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3:13:42

마장동 축산물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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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장축산물시장
馬場畜産物市場 | Majang Meat Mark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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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9742><colcolor=#fff> 개장 1958년 마장동 우시장
1961년 제1시립도축장
종류 축산물 전문시장
소재지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장동 일원

1. 개요2. 상세3. 대중매체 관련4. 도시전설5. 교통편
5.1. 지하철5.2. 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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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장동에 있는 축산물 전문시장. 영업 시간은 오전 4시 ~ 오후 7시까지이다. 과거 가락동에 도축장이 있던 시절에는 영업 시간이 오전 4시~ 오후 6~7시정도였으나 도축장이 음성으로 내려가고 지육 경매와 운송에 대한 시간대가 바뀌면서 출근시간이 앞당겨지고 고기 익는 마을이라는 정육 식당 개념이 생겨나면서 과거보다 늦은 시간까지 손님들이 오가는것으로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2. 상세

이름 그대로 육류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시장. 1961년이 시장 형성의 기원으로 알려져 있으며, 통계에 의하면 서울시내 연 200만 명이 이용하고 서울시내 전체 육류 유통의 6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육류만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대형 시장이다보니 판매 뿐 아니라 여기서 발골 등의 정육 작업까지 한다. 방문해보면 지역 전체가 정육점들이 가득히 모인 진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 뿐만 아니라 국내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정육점 밀집 지역이다.

예전에는 상인들에게나 일반인들에게나 , 돼지 잡는 직업은 천하다(백정)는 편견이 박혀 있어서 안에서 사진을 찍지 못했다. 지금의 마장동에는 도축시설이 없지만, 과거에는 존재했기 때문에 그 인식이 이어져오는 것도 있고 정육점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정육업자도 도축업자와 마찬가지로 취급이 좋은 편은 아니다. 개방시간이 따로 존재하는 이유는 이런 문제로 일반인 출입을 통제한 이유도 있다.

과거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사람 얼굴은 안 나오게 찍어야 했다. 실제로 예전 사진들을 보면 상인 얼굴이 제대로 찍힌 사진은 거의 없다. 이 때문에 이름 있는 시장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사례는 많지 않다. 일례로 2011년 2월 KBS 명받았습니다 출연자들이 당시 구제역 대란으로 침체된 고기소비의 장려를 위해 이곳에서 일일 봉사체험을 하면서 지상파 TV에 제대로 소개된 적이 있는데, 여기서는 시장 상인이 직접 출연해 고기를 다듬는 발골 작업 시범도 상세히 보여주고, 출연자들은 정육된 고기의 진공 포장 작업과 배달을 도와주고 발골 작업 시범을 보며 정형되지 않은 부위를 살짝 떼서 신선한 생고기로 맛있게 먹기도 한다. 그러나 잘 보면 소개하고 있는 사장님만 얼굴이 제대로 나오고, 실제 발골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정형 기술자는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파일:식객마장동.jpg
허영만의 만화 식객에서도 사실적으로 인물을 묘사한 다른 에피소드와는 달리 마장동 축산물시장 에피소드는 조연급 인물을 제외한 엑스트라는 같은 작가의 날아라 슈퍼보드 등장인물로 그려놓았다. 작중 김진수의 취재 행적은 허영만 작가 본인의 일화를 각색한 것이 많은데, 위 초상권 시비도 실제 작가가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 취재를 하다가 오해를 산 정형 기술자들과 실랑이를 벌인 일화를 각색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된 2010년대 후반부터 마장동 축산물시장을 다루는 직업관련 프로그램 등에서 대놓고 정형 기술자들이 신분을 밝히고 나오는 경우도 많으며, 유튜브에서도 많은 영상에 얼굴을 직접 노출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도축업자 등 기술자의 발골 동영상은 높은 조회수와 국내 및 해외에서의 여러 극찬댓글도 볼 수 있다. 위의 다큐3일만 봐도 인터뷰에 잘 응하는것을 볼수있다.

