껏 살아남은 건 34명밖에 안 됐다. 체력 보충이라도 할 심산이었는지 죽은 놈들 시체를 먹고 남동쪽으로 꺼져 버렸다.
10달의 살육 끝에 승리했다. 하지만 오직 한기만 느껴진다.
그 우라질 것들이 자초한 거다. 전부 다.
1월 17일
꿈이라도 꾸는 줄 알았지만 진짜 비명소리였다. 잠시 놈들이 자이온을 떠난 척 속이고 날 쫒을 정찰대를 보낸 줄 알았는데, 비명은 여자의 것이었다.
모퉁이 너머로 슬쩍 살펴 보았다. 방공호 놈 중 하나가 곰덫에 제대로 걸려 있었다. 기관단총으로 처리해 버리려 했지만 우는 소리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날 보자마자 지른 비명 소리란. 오랫동안 놈들에게 난 저승사자였으니까.
이름은 실비라고 했다. 그 나쁜 놈들을 "악마의 자식들"이라고 부르며 놈들로부터 도망쳐왔다고 했다. 놈들은 살고 있던 방공호 안에서 뭔가에 걸려 병든 다음 그렇게 변해 버렸다고 한다. 본인은 그거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했다(아직까지는).
그래서 나보고 도와 달란다. 간호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좀 긴장했다.
꿈이라도 꾸는 줄 알았지만 진짜 비명소리였다. 잠시 놈들이 자이온을 떠난 척 속이고 날 쫒을 정찰대를 보낸 줄 알았는데, 비명은 여자의 것이었다.
모퉁이 너머로 슬쩍 살펴 보았다. 방공호 놈 중 하나가 곰덫에 제대로 걸려 있었다. 기관단총으로 처리해 버리려 했지만 우는 소리에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날 보자마자 지른 비명 소리란. 오랫동안 놈들에게 난 저승사자였으니까.
이름은 실비라고 했다. 그 나쁜 놈들을 "악마의 자식들"이라고 부르며 놈들로부터 도망쳐왔다고 했다. 놈들은 살고 있던 방공호 안에서 뭔가에 걸려 병든 다음 그렇게 변해 버렸다고 한다. 본인은 그거에 감염되지 않았다고 했다(아직까지는).
그래서 나보고 도와 달란다. 간호를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좀 긴장했다.
1월 18일
그녀의 이야기는 내가 작년에 벌인 "심문"과 일치했다. 그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냥 여자로서 그 무리에 속했던 건 별로 즐겁지 못한 일이었다고만 해 두자. 그래서 그들이 떠날 때 도망쳐나왔단다.
그녀는 방공호 밖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배우고 싶어한다.
그녀의 이야기는 내가 작년에 벌인 "심문"과 일치했다. 그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냥 여자로서 그 무리에 속했던 건 별로 즐겁지 못한 일이었다고만 해 두자. 그래서 그들이 떠날 때 도망쳐나왔단다.
그녀는 방공호 밖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고, 배우고 싶어한다.
3.8. 2100년
9월 9일
내 생애에 이렇게 두려웠던 적이 없었다. 캐나다는 무섭지 않았다. 그저 거기서 벌어지는 범죄가 역겨웠을 뿐. 세상의 종말도 그랬다. 당신과 알렉스가 죽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한텐 더 이상 두려워하고 자시고 할 것조차 없었다. 좀 더 제정신에 가까워졌다고 해야 할지. 그 방공호 놈들하고 싸울 때도 무섭지는 않았다. 그 새끼들보고 어디 죽여 보라고 도발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지. 놈들을 죽일 때가 지난 몇 년 사이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실비가 임신했다. 난 지금 정말로 두렵다. 나잇살 처먹고 참 웃기는 짓이지. 47살에 또 아빠가 된다니, 그것도 이런 세상에서? 그녀는 정말 들떠 있고... 믿고 있다. 신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거라고, 잘못될 일 같은 건 아예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게 말이지, 샤르, 그녀는 당신과 알렉스에 대한 건 전혀 몰라. 말한 적이 없거든. 몇 번인가 말을 꺼내려 했는데 그냥 당신과 나 사이의 일은 묻어두는 게 나을 것 같더라고. 뭐, 날 젊은 새 각시가 예전 마누라와 잘 사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몰랐으면 하는 늙은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지.
