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8-06-11 21:05:10

마이클 잭슨/1차 아동 성추행 혐의와 첫번째 결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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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은 묘하지만 근면하고 도덕적인 그는 80년대 가장 완벽한 '미국적' 성공사례를 창조했다.
로큰롤 스토리의 저자 폴 두 노이어
성추행 혐의 이전 마이클 잭슨의 이미지가 어떠했는가? 비록 'Wacko Jacko' 논란으로 괴짜에다 좀 독특하다는 시선을 받았지만 천재들이란 원래 좀 유별나며 연예인의 가십은 하루이틀 일이 아니기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는 게 대중들의 생각이었다. 마이클 잭슨이 범죄를 저지른 것도 아니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래미 시상식 6개월 이후 13세 소년 성추행 혐의로 민사소송과 동시에 형사 수사를 받게 되면서 진퇴양난에 빠지게 되며 마이클 잭슨을 상표로 한 모든 물건들은 백화점에서 파기되는 등 막대한 재정적 손실과 함께 커리어에도 지대한 부정적 영향을 얻게 됐다.

이 사건을 설명하기 전에 기본적인 가족들에 대한 배경 설명이 필요하다. 에반 챈들러는 Beverly Hills에서 치과 진료를 하는 의사로 준 챈들러와 사이에서 1980년 다재다능하며 사람을 재밌게 해주는 능력을 가진 조단 챈들러를 낳았는데 결혼 생활은 순탄치 않았고 1985년 이혼했다. 챈들러 가족의 친구는 준이 에반을 떠난 이유중 하나는 에반의 성격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2005년 준 챈들러는 법정에서 에반은 각본쓰기에만 열중하며 가족들을 잘 돌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에반의 성격을 엿볼 수 있는 사례가 있다. 준과 재혼한 남자인 데이브 슈워츠는 1993년 마이클 사건이 터진 후 에반과 관계가 악화되고 있었는데 챈들러가 화가 나 데이브를 폭행했다는 것이다. 더 자세하게 "데이브는 화가 나 이건 어차피 모두 갈취를 위한 것이 아니냐고 에반에게 말했고, 그 순간 에반은 일어나 데이브에게 걸어 가 그를 때리기 시작했다."고, 이것은 에반의 친척 레이 챈들러도 확인해준 것으로 실제 에반이 데이브에게 폭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Geraldine Hughes는 7~8월 사이 에반이 데이브를 몇 차례 폭행했었다고 주장했다. 데이브 슈워츠는 에반과의 전화를 비밀리에 녹음 했었는 데 훗날 에반의 다음 아내인 모나크에 대해 이야기 할 때 그녀가 칸 영화제에 갈 것인데 빌어먹을 그것은 망할 섹스 파티라며 그녀의 불륜을 의심했다. 그러면서 모나크를 죽일 지도 모른다, 이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말을 끝맺었다.

1992년 5월 마이클은 로스엔젤레스에서 운전 중 차 고장이 났고 근처 카센터 직원에게 발견됐다. 그 카센터 사장은 데이브 슈워츠였으며 의붓 아들인 조단이 마이클의 열렬한 광팬임을 알고 있었다.(조단은 펩시 화상 사고로 고생하는 마이클이 있는 병원으로 쾌유의 편지를 보냈고 마이클은 감사 답장을 보냈었다. 또 마이클과의 광고에 출연할 어린이들을 뽑는 오디션에 조단도 참여했지만 뽑히지 않았다.) 당시 준과 사이가 좋지 않아 조단을 이용하면 관계를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조단과 통화해주는 대가로 마이클에게 무료로 차를 빌려주겠다고 제시했고 마이클은 승락했으며 조단과 그의 가족 전체가 마이클과 친구 관계를 가지게 된다. 그 이후 마이클과 챈들러 가족은 라스베가스 여행,월드 뮤직 어워드를 위한 모나코 여행,디즈니 랜드에도 가며,파리 여행까지 많은 것을 같이 하게 됐다.
마치 그녀가 잭슨에게 그녀의 아들을 억지로 떠안기는 것 같았다,내 생각에 마이클은 자기가 그 아이에게 뭔가 빚을 졌다고 생각한 것 같다. 거기서 전부 시작되었다.
카센터 직원 그린
1993년 2월 조단과 준 그리고 조단의 여동생 릴리 챈들러가 마이클 잭슨의 저택 네버랜드를 처음 방문했으며 3월에도 재방문 했다. 6월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조단이 마이클 잭슨의 침실에서 잠을 자도 되냐고 준에게 물었으나 준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조단은 자기 방으로 돌아오기 전인 새벽 2시까지 마이클의 방에서 놀았다