당연히 고기를 전문으로 팔며 정형도 즉석에서 행하다 보니까 온갖 종류의 고기를 다 살 수 있으며, 한 마리당 얼마 나오지도 않는 수준의 '희귀 부위'도 운 좋고 돈만 있다면 구할 수 있다. 그리고 고기 시장답게 주변에 각종 육류 취급 식당이 많다. 수산물 시장의 초장집처럼 고기는 정육점서 사 오는 거고, 숯불과 석쇠, 쌈 채소와 소주 등 술과 밥을 파는, 고기를 사자마자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노량진수산시장 초장집이 그러하듯이, 먹는 집 가격이 좀 비싼 편이라서 많이 먹기엔 부담이 좀 된다. 분위기 좋고, 맛있고 신선한 고기, 마트나 정육점에서 팔지 못하는 생 내장이나 특수 부위를 먹을 수 있다는 것 말고는 가격적 장점은 없다.

본디 다른 전통시장과 다를 바 없는 구조였으나 2009년 7월에 성동구의 '낙후 시설 현대화 작업' 계획을 통해 재단장을 해서 현대적인 시설과 구조로 재탄생해서 이용이 용이해졌다.

당연하지만 육류 관련 문제가 터지면 그 여파를 직격으로 얻어맞는 곳이다. 2011년 구제역 대란이 발생하자 이곳은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구 측에서 상당히 신경쓰는 장소 중 하나라서 이런 일이 터질 때마다 열심히 육류 소비 촉진 홍보를 해준다. 또 시장 내부 길에는 오토바이가 타 시장보다 확연하게 많이 다닌다.

시장 북문 인근에는 '먹자골목'이 자리잡아 20여 곳의 식당이 운영 중이다. 무허가로 운영되고 있어서 지역 주민들의 민원이 많다. 소액의 범칙금만 내고 장사를 하는데다가, 위생과 안전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구청에서는 '서울특별시 소유 부지가 많다'는 이유로 정리에 난색을 표하는데, 이를 두고도 주민들의 불만이 많다. 2022년 3월 19일, 8개소가 전소되어, 1개소가 일부 피해를 본 화재사고가 발생했다. #

3. 대중매체 관련

허영만식객에 아래 도시전설과 함께 소개되어 한국에서 가장 무서운 시장(?)으로도 유명해졌다. 종적을 감춘 전설적인 새김꾼(전문적인 발골기술자)의 칼에 얽힌 비밀을 파헤치려는 성찬이 칼을 노리는 조폭들에게 구타당할 때, 마침 현역 기술자가 등장하여 마장동 시장의 악명(?)이 소개된다. 기술자가 칼을 갈면서 "너희 깡패들이 다른 데는 다 마음대로 하는데 마장동 도축 시장에는 들어오지 못하잖아."라는 말이 압권. 조폭들은 지지 않고 칼을 꺼내들지만, 기술자 역시 돼지 목 따는 소리 운운하면서 목에 동맥이 잘 보인다고 하자 결국 조폭들은 꼬리를 내리고 튀어버린다. #

2012년 달샤벳이 여기서 '있기없기'의 뮤비 중 '없기' 파트를 찍으려고 했으나(#), 결국 장소를 변경해서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촬영했다. 상기했듯 당시에는 얼굴이 알려지는 걸 원치 않은 장소였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세월의 변화를 반영하듯 2016년에는 빅뱅에라 모르겠다 뮤비 촬영지들 중 이곳이 나오기도 했다.

웹툰 부활남 69화에서 석환을 잡으러 온 패거리[1] 중 하나가 마장동 백정파다. 이름답게 앞치마 입은 사람도 있고 다른 패거리에 비하면 칼이 꽤 크다.

레이먼 킴이 자신의 요리 영상을 찍는 유튜브 촬영 스튜디오가 마장동 시장 입구에 있다. 레이먼 킴 본인이 유튜브에서 직접 언급했으며, 레이먼 킴의 유튜브에 게스트로 출연한 박문성도 스튜디오로 가기 위해 마장동 시장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웹툰 죽지 않으려면의 빌런 집단인 해광을 견제하는 세력인 강북 4연의 보스들이 만나는 곳이 바로 여기다. 아무래도 도시전설 부분을 가져온 듯.