의학서적이랑 약품 같은 걸 구하러 토커빌까지 걸어갔다 왔어. 잘 될 거야.
미안해, 샤르. 당신이 날 용서해 주기를 바라.
내 생애에 이렇게 두려웠던 적이 없었다. 캐나다는 무섭지 않았다. 그저 거기서 벌어지는 범죄가 역겨웠을 뿐. 세상의 종말도 그랬다. 당신과 알렉스가 죽었다는 걸 깨달았을 때 나한텐 더 이상 두려워하고 자시고 할 것조차 없었다. 좀 더 제정신에 가까워졌다고 해야 할지. 그 방공호 놈들하고 싸울 때도 무섭지는 않았다. 그 새끼들보고 어디 죽여 보라고 도발하는 거나 마찬가지였지. 놈들을 죽일 때가 지난 몇 년 사이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나 싶다.
실비가 임신했다. 난 지금 정말로 두렵다. 나잇살 처먹고 참 웃기는 짓이지. 47살에 또 아빠가 된다니, 그것도 이런 세상에서? 그녀는 정말 들떠 있고... 믿고 있다. 신이 우리에게 내려주신 거라고, 잘못될 일 같은 건 아예 없다는 듯이 말이다.
그게 말이지, 샤르, 그녀는 당신과 알렉스에 대한 건 전혀 몰라. 말한 적이 없거든. 몇 번인가 말을 꺼내려 했는데 그냥 당신과 나 사이의 일은 묻어두는 게 나을 것 같더라고. 뭐, 날 젊은 새 각시가 예전 마누라와 잘 사는 데 실패했다는 사실을 몰랐으면 하는 늙은이라고 하는 게 더 맞겠지.
의학서적이랑 약품 같은 걸 구하러 토커빌까지 걸어갔다 왔어. 잘 될 거야.
미안해, 샤르. 당신이 날 용서해 주기를 바라.
3.9. 2101년
3월 5일
아이가 다리부터 나왔다. 아들이었다. 이름은 마이클로 지어주려 했었다. 아이를 돌리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다. 제왕절개를 더 일찍 했어야 했다. 실비라도 구해보려고 했지만 그녀도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협곡 남쪽에 두 사람을 묻었다. 좋아. 이번에는 그들 곁에 있었다. 훨씬 낫군.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지랄맞을 머리통을 이 망할 동굴에 흩뿌릴 수 있을 것 같단 말이다.
아이가 다리부터 나왔다. 아들이었다. 이름은 마이클로 지어주려 했었다. 아이를 돌리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실패했다. 제왕절개를 더 일찍 했어야 했다. 실비라도 구해보려고 했지만 그녀도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협곡 남쪽에 두 사람을 묻었다. 좋아. 이번에는 그들 곁에 있었다. 훨씬 낫군.
이제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지랄맞을 머리통을 이 망할 동굴에 흩뿌릴 수 있을 것 같단 말이다.
3.10. 2108년[13]
8월 22일
협곡 입구에서 북동쪽으로 약 0.7 km 거리에 10여 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맨발???
협곡 입구에서 북동쪽으로 약 0.7 km 거리에 10여 개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맨발???
8월 23일
조준경을 통해 관찰해 보았다. 시체들이 걸어 다니고 있다. 마침내 미쳐버렸다. 치매라도 왔나 보다.
조준경을 통해 관찰해 보았다. 시체들이 걸어 다니고 있다. 마침내 미쳐버렸다. 치매라도 왔나 보다.
8월 24일
난 미치지 않았고 놈들은 진짜였다. 니미럴 진짜였다고.
날 보자마자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달려왔다. 겉보기는 영락없는 시체인데 썩는 내는 나지 않았다.
녀석들을 그런 비극에서 편안하게 해 주려 한다. 나 자신에게는 못 했던 것을.
난 미치지 않았고 놈들은 진짜였다. 니미럴 진짜였다고.