5월 20일에는 조단의 친아버지 에반 챈들러가 마이클 잭슨과 처음으로 만났는 데 에반은 조단과 마이클 간의 관계를 5월 12일 모나코 여행부터 질투하기 시작했었다. 마이클과 조단이 친밀한 관계로 친아버지인 자신이 소외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그러면서도 마이클과 아들의 관계를 주위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슈퍼스타와의 관계를 과시하며 에반의 집에 마이클이 방문했을 때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길 권장했었다. 마이클은 센추리 시티 콘도에 에반을 초대했고 에반 또한 마이클과 사이가 가까워 진다. 5월 25일 경 '내셔널 인콰이어러'라는 미국 타블로이드 잡지에는 챈들러 가족의 내용을 담은 마이클 잭슨의 비밀 가족이라는 특종이 보도됐는데 이 내용은 챈들러 가의 가장 가까운 친구의 여동생이 돈을 받고 판 내용이였다고 한다. 현충일 주말인 5월 28~30일에 마이클은 에반 챈들러의 집에서 그의 모든 가족들과 시간을 보냈는 데 에반은 이때 마이클이 조단을 성추행했다는 의심을 갖기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의심을 가진 이유는 마이클과 조단이 침대 위에 있는 걸 봤을 때마다 옷을 입었지만 30세가 넘는 성인 남성이 13세 소년과 같이 있고 앞에서 말한 친아버지로서의 질투가 겹쳐졌기 때문인 데, 익명의 출처에 의하면 마이클과 조단은 에반이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하루 종일 자신들의 작은 세계에서 놀았다고 묘사한다. 조단은 마이클 특유의 복장을 코스프레 하기도 했다고, 그러나 에반은 스스로도 마이클이 성희롱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6월 9일 에반은 조단이 동성애자라서 마이클과 그렇게 가깝게 지낸 것이냐는 의문을 품으며 조단에게 직접적으로 스타 사이의 관계가 성적인 것인지를 물었다. 그러나 조단은 그것은 역겨운 짓이라며 그렇지 않다고 반발했다. 아무튼 에반과 마이클의 관계는 유지됐으며 펩시 화상 사고로 후유증을 앓고 있던 마이클은 그 통증이 재발해 고생하자 에반은 그가 아는 마취과 의사 Mark Torbiner를 데려와 마이클에게 통증을 완화할 약을 투여하고 마이클의 상태는 다소 헤롱해졌는 데 이것을 기회 삼아 에반은 마이클에게 Sexual에 대해 질문했는 데 마이클은 에반이 자신을 의심하자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일부 연구자들은 그 상태에서 에반이 마이클의 하반신 피부 상태를 엿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을 한다. 이 이야기를 뒤에서 나올 생식기 일치 문제와 연결지어 생각해 보자.) 어쨌건 에반은 마이클이 자녀들과 같이 있을 수 있게 냅뒀다. 에반은 어느 날 마이클과 조단을 3번 비밀리에 확인했는 데 세 번째 봤을 때 둘은 다 옷을 입고 있었지만 마이클이 팔로 조단을 감싸고 한 손은 옷 위의 허벅지에서 가만히 얹어져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레이 챈들러는 이것이 의심을 강화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이 기간 에반은 변덕스러워지기 시작했고 데이브와 준의 사이도 소원하게 만드는 협박을 하곤 했다. 그래서 데이브는 자연스레 에반과의 전화통화를 녹음했던 것이고 한 전화에서 에반은 데이브에게 "난 마이클과 좋은 이야기를 나눴고 난 그를 좋아했고 존중했다. 그가 나에게 전화하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마이클은 에반에게 전화하는 것을 멈췄고 에반과 관계를 유지하기를 더이상 원하지 않아 에반은 화가 났다.) 저번에 방에서 마이클에게 이 관계에서 내가 원하는 것(앞에서도 말했지만, 에반은 각본쓰기를 좋아했는 데 그는 영화 산업에 관심이 많았다. 에반은 마이클과 소니의 거래에서 파트너가 돼 자신의 영화 프로젝트에 필요한 230억원의 돈을 자금으로 대주기를 요청했다. 1993년 8월 28일자 LA Times에서도 영화 산업에 있는 몇몇은 그 아이의 아버지가 마이클과 230억원짜리 영화제작과 자금조달 거래를 추구했다고 증언했었다.)이 무엇인지 정확히 말해줬었다." 데이브는 도대체 마이클의 무엇이 에반을 화나게 했냐고 묻자 에반은 "마이클은 내 가족을 깨뜨렸다. 내 아이는 이 남자의 힘과 돈에 유혹당했다"며 주장했다. 그리고 다 준비됐어, 내 전화를 기다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이미 있다, 그들에게 돈을 줬고 계획대로 다 가고 있다. 내가 전화를 하기만 하면 이 사람 (에반의 변호사 베리 로스만)은 그의 시야에 있는 모든 것을 더럽히고 비열하고 잔혹하게 망가뜨릴 것이다. 그리고 난 그에게 모든 지휘권을 주었다, 그리고 내 계획대로만 된다면 난 정말 크게 이길 것이다. 내가 질 리가 없어, 그러도록 확실히 확인하고 내가 원하는 건 다 가질 것이고 그들은 영원히 파괴될 것이다. 준은 아이의 양육권을 잃을 것이고 마이클의 커리어는 끝날 것이다. 데이브는 그것이 아이를 도와주는 일이냐고 물었다. 에반은 이렇게 답변했다. 그런 건 상관 없어, 이건 우리 모두를 넘어섰다. 시야에 있는 모두를 파괴할 것이고 내가 원하는 걸 갖지 못한다면 학살밖에 없다.