수리남에서 전요환이 여기서 어렸을때 잠깐 일했다고 나온다

4. 도시전설

1960년대부터 설립되어 2020년대 기준으로 거의 60년 동안을 유지되어 오는 도중, 상술되었다시피 식객에서 소개되면서 무서운 시장으로 유명해졌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1982년에 수십 년간 정형칼[2]을 잡고 고기에서 뼈를 발라 온 이곳 축산상인들에게 조직폭력배들이 멋모르고 회칼 나부랭이 가져와서 자릿세 보호비 운운하며 깝죽거리다가, "자네들, 혹시 돼지 멱 따는 소리 들어 봤는가?"라는 말을 들으며 역으로 칼에 배를 따여 죽었다는 것이다.

당연하지만 위 이야기는 허구다. 도축과 발골은 분리된 작업이고, 현재의 마장동은 도축장에서 실어온 고기를 해체하는 곳이지 살아 있는 가축을 죽이는 도축장이 아니다. 이 기사에서도 진위여부를 판단하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

비관련자는 헷갈리기 쉽지만, 도축과 발골 정형은 엄연히 다르다. 도축은 말그대로 살아있는 동물을 잡아서 1차적으로 분리하는 것이고, 그 후 '두당', '대동'등으로 칭해지는 발골 정형 기술자들이 전달받은 고기를 판매할 수 있게 부위별로 발라내고 뼈를 때내는등 가공한다. 이렇다보니 세세하게 따지자면 서로 작업하는 방식도 장비도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직접 도축을 하지 않는 발골 전문가라고 해도, 뼈와 살을 분리해 내는 굉장히 위험한 작업이기 때문에 마장동 축산상인들이 칼을 잘 다룬다. 게다가 정육 업종에 종사하며 오랫동안 일한 사람들은 의사 못지않은 군기와 정밀함도 갖추고 있다. 칼을 다루는 직업 특성상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조직폭력배들이 감히 이 동네에서 깐죽거리지 못한다. 현대의 도축은 편의상, 그리고 인도적 이유와 고기의 질[3] 등의 이유로 전기충격기나 볼트 건 등으로 짐승을 먼저 기절시킨 상태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칼을 직접 다루는 솜씨는 원래 의미의 도축업자보다 분할 정형사가 훨씬 앞선다.[4] 만약 조폭이 이 동네에서 행패를 부린다면 득달같이 튀어나올 사람들은 그야말로 분할 정형의 전문가들인데, 이들이 작업에 쓰는 정형 칼만 해도 날 길이만 30 cm를 넘는 대형 칼이고, 당연하지만 수시로 소와 돼지의 뼈를 긁고 힘줄을 떼는 용도로 사용하는 물건이므로 잭나이프나 사시미칼 따위보다 훨씬 튼튼하고 스치기만해도 살점이 떨어질정도로 날카롭다.[5] 거기에 항상 칼의 날카로움을 유지하고자 전문 연마사에게 의뢰해 2~3일마다 꾸준히 칼을 갈 정도로 철저히 관리하기 때문에# 절삭력과 견고함이라는 면에서 전근대 전투용 도검보다도 살상력이 강력한 도검을 주로 사용하는 직업은 발골정형업 말고는 따로 없다.