날 보자마자 짐승처럼 으르렁거리며 달려왔다. 겉보기는 영락없는 시체인데 썩는 내는 나지 않았다.
녀석들을 그런 비극에서 편안하게 해 주려 한다. 나 자신에게는 못 했던 것을.
9월 3일
전부 없앴다. 다 죽였다.
전부 없앴다. 다 죽였다.
3.11. 2113년
2월 5일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쓸모없는 늙은 공룡아, 생일 축하합니다.
즐거운 환갑이로군. 생일 축하 선물로는 뭘 받는다?
위스키 한 병과 함께 12게이지 슬러그탄 한 발 원샷은 어때? 야호!
이거 봐 친구. 이미 충분히 오래 살지 않았어?
이미 난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네다. 수염도 이미 허옇게 된 지 오래다. 일출이든 석양이든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봤다. 지독하게 큰 석양 하나[14] 뒤로 36년 동안이나 길고 긴 밤을 지내 왔지. 그래, 웃긴다. 등신아.
뭔가 긍정적인 면이 있을 거라고 날 속일 생각은 없다. 뭐 내가 태어나기 전엔 세상이 이렇게 엿같지는 않았겠지.
샤르와 알렉스, 실비, 그리고 태어나지 못한 마이클. 내가 사랑했던, 제 명을 살지 못한 이들을 생각한다.
자이온이여 안녕히.
2월 6일
씨발, 실패했다. 언제나처럼 겁쟁이야 넌. 내년엔 두 병 갖고 해봐야겠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쓸모없는 늙은 공룡아, 생일 축하합니다.
즐거운 환갑이로군. 생일 축하 선물로는 뭘 받는다?
위스키 한 병과 함께 12게이지 슬러그탄 한 발 원샷은 어때? 야호!
이거 봐 친구. 이미 충분히 오래 살지 않았어?
이미 난 주름이 자글자글한 노인네다. 수염도 이미 허옇게 된 지 오래다. 일출이든 석양이든 충분하고도 남을 만큼 봤다. 지독하게 큰 석양 하나[14] 뒤로 36년 동안이나 길고 긴 밤을 지내 왔지. 그래, 웃긴다. 등신아.
뭔가 긍정적인 면이 있을 거라고 날 속일 생각은 없다. 뭐 내가 태어나기 전엔 세상이 이렇게 엿같지는 않았겠지.
샤르와 알렉스, 실비, 그리고 태어나지 못한 마이클. 내가 사랑했던, 제 명을 살지 못한 이들을 생각한다.
자이온이여 안녕히.
2월 6일
씨발, 실패했다. 언제나처럼 겁쟁이야 넌. 내년엔 두 병 갖고 해봐야겠다.
3.12. 2123년
4월 25일
전부 24명이다. 반은 남자아이, 남은 반은 여자아이. 가장 어린 녀석은 여덟 살쯤, 가장 나이 많은 녀석은 13에서 14살쯤 되어 보인다. 꽤나 오랫동안 걸어 다닌 모양인지 다들 더럽고 야위었다. 소년 십자군이냐. 30년 하고도 한평생 전에 멕시코 친구들이 머물렀던 바로 그 곳에 캠프를 차렸다.
대화를 엿듣느라 이틀 밤을 샜다. 그나마 배운 영어다. 한 아이가 더 어린 애들이 잘 때까지 이야기를 들려 준다. 아무래도 "학교"란 곳에서 탈출한 모양인데 어디인지 감이 안 잡힌다. 어린 녀석들이 말을 잘 안 들을 때마다 "그만두지 않으면 교장이 널 잡으러 올 거야"라고 한다.
그 교장이란 새끼 나타나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거다. 내가 대갈통을 날려버릴 거니까. 내 사격 솜씨는 아직 녹슬지 않았다고.
전부 24명이다. 반은 남자아이, 남은 반은 여자아이. 가장 어린 녀석은 여덟 살쯤, 가장 나이 많은 녀석은 13에서 14살쯤 되어 보인다. 꽤나 오랫동안 걸어 다닌 모양인지 다들 더럽고 야위었다. 소년 십자군이냐. 30년 하고도 한평생 전에 멕시코 친구들이 머물렀던 바로 그 곳에 캠프를 차렸다.