베리 로스만은 누구인가? 에반은 로스만을 설명할 때 이렇게 말했었다. 내가 찾은 변호사, 난 정말 제일 비열한 놈을 찾았다, 그가 하고 싶어하는 것은 그가 할 수 있는 만큼 빠르게 이 모든 걸 대중에게 퍼뜨리고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굴욕감을 주는 것이다. 그는 위험하고 똑똑하고 유명해지고 싶어한다. 로스만은 Century City에서 일반법을 전공했고 한 동안 리틀 리처드,롤링 스톤즈,더 후,오지 오스본 등을 위한 음악 협상을 하기도 했다. 그의 전 직원은 로스만을 "끔찍한 성질을 가진 악마"라고 묘사했는 데 에반과 로스만이 오피스에서 나눈 대화를 다이어리에 적어뒀던 로스만의 동료는 로스만이 "이 모든 것을 꾸며냈어,틀림없이, 마이클 잭슨을 향해 혐의를 씌운 것은 그의 성격에 딱 들어맞는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로스만은 수년 간 너무나도 많은 적을 만들었는 데 수사관 Ed Marcus는 로스만을 향한 소송을 검토하고 그는 사람들의 돈을 떼먹는 것으로 평판이 나 있다며, 전문적으로 돈을 떼 먹는 사람같이 보인다고 증언했다. 덕분에 캘리포니아 변호사 협회로부터 3개의 사건에 관여해 징계 처분이 내려졌고 1992년에는 변호사 라이센스가 일 년 동안 유예되고 보호 관찰을 받았었고 몇 명의 채권자들로부터 빚을 갚으라는 독촉을 받았으며 11월에는 파산 신청을 한 전적이 있다.

이제 에반은 자신의 계획대로 가야 했다. 1993년 7월 7일 양육권을 얻기 위한 서류를 제출했다. 그 다음 따라올 모든 것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준에게 있는 양육권부터 에반이 가져가야 한다. 그리고 마이클의 성추행 혐의를 공식화 하여 그에게 돈을 받아내거나 민사소송을 시작해야 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조건 당사자인 조단에게 진술을 받아내야 한다. 에반은 7월 11일부터 자신의 집에 머물던 조단을 준에게 되돌려 보내길 거부하며 조단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7월 16일 에반은 조단에게 먼저 "너가 내게 거짓말을 하면 마이클을 무너뜨리겠다고 한 말 기억하지?" 조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이제 당신에게 질문할 것이니 잘 명심해, 마이클을 걱정하니?" 조단은 네라고 말했다. "너는 마이클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겠니?" 네, "그리고 그 사람을 다치게 하고 싶니?" 조단은 No라고 말했다. 그리고 "좋아, 내가 너의 침실을 도청했다고 한 말 기억나?, 네가 한 모든 것을 알고 있어 너도 인정할 거야" 그러나 조단은 침묵적인 인상을 유지했고 여전히 마이클에게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에반의 위협은 보다 직접적이고 공격적으로 됐다."나는 마이클을 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줄 거야, 네가 거짓말을 하면 세상 앞에 마이클을 데리고 가겠어, 그리고 마이클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너이기 때문에 너 잘못인 거야" 그러면서 "나는 키스와 자위에 대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네가 모르는 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건 명백하게 에반의 거짓말이다. 도청도 거짓이며 에반은 마이클과 조단의 성적 관계를 입증할 증거는 하나도 없었고 스스로도 목격한 적이 없다고 앞에 썼다. 에반은 덧붙이며 "거짓말 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알 거다. 그래서 나는 당신을 위해 쉬운 질문을 할 것입니다. 나는 너에게 하나의 질문을 할 거야, 예 또는 아니오라고 말하면 돼 그게 전부야. 거짓말 하면 마이클은 무너져, 진실을 말해 줘 마이클을 구해줘"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렇게 물었다. "마이클이 당신의 성기를 만졌습니까?" 조단은 주저하면 거의 속삭이는 듯한 말로 "예"라고 했다. 에반은 이제 듣고 싶은 것을 들었다 더이상 물을 필요는 없으며 팔을 뻗어 에반을 꽉 껴안아 줬다. 그리고 에반은 조단과 다시 한번 그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고 마이클의 형사 수사 당시 LA 지방검사에게 말했다. 에반에게 세부 사항은 어차피 중요하지 않았다. 레이 챈들러는 "이미 에반의 마음에서 에반은 진실을 확정했다. 그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조단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이클에게 민사소송을 걸기 위해서는 조단의 진술이 필요했다.[1]

