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루이 샤를 브레게 Louis Charles Breguet | |
출생 | 1880년 1월 2일 |
[[프랑스 제3공화국|]] 프랑스 파리 | |
사망 | 1955년 5월 4일 (향년 75세) |
[[프랑스 제4공화국|]] 프랑스 생제르맹앙레 | |
국적 | [[프랑스|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기업인, 공학자 |
학력 | 쉬펠레크 |
가족 | 앙투안 브레게 (아버지) 자크 브레게 (남동생) |
배우자 | 넬리 지라르데 (1902년 결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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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의 기업인, 항공기 디자이너. 항공기 제조 기업인 브레게 항공과 플래그 캐리어 항공사인 에어 프랑스를 설립했다. 항공기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로 손꼽힌다.2. 생애
1903년 이공계 그랑제콜인 쉬펠레크를 졸업한 후, 1905년 남동생 자크 브레게와 함께 헬리콥터의 전신인 회전익기 형태의 자이로플레인[1]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물리적 한계에 부딪혀 실현화되지는 못했다.그러나 브레게는 이에 굴하지 않고 고정익기 형태의 항공기 개발에 착수했고, 1909년 브레게 타입 I(Breguet Type I)을 만드는 데에 성공했다. 비록 브레게 타입 I은 랭스에서 개최된 항공기 행사인 그랑드 세멘 다비아시옹(Grande Semaine d'Aviation)에서 진행된 시험 비행에서 추락을 했지만, 이륙과 비행만큼은 성공적이어서 큰 이목을 끌었다. 이를 발판으로 그는 1911년 루이 브레게 항공제조사(Société anonyme des ateliers d’aviation Louis Breguet)를 설립했고, 1912년부터 항공기 생산을 본격적으로 생산했다. 회사는 제1차 세계 대전 때 폭격기를 생산함으로써 큰 명성을 얻었다.
1919년 브레게는 항공수송회사(Compagnie des messageries aériennes)를 설립했다. 항공수송회사는 이후 에어 프랑스로 발전했다.
1935년 브레게는 다시 자이로플레인 개발에 착수했다. 이번에는 시속 108km까지 속도를 내고 상공 158m까지 오를 수 있게 되는 고무적인 성과를 거두었다.
브레게의 회사는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함으로써 재차 명성을 얻었다. 그의 회사는 주요 전투기 생산에 참여해 제1차 세계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막대한 부를 얻었다.
1955년 브레게는 파리 근교의 마을인 생제르맹앙레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