대화를 엿듣느라 이틀 밤을 샜다. 그나마 배운 영어다. 한 아이가 더 어린 애들이 잘 때까지 이야기를 들려 준다. 아무래도 "학교"란 곳에서 탈출한 모양인데 어디인지 감이 안 잡힌다. 어린 녀석들이 말을 잘 안 들을 때마다 "그만두지 않으면 교장이 널 잡으러 올 거야"라고 한다.
그 교장이란 새끼 나타나지 않는 게 신상에 좋을 거다. 내가 대갈통을 날려버릴 거니까. 내 사격 솜씨는 아직 녹슬지 않았다고.
3.13. 2124년[15]
1월 2일
그 아이들에게 쪽지와 선물들을 주었다.
아이들은 책을 좋아했다. 이야기로 시작해 무기 입문서나 의학서적, 실용도구일람 등을 읽었다.
좀 당혹스럽지만, 나는 쪽지에 사람들이 서로 주고 받는 것들처럼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말들을 써놓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읽고, 배우고, 자신들의 새로운 집을 만들라고 적었다. 또한 그들의 고단한 삶과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현실의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자이온을 선물로 주겠노라 썼다. 서로 친절하고 겸손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서로 상처 입히지 말고, 너희들을 해치려는 사람이 있거든 뭉쳐서 정의로운 분노를 품고 대항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기타 등등. 모든 쪽지에는 "아빠가"라고 사인했다. 왜냐고?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 아이들에게 쪽지와 선물들을 주었다.
아이들은 책을 좋아했다. 이야기로 시작해 무기 입문서나 의학서적, 실용도구일람 등을 읽었다.
좀 당혹스럽지만, 나는 쪽지에 사람들이 서로 주고 받는 것들처럼 달콤하고 사랑스러운 말들을 써놓았다. 나는 아이들에게 읽고, 배우고, 자신들의 새로운 집을 만들라고 적었다. 또한 그들의 고단한 삶과 사람이 사람을 괴롭히는 현실의 슬픔을 극복하기 위해 자이온을 선물로 주겠노라 썼다. 서로 친절하고 겸손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서로 상처 입히지 말고, 너희들을 해치려는 사람이 있거든 뭉쳐서 정의로운 분노를 품고 대항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리고 기타 등등. 모든 쪽지에는 "아빠가"라고 사인했다. 왜냐고? 그래야 할 것 같아서였다.
1월 18일
내가 곧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던가?
정신은 아직 멀쩡한데 폐가 문제다. 암인 것 같다. 몇달 간 기침이 심해지더니 피가 나왔다. 숨이 차서 내 작은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게 힘겹다.
내가 가진 것 대부분을 나눠줬다. 아이들이 더 나이가 들면 동굴 안에서 나머지도 찾아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날 찾는 건 원치 않는다. 이런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늙은이가 "아빠"라고? 실망할 게다.
때가 됐다. 다른 생일은 이제 원치 않는다.
내가 곧 죽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던가?
정신은 아직 멀쩡한데 폐가 문제다. 암인 것 같다. 몇달 간 기침이 심해지더니 피가 나왔다. 숨이 차서 내 작은 친구들을 만나러 가는 게 힘겹다.
내가 가진 것 대부분을 나눠줬다. 아이들이 더 나이가 들면 동굴 안에서 나머지도 찾아낼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이 날 찾는 건 원치 않는다. 이런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늙은이가 "아빠"라고? 실망할 게다.
때가 됐다. 다른 생일은 이제 원치 않는다.
1월 23일
레드 게이트 옆의 흙무더기 위에 자리를 잡았다. 오래 버티지 못할 만큼 충분히 춥다. 숨은 쉴 만큼 다 쉰 것 같으니 누워서 하늘이나 보련다. 기분이 좋다.