게다가 분할 정형 기술자들은 이런 흉악한 물건을 가지고 최소 수십에서 수백 kg짜리 고깃덩이를 다루는 일을 수십 년간 해 온 대가들이라 힘도 매우 세며, 근육과 뼈와 혈관과 장기에 대한 지식도 많다. 사람보다 더 두껍고 큰 짐승의 살도 빠르고 쉽게 썰어제끼는 사람들인데, 당연히 마음만 먹으면 사람(조폭) 하나쯤은 고깃덩어리로 만들어 버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물론 정형사들의 업무가 사람과 칼 들고 싸우는 기술을 늘려주는 건 아니지만, 그건 깡패들도 마찬가지다. 근대 시대 이전의 군인들처럼 검술을 배워 매일 휘두른것도 아니고, 깡패 싸움이라 해 봐야 대부분 막싸움에 식칼[6]이 동원되는 정도라 칼싸움이 일어나도 마장동 기술자들이 밀릴 이유는 없다. 마장동이야말로 이런 기술자들만 모여 있는 총집합소라고 할 수 있는데다, 한국에서 도축업자와 발골 기술자가 받는 사회적 차별 또한 과거만큼은 아니라지만 아직도 은연중에 남아 있고[7] 이들은 감옥을 갔다 오든지 말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어차피 원래 종사하던 도축업·발골업밖에 없기 때문에[8] 조폭들이 건드려서 만에 하나 이길 수 있다고 쳐도 조폭 쪽이 훨씬 손해가 크다. 차라리 확신범이나 복수귀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마장동 시장 전체(혹은 정형/발골업에 종사하는 개인)을 망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라면 진짜로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덤벼들 가능성이 있겠으나[9], 개개인의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불법적인 행위를 하는 범죄자들의 모임인 조폭은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건질 수 있는 이익은 전무한 채 여러 측면에서 손해만 잔득 보고 손을 털어야 할 것이 뻔한지라 처음부터 안 건드리는 것이 낫다.

결과적으로 법과 치안이 강화된 지금 시대에서는 상술된 '조폭들과 맞짱떠서 몰살' 같은 일화가 실현되기는 거의 불가능하지만, 치안이 다소 불안정했던 1960~70년대 당시 조폭들이 마장동을 꺼릴 만한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비록 조폭을 몰살시켰다까지는 근거가 없는 얘기지만, 조폭이 여러 시장에서 대놓고 깽판을 치거나 자릿세를 걷던 그 당시 시절에도 마장동 축산물시장에서는 대대적으로 활동한 기록은 없다. 진상과 민폐 수준이 조폭에 맞먹는 과격 단체들도 이곳에선 감히 설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유 역시 자기들이 원하는 건 본전도 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격 채식주의자들도 같은 이유로 이 곳에서는 시위를 하지 않았으나, 2021년 3월 드디어 비건단체 DxE가 시위를 했다는 트윗을 올렸다. 그러나 폐점 준비하느라 바쁜 시간대에 시위하러 왔다가 조용히 밥만 먹고 돌아갔으며[10], 그나마 시위한답시고 폐장 직전의 용두역 홈플러스 정육코너에서 피켓만 들고 서있다가 그냥 돌아간거라 대중들에겐 강약약강이냐면서 더 큰 조롱을 받았다.[11] 심지어 시위 당시에도 주변에서 아예 비겁한 놈들이라면서 대놓고 비웃었다고 한다. 사실 대놓고 과격시위를 했다면 피바람이 부는게 아니라 경찰부터 불러 영업방해로 넘기고 대중들에게 사회의 해악으로 확실하게 찍힌다.

5. 교통편

5.1. 지하철

파일:Seoulmetro5_icon.svg 수도권 전철 5호선 마장역파일:Seoulmetro2_icon.svg 서울 지하철 2호선 용두역에서 편하게 접근할 수 있다. 먹자골목으로 가기에는 용두역이 조금 더 용이한 편이다. 추후 동북선이 개통되면 시장 바로 앞에 102정거장이 들어서게 된다.

5.2. 버스

||<-2><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0000,#dddddd><table bgcolor=#ffffff,#1f2023> 마장축산물시장(04119·04120) ||
간선
지선
마을
||<-2><table width=100%><table bordercolor=#000000,#dddddd><table bgcolor=#ffffff,#1f2023> 마장동현대아파트(04836) ||
마을