여기까지 읽었다면 일부는 왜 이렇게 이야기가 디테일하며 심지어 감정까지 자세하게 묘사된 지에 대해서 궁금증을 가질 것이다. 이 중 일부는 고소인 측인 에반 챈들러의 소스에서 가져온 것이다. 이건 재판에 가지 않았다. 교차검증도 거치지 않았다. 남아있는 자료는 오로지 주위 증언들 뿐으로 이 사건을 파악하기 위한 타임라인을 쓴다면 원인이 필요하고 즉, 고소인들의 소스가 믿을 수 있는 지를 떠나 이야기를 구성하는 소스라는 것이다. 그런데, 뒤에서도 이야기 하겠지만 챈들러와 마이클 측은 합의를 할 때 이 사건에 대해 외부에 언급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근데 이렇게 자세한 고소인의 내용이 나올 수 있었을까? 앞에서 계속 언급된 레이 챈들러를 주목하자. 책 출판사 일을 했던 Judith Regan은 SiriusXM 라디오에 나와 레이 챈들러가 합의 직후 출판 계약을 위해 움직였다는 사실을 공개했었다. 레이 챈들러는 에반의 전화를 받았는 데 에반은 마이클의 성추행 혐의를 자세히 설명할 책을 원했었다. 언제부터? 1993년 8월 말부터 즉, 조단의 진술이 당국에 보고되고 얼마 안 간 때부터 에반은 레이에게 자신의 정보를 전달했다. 캘리포니아의 Shield Law에 의하면 언론인들은 익명의 정보원을 통해 취득한 정보의 기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법적 보호를 제공하였고 즉, 마이클 측과의 합의를 회피할 수 있던 것이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뒤에서도 언급하겠지만 합의 이후 조단이 증언을 안 한 이유로 에반은 조단이 삶의 터전으로 나가야 한다며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 안 됐으며 마이클 잭슨의 팬들로부터 몇 차례 죽음의 위협을 받았다는 것이다. 근데 왜 에반은 이것을 으로 만들기를 곧바로 원했었고 레이를 이용하려 했을까? 더이상 언론의 주목을 받기 싫으며 자신의 아들이 정상적인 삶의 터전으로 나가고 마이클 잭슨의 팬들에게 죽음의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 책은 최종적으로 마이클이 2005년 아동 성추행 혐의 재판을 앞 둔 2004년 9월 발간됐으며 레이는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는 웹사이트도 만들었었다. 그런데 그 웹사이트에 올라온 에반 측의 문서 자료들은 배리 로스만의 법률 비서였던 Geraldine Hughes에 의하면 서명이 틀리는 등 위조품으로 보인다고 추측했었다. 그리고 2005년 마이클의 재판 당시 검찰 측에서는 레이가 증언해주기를 바랐으나 거절했고 심지어 마이클의 변호인도 레이를 증인으로 소환해 달라고 법원에 요청했으나 레이는 변호사를 고용하여 Shield Law에 의하여 소환을 막았다.(레이가 기자인 지는 논란이 있다.) 왜 그는 조카의 성추행을 법원에 증언하길 거부했을까? 결국 2005년 재판에서 유일하게 소환돼 증언한 사람은 뒤에서도 말하겠지만 '준 챈들러' 뿐이었다.