아이들이 잘 해 나가길 바란다. 안에서든 밖에서든 그들을 해치려는 자가 없기를 소망한다. 마지막 쪽지는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다. 각자가 자신을 특별하게 느낄 수 있을 말들을 써 놨다. "아빠"는 착하고 상냥한 너희들을 만나서 기쁘고, 앞으로는 너희들에게 달렸으며, 나는 이제 쪽지를 보내지 않겠지만 계속 지켜보고 돌봐줄 것이라 적었다. 물론 다 거짓말이다. 다 그런 거지.
샤르, 당신에게도 거짓말을 했어. 실비에게도. 영원히 함께 할 거라 말했지?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음 번엔 그 말을 안 하려고 해.
대체 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었던 거지? 기억나는 거라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실패 뿐이었잖아.
하지만 당신의 얼굴은 잊지 않았어. 우리 아이도. (미안하지만) 실비의 얼굴도. 잠시 후에 말해도 되겠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
아마 지금까지의 내 삶에 유일하게 의미 있는 일은 모두의 얼굴들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 같아.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거밖에 없으니까. 단 하루도 당신들을 생각해보지 않은 적이 없어. 뭐,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몇 번이고 죽으려고 했지만 한 번도 해낸 적이 없어서 그렇지. 내 몸이 거부하는데 어쩌겠어.
어쨌든, 저 어린애들에겐 그런 게 필요해. 앞으로도 인류가 계속된다면 그들에게도. 앞뒤 잴 거 없이 일단 돌진하고 보는 거 말이야.
모두 잘 되기를 빈다. 모든 것의 종말에서 나는 순수함을 보는 선물을 받았다.
잘 있거라, 자이온이여.
Randall Dean Clark
Feb 5th, 2053 - Jan 2124
랜달 딘 클라크
2053년 2월 5일 출생, 2124년 1월 23일 사망
레드 게이트 옆의 흙무더기 위에 자리를 잡았다. 오래 버티지 못할 만큼 충분히 춥다. 숨은 쉴 만큼 다 쉰 것 같으니 누워서 하늘이나 보련다. 기분이 좋다.
아이들이 잘 해 나가길 바란다. 안에서든 밖에서든 그들을 해치려는 자가 없기를 소망한다. 마지막 쪽지는 최선을 다해서 준비했다. 각자가 자신을 특별하게 느낄 수 있을 말들을 써 놨다. "아빠"는 착하고 상냥한 너희들을 만나서 기쁘고, 앞으로는 너희들에게 달렸으며, 나는 이제 쪽지를 보내지 않겠지만 계속 지켜보고 돌봐줄 것이라 적었다. 물론 다 거짓말이다. 다 그런 거지.
샤르, 당신에게도 거짓말을 했어. 실비에게도. 영원히 함께 할 거라 말했지? 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다음 번엔 그 말을 안 하려고 해.
대체 이 인생에 무슨 의미가 있었던 거지? 기억나는 거라곤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실패 뿐이었잖아.
하지만 당신의 얼굴은 잊지 않았어. 우리 아이도. (미안하지만) 실비의 얼굴도. 잠시 후에 말해도 되겠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래.
아마 지금까지의 내 삶에 유일하게 의미 있는 일은 모두의 얼굴들을 가능한 한 오랫동안 기억하는 것 같아.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거밖에 없으니까. 단 하루도 당신들을 생각해보지 않은 적이 없어. 뭐,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고. 몇 번이고 죽으려고 했지만 한 번도 해낸 적이 없어서 그렇지. 내 몸이 거부하는데 어쩌겠어.
어쨌든, 저 어린애들에겐 그런 게 필요해. 앞으로도 인류가 계속된다면 그들에게도. 앞뒤 잴 거 없이 일단 돌진하고 보는 거 말이야.
모두 잘 되기를 빈다. 모든 것의 종말에서 나는 순수함을 보는 선물을 받았다.
잘 있거라, 자이온이여.