[1] 대만 구룡회 인천지부, 성규파 행동대, 정릉동 동우파.[2] 여기서는 고기를 베고 찌르는 긴 칼을 일컬음. 영화 공공의 적에서 용만(유해진 분)이 경찰서에 잡혀 와서 이것을 다루는 시범을 보인다.[3] 살아 있는 가축을 도축했다가 가축이 고통과 공포로 인해 날뛰면 위험한 것은 물론, 들어가면 안 되는 부위에 칼이 들어가면 고기의 질이 심하게 떨어진다.[4] 그렇다고 도축업자의 칼 솜씨가 정형사보다 못하다고 하기에도 어렵다. 식객에서도 소개되지만 돼지를 전기충격으로 기절시켜도 경동맥을 정확하게 끊어내지 못하면 깨어난 돼지가 몸부림치면서 육질이 상하는 것은 물론, 피가 제대로 빠지지 않고 살과 뼈 사이에 다 고여버리기 때문이다. 돼지든 사람이든 목줄을 단숨에 끊어버리는 쪽이라면 오히려 도축업자가 더 뛰어날 수 있다.[5] 정형업자들의 회고록이나 썰 등을 보면 초짜시절에 너무 힘들어서 팔에 힘이 살짝 빠지거나 졸았을때 칼날이 팔이나 허벅지를 슬쩍 스치기만 했는데 뜨끔하더니 피가 콸콸 흘러넘치더라는 썰이 항상 등장할 정도다.[6] 그마저도 길이가 짧아서, 좁은 공간이 아니라면 패싸움에도 쇠파이프나 각목이 더 효율적이다.[7]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소고기가 메인 주재로 나오는 식객 3권(부제: 소고기 전쟁) 13화로, '무사'란 별칭을 가진 정형 공장장 조경기의 실력을 시기한 후배 정형기술사인 강상기가 조경기 딸의 상견례 당시 사돈댁이 될 사람에게 '조경기는 가게의 지배인이 아닌 정형 공장장'이라는 식으로 은글슬쩍 폭로하는 바람에 꼴통 성향 가득한 예비 시아버지(조경기의 딸이 사귀고 있는 남성의 아빠)가 분노하면서 "정형기술자는 직업은 옛날에 백정이라 불렸으며, 백정은 과거엔 천민 중의 천민이었고,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지만 어렵게 사법고시 통과한 검사인 자기 아들의 색시로 맞을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한 다음에 자리를 박차고 떠나버렸다. 이외에도 조경기는 맨 처음 성찬이 도움을 청했을 때 거절하면서 했던 말 가운데 '우리 백정 나부랭이'라는 자조 섞인 표현이 있었으며, 자신의 원수인 강상기가 대회에 참여한다는 말을 듣자 본인도 대회 참가를 결심한 이후 딸의 혼삿길이 막힐 가능성을 방지하는 차원에서(즉, 본인이 정형기술자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지난번처럼 딸과 결혼할 수도 있는 남자의 부모가 자신을 백정 취급하면서 결혼을 반대할 수 있으므로 그걸 막기 위해) 머리에 수건을 착용하여 얼굴을 가렸다. 정형기술자를 보는 삐뚤어진 시선과 차별, 그런 사람들이 내비치는 태도에 정형기술자들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단적으로 드러나는 대목. 그나마 조경기는 원수 강상기와의 정형 대결에서 승리를 거두고, 자신의 딸도 정형기술자라는 직업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부모를 둔 남성과 결혼을 약속하며 해피엔딩을 맞이했다.[8] 거기다 도축업과 발골업은 그 자체로 위험하고 힘든 일이기 때문에 새로 유입되거나 될 가능성이 있는 자원의 수도 적은데다 개인의 경험이 매우 중요한 만큼 어지간해서는 전과자들을 내치기가 쉽지 않다.[9] 물론 이런 경우에도 진짜로 마장동 축산시장 사람들과 물리적인 대결을 할 가능성은 거의 없고, 소송 승리와 같은 법적 다툼에서의 승리나 재개발과 같은 경제적 측면을 내세운 수단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게 리스크가 덜하면서도 잘 되면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10] 이때 다른 데도 아닌 고기구이 집에서 식사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얘네는 비건, 즉 완전 채식을 추구하는 인물들이다. 그런 인간들이 고기구이 집에서 식사하는 이중잣대 스러운 모습을 보였으니 사람들에게 더욱더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11] 물론, 마장동에서 일하는 도축업자 수십명이 칼 하나씩 들고 모여서 "장사하는데 뭐하는 짓이냐?" 라고 항의를 했어도 전국적으로 비난을 감당하지는 못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