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7 21:32:18

마커스 리노

마커스 리노
Marcus Reno
파일:1000139084.jpg
본명 마커스 앨버트 리노
Marcus Albert Reno
출생 1834년 11월 15일
미국 일리노이주 캐럴턴
사망 1889년 3월 30일 (향년 54세)
미국 워싱턴 D.C.
복무 미합중국 육군
최종 계급 미국 육군 대령
복무 기간 1857~1880
학력 미국육군사관학교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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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군인.

2. 생애

일리노이주 캐럴턴 출신으로 13세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1857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기병 소위로 임관했다. 제1용기병연대에서 복무했고 남북전쟁당시 앤티텀 전투에서 전투를 치렀으며 이후로도 여러 전역에서 남군과 전투를 치르며 전시계급 준장까지 올라갔다.

전후 원 계급 대위로 환원되었고 1868년 소령으로 진급했다. 1871년 제7기병연대에 전입했으며 대대장으로 1876년 리틀 빅혼 전투에 참가했다. 당시 연대장 조지 암스트롱 커스터는 병력을 3개로 나눴고 제대당 3개 중대로 편성했다. 각 제대의 지휘관은 커스터 본인, 리노, 프레더릭 벤틴 대위가 맡았다. 당시 전선 시찰을 나왔던 넬슨 마일스는 무모한 작전이라 판단하고 공격을 멈출 것을 제안했지만 늦은 상황이였다.

리노의 제대가 먼저 남쪽에서 진격했고 웅크린 황소의 마을을 발견했다. 자신에게 배정된 원주민 정찰병들을 파견한 뒤 그제서야 원주민 마을의 규모를 파악한 리노는 함정의 가능성을 떠올렸고 커스터가 도착할 때까지 위치를 사수하기 위해 산병 대형을 갖추었다. 이는 신중한 판단이었지만 동시에 이로 인해 그의 부대의 기동력과 화력은 감소하였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네시라파트는 자신의 죽음을 직감한 듯 태양을 향해 '나는 오늘 밤 네가 언덕 너머로 지는 것을 보지 못할 것이다'라는 뜻의 신호를 보냈고 리노의 부대는 마을에 총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원주민 전사들은 처음에는 방심한 상태였지만 여자와 아이들을 가리지 않고 총을 쏘며 맹렬하게 공격하는 기병들을 보자 분노에 불타 용감하게 싸우기 시작했고 3개 중대 190명 남짓(원주민 정찰병 15명 포함)한 리노의 부대는 곧 취약한 좌측면을 노리고 집결한 500명 이상의 전사들의 반격에 노출되었다. 리노는 네시라파트를 불러 조언을 구하려고 했으나 그 순간 날아온 총알이 네시라파트의 머리에 명중하였고 그의 피를 뒤집어쓰고 공포에 질린 리노는 도주를 지시했고 부대도 그를 따라 무질서하게 강가를 향해 패주하기 시작했다.

이 때 커스터는 리노의 부대가 공격 받았음을 알고 증원에 나서려 했으나 지형을 몰라서 도하할 곳을 찾지 못한 상태였다. 커스터가 겨우 강을 건넜을 때는 이미 리노의 부대는 도하해서 꽁무니를 뺀 상태였고 그가 기대했던 벤틴 대위의 병력은 끝내 오지 않았다. 결국 커스터의 본대가 전투 지역에 도착했으나 원주민 전사들의 매복으로 지휘관 커스터를 포함한 부대원 대부분이 괴멸했다. 

후퇴하던 리노 소령 제대는 원주민들이 커스터의 본대와 싸우러 후퇴하는 바람에 숨을 돌렸다. 여기에 드디어 벤틴 대위의 예비대와 그가 호송하던 병참 부대가 도착하여 합류했는데 이들은 커스터를 지원하기 위해 다시 북쪽으로 이동하다가 돌아오는 원주민 전사들과 마주쳐 약 350기의 병력으로 절벽 꼭대기에서 방어전을 했다.

하루 동안 포위당했던 미군 기병대는 전투가 길어지면 다른 백인들이 나타날 것을 염려한 웅크린 황소가 다른 전사들을 설득한 덕분에 생존자들이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이틀간의 전투로 미 기병대에는 커스터 제대 210명, 리노 제대 휘하에서 58명의 전사자와 52명의 부상자가 발생했으나 웅크린 황소의 회고로는 원주민 측은 27명의 전사자와 그보다 많은 부상자를 냈다.

전투 후 다코타 준주에 있는 포트 애버크롬비에 배치되었다. 하지만 전투 결과로 인해 많은 비판을 들어야했다. 대령까지 진급했으나 1880년 제대했고 1889년 구강암으로 인해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