Randall Dean Clark
Feb 5th, 2053 - Jan 2124
랜달 딘 클라크
2053년 2월 5일 출생, 2124년 1월 23일 사망
4. 기타
- 랜달의 동굴은 함정으로 가득하지만 덕분에 적대 생명체나 야생동물이 아예 없다. 몇몇 동굴은 돌파를 시도당하긴 했으나 아지트 내부까지 진입한 경우는 없고 함정만 조심하면 매우 안전한 장소다. Light Step 퍽만 있으면 함정이 작동하지도 않으니 그냥 조용한 동굴에 불과하다.[16]
- 랜달의 거주지에서 다수의 아이템들과 유니크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데, 우선 랜달의 유해 옆에 있는 더플백에서 유니크 제식 소총인 생존주의자의 소총을 얻을 수 있으며,[17] 슬픔 부족의 본진에 있는 Stone Bones Cave란 동굴에서는 데저트 레인저 컴뱃 아머를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Fallen Rock Cave 내에서 순응 강제자라는 유니크 레이저 피스톨을 얻을 수 있다.
- 랜달의 일대기는 어니스트 하츠 메인 퀘스트보다 더 흥미롭거나 감동적이라는 평이 많다. 랜달의 존재 덕분에 슬픔 부족과 조슈아 그레이엄에게 협력하게 되었다는 플레이어도 있을 정도. 온갖 사이코패스들이 넘쳐나는 폴아웃 세계관에서 몇 안 되는 선인인 데다가, 오로지 혼자의 힘(물론 약간의 운도 포함해서)으로 핵전쟁이 일어난 순간부터 50년 가까이 살아남았으며 100명 가까이 되는 볼트 22 생존자들을 상대로 함정과 습격을 병행해 상당수를 살해하였고,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긴 했지만 그조차도 극복하고 살아남았다. 거기에 그가 남긴 기록을 통해 대전쟁 직후의 세계가 어땠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다.
- 위의 기록들을 보면 알겠지만 핵전쟁 이후 죽을 때까지 '생존자 증후군'에 시달리며 괴로워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빅호너들이 가정을 이루고 무리 짓는 것을 보고 욕설을 하거나, 볼트에서 갈라져 나온 아이들이 '교장'이라 칭해지는 이로부터 학대받은 것을 알고 강한 분노를 느낀다는 점이나, 유서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기록에서 살아남은 기간 동안 잃어버린 가족들을 생각하는 것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아래의 기록들을 보면 알겠지만 가족을 잃은 사건 때문에 냉소적인 사람이 되었으나 그래도 착한 마음씨는 잃지 않고 평생을 살았으며 단지 슬픔에 매몰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그 가치를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다만 좋은 인물이긴 해도 PTSD로 인한 안전에 대한 집착으로 만든 함정 때문에 키우던 아이들이 자신을 찾다가 죽었다.[18]
- 생존전문가의 가방 6개 모두를 찾는 도전과제가 있다. 다섯 개는 단말기가 있는 동굴 안에 놓여 있으나, 마지막 하나는 죽은 말 부족의 캠프에서 조슈아를 처음 만나는 '천사의 동굴' 뒷문으로 나가야 찾을 수 있다. 시신 옆의 가방은 카운트에 포함되지 않는다.
- 캐릭터 컨셉은 조쉬 소여가 만들었으며, 터미널 일기는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의 작가 존 곤잘레스(John Gonzalez)가 담당했다. 존 곤잘레스는 폴아웃: 뉴 베가스 메인 퀘스트와 베니, 카이사르, 미스터 하우스, 예스맨, 울페스 인컬타의 대사를 집필한 것으로 유명하며, 이후 게릴라 게임즈로 이직하여 내러티브 디렉터가 되었으며 호라이즌 제로 던의 스토리 작업을 이끌었다.