한편 마이클의 사설 탐정이었던 Anthony Pellicano는 7월 16일 이전인 7월 9일 데이브와 에반의 비밀 전화녹음을 듣고 이것은 갈취 사건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말하며 독자적으로 조단을 찾아가 마이클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당했느냐고 몇 번을 물었었다. 그러나 조단은 그런 적이 없으며 우리 아버지는 돈을 원해요라고 말했었다고 한다.

7월 27일자 로스만은 에반에게 부모에게 법적 책임이 없도록 아동학대를 고발하는 법을 조언하는 편지를 썼다고 한다.

8월 4일에는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에반 그리고 조단은 Westwood Marquis Hotel의 스위트룸에서 마이클과 Pellicano를 만났다. 마이클을 만나자 마자 에반은 마이클에게 가 그를 다정한 것처럼 마치 오랜 친구처럼 그를 껴안았으며 이때 에반은 7월 14일경 로스만과 함께 만난 정신과 박사 애브람스에게 이것저것 이야기를 했고 (물론 조단과 마이클은 이 자리에 없었다.) 애브람스는 '성적 학대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합리적인 의심'이라는 문구가 포함된 2통의 편지를 보냈는 데 에반이 그 편지의 내용을 그 자리에서 읽은 것인데 아동 성추행 부분에 다다르자, 조단은 '마치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는 듯'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마이클을 쳐다 보았다고 한다. (마치~부분은 Pellicano가 바라본 시점에서 조단의 표정을 해석한 것이다.) 만남이 끝난 후 에반은 마이클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널 망칠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이 장면을 목격한 Pellicano는 6개월 후 Vanity Fair에서 인터뷰에서 나같으면 자신의 아들을 성추행 한 인간은 패죽였을 것인데 에반이 마이클을 죽이지 않았고 또 저런 식으로 대했기에 실제 성추행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굳혔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소송을 하지 않는 대가로 마이클에게 2000만 달러를 합의금으로 요구했다. 2000만 달러가 어디서 왔는 지 알 수 있다. 앞에 230억을 생각해 보라. 하지만 마이클은 그 후에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며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말했다고 Pellicano는 처음에 100만 달러를 제안했는 데 에반은 당연히 거절했다. 그 뒤 Pellicano는 35만 달러를 제시했는 데 로스만과 에반은 충격을 먹었다. 협상의 법칙에서 2천만 달러와 백만 달러에서 시작되면 다음은 그 중간 지점에서 이뤄져야 하는 데 팍 낮춘 것이다. 결국 당연히 합의는 없었다. 레이 챈들러도 말하길 사건이 공개되기 전 마이클은 에반에게 돈을 지불할 기회가 있었는데 하지 않았고 이는 에반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레이 챈들러는 이렇게 말했다. 마이클이 1994년 1월이 아닌 1993년 8월에 에반에게 2천만 달러를 지불했다면 다음 10년을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아동 성추행범이 아닌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연예인으로 보냈을 것이다. 또한 법원은 에반이 조단을 준에게 돌려보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제 에반에게 남은 선택지는 한 가지였다.

8월 17일 이것은 법원이 조단을 반환해야 한다고 한 설정 기한이다. 합의는 없었기에 에반은 조단을 애브람스 정신과 박사에게 데려갔다. 조단은 처음으로 마이클과 있던 관계에 대한 자세한 보고를 한다. 미국 법에 의하면 아동의 성적 문제에 관해서는 곧바로 당국에게 보고해야 하기에 형사 수사를 촉발시키게 됐다. 또 이 주장의 결과로 에반은 법원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조단을 전처에게 보낼 필요가 없어졌다. 2003년 12월 12일 애브람스 박사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조단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 지 알아보기 위해 판단해야 하기 위해서는 같이 충분한 시간을 지내봐야 하는 데 그렇지 못했다고 말했다.

마이클은 당시 Dangerous 투어 때문에 해외에 있었으며 미국 경찰은 수색영장을 얻고 마이클 잭슨의 저택인 네버랜드와 마이클이 썼던 여러 거주지들을 대대적으로 수색했으나 성추행을 입증할 의학적 증거도 녹화된 증거도 범죄 혐의를 입증할 그 어떤 것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8월 27일 LA타임즈는 보도했다. 또 경찰은 거주지 급습 도중 전화번호부를 압수하여 30명에 가까운 아이들과 가족들을 심문하였으나 마이클에게 성학대를 당했다는 아이들은 없었다. 근데 이때 경찰들의 수사 방법은 문제가 있었다. 버트 필즈에게 항의했던 부모들의 말을 들어보면 아이들이 부모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을 해도 경찰관들은 오히려 부모에게 아이들이 성추행을 당했다는 명백한 말을 했다는 거짓 심문을 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찰은 어린 아이들에게 "너의 알몸 사진을 가지고 있다"는 식으로 겁먹게 했다. 또 한 경찰관인 페데리코 시카드는 자신 또한 어린 시절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는 거짓말을 하며 아이들을 심문했었다.

