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루이 1세 드 블루아샤티옹 Louis Ier de Blois-Châtillon | |
출생 | 1320년 | |
프랑스 왕국 샤티옹 | ||
사망 | 1346년 8월 26일 (향년 25~26세) | |
프랑스 왕국 크레시 | ||
아버지 | 기 1세 드 샤티옹 | |
어머니 | 발루아의 마르그리트 | |
형제 | 샤를, 마리 | |
배우자 | 잔 드 보몽 | |
자녀 | 루이 2세, 장 2세, 기 2세 | |
직위 | 블루아와 샤티옹 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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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스 왕국의 블루아와 샤티옹 백작. 백년전쟁 시기에 잉글랜드군에 맞섰지만 크레시 전투에서 전사했다.2. 생애
아버지는 블루아 지역의 뒤누아와 프레테발 영주였던 기 1세 드 샤티옹이고, 어머니 마르그리트는 발루아 왕조의 창립자이며, 발루아, 알랑송, 페르세, 샤르트르, 메인, 앙주 등지를 장악하고 아라곤 왕국의 명목상 국왕이자 라틴 제국의 명목상 황제이기도 했고, 프랑스 정계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최강의 위세를 떨쳤던 샤를 드 발루아의 딸이다. 형제 샤를 드 블루아는 1337년 브르타뉴 공작 장 3세의 조카이자 상속녀인 잔 드 팡티에브르와 결혼하면서 장 3세의 후계자가 되었으며, 누이 마리는 로렌 공작 라울과 첫번째로 결혼한 뒤 리나주 백작 프레데리크와 재혼했다.1341년 4월 브르타뉴 공작 장 3세가 사망한 뒤, 장 3세의 이복형제인 장 드 몽포르가 잔 드 팡티에브르의 계승은 여자는 직위를 계승할 수 없다는 살리카법에 어긋난다며 반기를 들었다. 그는 장 드 몽포르에 맞서 싸우는 샤를 드 블루아의 부관으로서 브르타뉴 공작위 계승 전쟁에 참여했고, 1342년 4월 15일 렌 공략에 기여했다. 1342년 8월 12일 아버지 기 1세 드 샤티옹이 사망한 뒤 블루아와 샤티옹 백작 직위를 게승했다. 1346년 8월 26일 크레시 전투에 참전했다가 전사했다. 사후 기쉬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3. 가족
- 잔 드 보몽(1323 ~ 1350): 보몽의 영주 장 드 보몽의 딸.
- 루이 2세 드 샤티옹(? ~ 1372): 블루아와 샤티옹 백작
- 장 2세(1342 ~ 1381): 블루아와 뒤누아 백작
- 기 2세(? ~ 1397): 블루아와 수아송 백작. 백년전쟁에 관한 연대기 작가 장 프로이사르의 후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