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렌나르트 분케 (Lennart Bunke) |
생년월일 | 1912년 4월 3일 |
사망년월일 | 1988년 8월 17일 (향년 76세) |
국적 | 스웨덴 |
출신지 | 회가네스 |
포지션 | 센터 포워드 |
신체조건 | 불명 |
소속팀 | 헬싱보리 IF (1932-1935) IFK 에스킬스투나 (1935-1937) 헬싱보리 IF (1937-1939) |
국가대표 | 11경기 / 8골 (1933-1937) |
1. 개요
스웨덴의 전 축구 선수. 1937년부터 1939년까지 헬싱보리 IF에서 활동했다.2. 생애[1]
분케는 회가네스 BK(Höganäs BK)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그의 형 토르스텐과 함께 1932년에 헬싱보리 IF로 이적했다. 당시 헬싱보리에는 닐스 로시엔, 닐스 악셀손, 크누트 크룬 등 스웨덴에서 이름을 날리던 선수들이 있었고 이적하자마자 알스벤스칸 우승을 차지하는 기쁨을 맛보았다.이 활약으로 분케는 블로굴트에도 선발되었고 월드컵 지역예선 에스토니아전에 출전했다. 분케는 이 경기에서 한 골을 넣으며 스웨덴의 6대2 승리를 도왔다. 그 이후에도 이탈리아 월드컵 직전까지 4경기에 더 출전, 3골을 넣었지만 최종 엔트리에 들어가진 못했고 스웨덴은 8강에서 미끄러졌다.
1935년, 헬싱보리의 강등 이후 분케는 IFK 에스킬스투나로 이적했지만 1937년에 다시 헬싱보리로 돌아와 헬싱보리의 알스벤스칸 승격에 힘을 보탰다. 그러면서 블로굴트에도 재소집되었고 프랑스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스웨덴의 월드컵 진출을 위해 노력했다. 1937년 10월의 덴마크전이 분케의 마지막 A매치였고 대표팀에서는 총 11경기 출전, 8골의 기록을 남겼다. 1938년 월드컵에서는 대표팀의 최종 엔트리에 들어갔지만 피치에서 분케의 자리는 없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분케는 중위 계급으로 군생활을 보냈고 1976년 2월, 분케는 스페인에 정착했다. 그러다 1988년에 7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수상
3.1. 클럽[2]
- 알스벤스칸 우승 2회: 1932–33, 193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