- 한편 '동굴 속의 아버지'란 캐릭터는 환상특급 오리지널 에피소드 중 하나인 The old man in the cave와 유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핵전쟁으로 인해 멸망한 세계에서 문명이 서부시대로 회귀한[19] 한 마을에 동굴 속 노인이라는 존재가 마을 사람들이 생존하게 도움을 준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은 많은 양의 식량을 얻어 기뻐하는데, 유일하게 동굴 속 노인을 본 사내가 "동굴 속 노인이 말하길 저 식량들은 모두 방사능에 오염되었기에 먹으면 피폭되어 죽는다"라고 했다는 걸 전달한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식량을 처분하기로 하나, 때마침 마을을 찾아온 '군인'이라고 자칭하는 약탈자 무리가 동굴 속 노인이 핵을 떨어트렸다고 선동하며, 마을 사람들에게 식량을 먹어도 괜찮다고 하며 본인들이 직접 먹으며 마을 사람들을 유혹한다. 결국 마을 사람들은 오염된 술과 음식을 먹으며 약탈자들과 어울려놀며 사내와 동굴 속 노인을 무시한다. 이에 사내는 약탈자의 대장에게 마지막으로 경고하나 약탈자들의 대장은 도리어 동굴 속 노인 같은 건 없다고 주장하며 마을 사람들을 데리고 동굴로 가게 된다. 그리고 사내를 협박하여 동굴을 열게 되고 동굴 속 노인의 정체가 밝혀지는데... 동굴 속 노인의 정체는 바로 컴퓨터였던 것. 이에 대한 복선이 2번 정도 나오는데, 노인이 한 번도 밖에 나온 적이 없다는 것과 사내가 말하길 "그는 살아있지 않다."라는 것이 복선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약탈자의 대장은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컴퓨터를 파괴시키게 하고 자신들의 자유를 선포하지만 다음날 사내를 제외한 마을 사람과 약탈자는 전부 피폭으로 사망한다. 그 시체를 쓸쓸히 바라보는 사내만이 유일하게 살아남는다.
이에 2012년경 어떤 유저가 조쉬 소여에게 랜달의 스토리를 구상하면서 환상특급의 해당 에피소드를 참고했는지 물어봤는데 조쉬 소여는 해당 에피소드를 시청한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고 답변하였다.
랜달이 살아있는 시간대의 작품이 나왔지만 배경이 동부이기에 언급될 일이 없다.
[1] 게임 내부 리소스를 이용한 머시니마 방식으로 제작되었다.[2] 캐나다 합병 이후 미국으로 건너오려는 캐나다인들이나 불법체류자 등을 상대했을 것이다. 본인이 남긴 기록에서도 자신이 복무했던 캐나다의 상황이 살짝 언급되기도 한다.[3] 이 볼트 22 거주민들은 사고로 인해 거의 모든 거주민들이 포자 운반체에 감염되어 이성을 잃어버렸다. 사람들을 마구 공격하고 잡아먹은 것은 이미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랜달이 일으킨 전쟁으로 거의 박멸된 상황이지만 Ghost Den 주변에서 볼트 22 오버시어가 남긴 홀로 테이프를 얻고 나가려 하면 포자 감염체 하나가 나타나 배달부를 습격한다.[4] 머리부터 나와야 할 아기가 거꾸로 자리잡고 있었다.[5] 2077~78년도 기록은 Fallen Rock cave에 있음[6] 83~95년도 기록은 Two Skies Cave에 있음[7] 겍코는 도마뱀이 방사능의 영향으로 커진 생물이다.[8] Infec-shee-own, 스페인어로 Infección(감염).[9] 사실 영어에 대량의 로망스계 어휘가 차용되었으므로 어느정도 비슷할 수밖에 없다.[10] 원문은 Dee-os. Dios.[11] 96년 기록은 Stone Bones Cave에 있음[12] 97~2101년도 기록은 Cueva Guarache에 있음[13] 08~23년도 기록은 Morning Glory Cave에 있음[14] 솔트레이크 핵 공격.[15] 24년 기록은 The Red Gate에 있음[16] 단 수류탄 더미 함정만큼은 주의해야 한다. 수류탄 더미만큼은 Light Stap 퍽의 영향을 안 받으므로 다른 함정 다 해체해놓고 잘못해서 건드렸다가는 한 번에 즉사한다.[17] 무려 50구경 탄환이 장전된 대구경 제식 소총이라 엄청나게 강하다.[18] 다만 PTSD가 아니라도 각종 괴물들이나 레이더 등의 공격으로부터 안전하기 위해서도 트랩 설치는 불가피했다.[19] 우연일지는 몰라도 뉴 베가스의 배경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