1993년 타임즈는 이렇게 보도했다. "LA경찰은 거주지를 급습하여 마이클이 찍은 아이들의 비디오와 사진들을 몰수하였다. LA경찰은 그것들이 전부 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고한다. 스타인 맥컬리 컬킨을 포함하여 잭슨이랑 친한 아이들은 경찰들에게 심문 대상이었고 그들은 관계는 완벽히 순수하다고 증언하였다. 수백, 어쩌면 수천명의 아이들은 그의 집을 방문하였다. 이 혐의들은 딱 한 명의 남자아이의 증언에 초점을 맞춘다."

준 챈들러는 마이클을 향한 고발에 대해 갈등을 빚다 8월말 방금 말한 시카드와 로시벨 페루피노를 만났는데 그 경찰들은 오직 피해자라 주장하는 어린이가 조단 밖에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그러나 그들은 마이클이 전형적인 소아성애자의 윤곽에 해당하기에 그가 추행했다고 믿는다고 말했고 준도 에반과 연합하게 된다. 소아성애자들과 근친상간의 피해자들을 치료해온 미네아폴리스 정신과의사 랄프 언더웨이저는 전형적인 윤곽같은 건 없다,그들은 터무니 없는 실수를 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다른 출처에서는 준이 아이를 마이클과 같이 있게 했다는 점에 아동 방치로 고발당할 까 걱정한 것도 에반과 연합한 원인 중 하나였다고 한다. 준의 변호사 마이클 프리먼은 이 모든 것에 지쳐 사직하며 "이 모든 건 엉망진창으로 난 에반이 불편했다. 난 그는 진실된 사람이 아니고 공정하지 않았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8월말 마이클 측에서도 갈취로 에반과 로스만을 고소하면서 로스만은 변호사에 사임하고 9월 레리 팰드먼이라는 변호사가 새로 고용된다. 그리고 펠드만은 9월 14일경 마이클에게 3천만 달러의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한편, 그 이전에 데이브와 에반의 녹취록이 언론에게 유출돼 에반이 갈취범이라는 여론이 형성됐었는 데 덕분에 에반과 데이브는 서로를 이 유출 문제로 고소했었다.

마이클은 11월 11일 건강 문제로 Dangerous 투어를 중단하며 11월 16일 에반의 변호사 래리 펠드만은 120일 내에 민사 재판이 시작될 수 있도록 움직임을 부여하는 파일을 제기한다. 대개 이 요청은 14세 미만의 아동들에게 주어지는 데 즉, 에반 측은 형사 수사에 앞서 먼저 민사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고소인들에게 법을 유리하게 적용하고 13세 미만의 아동에게는 기억력 문제로 이러한 것을 허용해준다. 11월 23일 마이클 측 변호사는 형사 수사에 앞서 민사 소송이 개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민사 소송을 연기 해달라는 요청을 했으나 판사는 기각했으며 민사 재판이 시작되는 날은 1994년 3월 21일이었다.

12월 10일 마이클은 미국으로 귀국했으며 20일 스트립 검색을 받는다. 이것은 조단의 마이클 잭슨의 생식기에 대한 설명이 일치하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수사 기관에서 사진 촬영했으며 비디오 테이프를 녹화했다. 그래서 일치했는가? 1994년 1월 공신력 있는 로이터 통신과 USA투데이는 당시 관계자의 말이라며 익명을 통해 일치하지 않았다고 보도했었다. 후에 톰 스네던 지방검사는 2005년 재판에서 마이클의 생식기 사진을 언급하며 조단 챈들러가 설명한 것이 일치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당시 톰 스네던 지방검사는 기소 과정에서 드러났던 문제가 있듯 마이클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 말을 곧이 곧대로 수용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당시 정황을 보여줄 것들을 더 자세히 검토해 보자. 에반의 변호사 래리 펠드만은 민사 법원에 사진이 증거로 채택될 수 없도록 요청했었다고 1994년 1월 5일 LA타임즈가 보도했다. 생각해 보자, 생식기 사진이 조단의 진술과 일치한다면 변호사는 당연히 사진을 증거로 채택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래리 펠드만은 검찰이 자신에게 사진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를 댔었다. 하지만 고소인의 주장에 확신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불일치라는 또 다른 징후는 1994년 마이클 잭슨의 어머니 캐서린 잭슨이 로스 엔젤레스 대배심원 앞에서 증언을 하기 위해 출석했는 데 수사관들은 그녀의 아들이 생식기의 모습을 바꿨는 지를 물었다. 1994년 3월 16일 LA타임즈는 13살의 소년이 말한 설명이 생식기와 일치하지 않도록 마이클이 자신의 신체 외모를 변경하는 짓을 했냐고 물은 것이다. 일치했다면 이런 물음 조차 필요없을 것이다. 또한 일반 사람들도 가장 확실히 알 수 있는 부분은 마이클은 사망을 해서 부검을 했는 데 당시 그는 할례 즉, 포경수술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조단은 마이클이 포경을 했다고 한 것이다. 이게 단순히 포경과 비포경의 차이를 몰라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면 조단은 진술에서 마이클과 벌거벗은 몸으로 있었고 다양한 각도에서 마이클의 성기를 정확하게 봤으며 또한 발기한 것을 봤기 때문이라고 했으니까, 또한 만 13세면 한국으로 생각하면 중학교 1~2학년으로 성에 관심이 많을 시기로 굳이 포경수술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그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해 보인다. 왜 그는 포경수술을 추론했을까? 마이클은 1958년에 태어났고 이 시대에는 많은 미국인 남성들이 종교에 상황없이 포경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특히 조단의 아버지 에반이 유태인이기에 에반은 포경을 했을 확률이 매우 높은데 조단의 저 진술이 에반의 통제 하에 있던 시기라는 것을 염두해 두자.

1993년 12월 22일 마이클은 네버랜드에서 공개적인 성명을 발표하는 데 무죄추정의 원칙과 결백을 그리고 생식기 일치를 위한 검사를 매우 굴욕적이라고 심정을 표현했다. 그리고 이 기간 동안 마이클의 변호팀은 다양한 변호사들의 의견 충돌로 불화가 생겨나갔고 필즈는 마이클이 지적 수준에서 간신히 생활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실제로 마이클은 이 기간 동안 엄청난 스트레스로 거의 먹지 못 하여 4kg이 빠졌으며 진통제 중독 치료를 했었고, 이때 리사 마리 프레슬리가 그의 첫번 째 아내가 되는 계기가 된다. 또 리사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함께 이미지도 중요하지만 사건의 여파로 불면증을 심하게 앓고 있는 그에게 잠을 잘 자는 것이 중요하다며 합의를 권유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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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월 10일 래리 펠드만은 마이클 잭슨의 재무 기록을 알 수 있게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또한 마이클 잭슨의 피부과 주치의 였던 아놀드 클레인의 저택도 수색 당하는 등 마이클과 관련된 모든 사생활 파일이 공개될 수 있게 됐다. 마이클의 변호팀은 몇 가지 상황을 걱정했다. 첫번 째 재판에 가기에는 마이클이 정서적으로 너무 허약한 처지에 있다는 것이다. 두번 째 1993년은 인종 문제의 불씨가 남아있을 때로 중상류층 백인이 많은 보수적인 산타바버라에서 증거의 소명 정도가 약한 민사 재판을 한다는 것은 도박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세번 째 형사 수사가 완료되기 이전에 이미 민사소송은 시작됐고 앞에서 썼듯 민사재판이 형사재판보다 먼저 시작하게 생겼는 데 즉 마이클의 변호팀은 민사와 형사 2개를 동시에 방어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민사 재판이 먼저 시작하면 언론을 통해 온갖 것들이 보도될 것이고 그것은 형사재판의 배심원들에게 편견을 심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것 때문에 피고가 공정한 재판을 받기 위해 권리가 침해당하지 않도록 형사 재판에 앞서 민사 재판이 허용되는 것을 막는 사례가 많이 있었다. 즉 형사 사건이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피고는 민사 소송을 보류할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에 쓴 이유로 결국 민사 재판은 미뤄지지 않았다. 또 이 마이클 잭슨 사건은 캘리포니아 법에도 영향을 끼쳐 성범죄 사건의 고소인은 민사 소송을 당장 취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이유로 2003년 마이클의 고소인 아르비조는 챈들러가 했던 1993년 전략을 쓸 수 없었다.

또한 당시 타블로이드 언론들은 온갖 루머를 퍼뜨렸었다. 존 브랑카는 12월 10일 마이클이 귀국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디어 보도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얼마나 적대적이었는 지 몰랐다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미국으로 귀국하니 상황이 달랐던 것.

결국 마이클은 1994년 1월 25일 15,331,250 달러를 조단에게,변호인과 에반에게도 5백만 달러를 지급하기로 에반과 합의한다. 이 합의문은 유출됐고 마이클은 그러나 합의문에서 소년에 대한 불법적 행위를 인정하지 않았으며 조단은 형사수사에서 언제나 마이클에 대해 증언할 수 있었다. 로스엔젤레스 지방검사 Gil Garcetti은 합의 이후 "마이클 잭슨의 형사 수사는 진행 중이며 민사 소송 합의에 영향을 받지않습니다." 라고 말하며 래리 펠드만도 피해자의 증언이 언제든 허용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형사 사건에서 증언하지 않았다. 또 에반은 애초에 원하던 돈을 받았기에 수사 당국과 협력하기 꺼려했을 것이다. 민사소송 합의 이후에도 형사 수사는 계속됐고 4월 2일 로스엔젤레스 대배심은 잭슨을 기소하지 않고 해산하며 수사관들은 조단의 증언을 받기 위해 설득하고 있다고 했다. 9월 21일 산타바버라 검찰청은 공식 성명을 발표하는 데 조단이 증언을 거부하여 따라서 마이클에게 혐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하고 지난 18개월 간의 조사에서 마이클의 범죄 혐의를 입증할 증거가 없음을 인정했다.

합의 이후 마이클과 친분 관계가 있던 taraborrelli는 합의에 대해 실망적이라며 대중들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지 뻔하다고 물었는 데 마이클은 화를 내며 이것은 나의 선택 그리고 내 인생이라고 그 지옥같은 상황에서 벗어나길 바랐다고 한다. (합의 직후 실시된 여론조사에 의하면 미국인의 59%는 합의가 혐의를 짙게 할 수 있으며 77%는 고소인이 아들의 복지가 아닌 돈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다.)

시간이 흐른 후 2005년 아르비조와의 재판에서 준 챈들러는 출석해서 증언했는데 지난 11년 동안 조단과 대화를 하지 않았고 1993년 당시 자신은 성추행을 목격하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또 검찰은 조단이 재판에 출석해 마이클에 대해 증언하길 요구했으나 조단은 거부하고 잠시 해외로 출국했다고 한다. 마이클의 변호사 Thomas Mesereau는 하버드 대학교에서의 강의에서 이 재판을 언급하며 조단이 개인적으로 아는 지인들에게 자신이 성추행을 당하지 않았다고 말했다고 했고 그들을 안다고 말했다.

2005년 7월 6일에는 에반이 조단을 폭행하고 질식을 시도했다. 조단은 법원에 문제를 제기했고 판사는 인정, 2005년 8월 5일 아버지를 상대로 한 임시 접근 금지 명령을 받았다. 2009년 6월 25일 마이클 잭슨은 사망하고 4개월 만인 11월 5일 에반 챈들러는 권총으로 자신을 쏴 자살했다. 유서를 남기지 않았으며 에반은 질병에 시달리며 양극성 장애를 앓았다고 한다.

1994년에는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결혼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놀랐는 데 미국의 전설적인 가수인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이 마이클과 결혼하는 것이 화제를 모았다. 그러나, 세간에서는 아동 성추행 혐의로 타격을 입은 자신의 이미지를 회복하기 위해 리사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부정적 눈초리가 많았다. 이에 대해 리사는 나는 정말로 마이클을 사랑했었으며 우리는 섹스도 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지 못했다고 회고했으며 리사와 마이클은 사건이 터지기 전인 1993년 5월에 같이 영화를 봤다고 ...


[1] 한국어 위키백과나 나무위키 이전 서술에는 조단이 Sodium Amytal라는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마취제를 투여받고 거짓 기억이 심어져 성추행을 진술했다는 언급이 있으나, 이는 7월 16일 조단의 최초 진술 이후와 뒤에 있는 Pellicano의 8월 4일 상황에 대한 증언을 보면 모순돼 신뢰성이 떨어진다. 그러나 챈들러 측의 마크 토비너에서 치과 치료를 위해 마취제를 사용했음을 인정했다. 마크 토비너는 치과 치료에 모르핀 등을 사용하는 이상한 의료 방법 때문에 논란이 있었는데, 조단이 이를 빼기 위해 마취를 사용했다는 것은 드문 일이기에 가능성은 약간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