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더스크롤 시리즈의 책 |
숫자 | A | B | C | D | E | F | G | H | I | J | K | L | M | N | O | P | Q | R | S | T | U | V | W | X | Y | Z (개별 문서) |
1. 개요
A Game at Dinner엘더스크롤 시리즈에 나오는 책. 엘더스크롤 3: 모로윈드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2. 본문
원문
만찬의 유희
신원미상의 첩보원 지음
출판자로부터의 서문:
이 편지의 출판에 이르게된 경위는 편지 내용과 마찬가지로 수수께끼가 많고 재미있다. 수개월전, 더네인(Dhaunayne)이라고 하는 수수께끼의 인물앞으로 발송된 편지의 복사본이, 바덴펠 애쉬랜드에서 유출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이윽고 일부 복사본이 아말렉시아[1] 교외의 흐랄루 헬세스 왕자의 궁전까지 전해졌다. 저자는 왕자가 이 편지를 읽고 자신에 대한 악의에 찬 중상에 격노했다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실제 왕자의 반응은 완전히 반대였다. 왕자와 그의 모친인 바렌지아 여왕은 이 편지의 복사본을 개인적으로 장정본으로 만들게 하여, 그것을 모로윈드를 통해 각 도서관과 출판사에 보냈다.
기록해야 할 사항으로 왕자와 여왕은 이 편지가 완전한 창작인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묘사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공표하지 않았다. 드레스 (Dres) 가문은 이 편지가 창작이라며 비난하고 있으며, 또한 더네인이라는 인물과 드레스 가문 사이에는, 이 편지에서 제기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관계도 없다고 한다. 이 편지의 해석은 독자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 출판자 : 네리스 간
어둠의 군주 더네인 님,
귀하는 어젯밤의 사건과 저 드레스 가문의 주장에 대해 상세히 보고하라는 차기 지령을 내리셨습니다. 헬세스 왕자의 궁정내에 있는 정보제공자로서 지금까지의 제가 한 일이 기대에 부응하였다면 좋겠지만, 지금까지의 보고들 중에서 수차례 말씀드렸다시피, 헬세스 왕자라는 인물은 몰라그 발조차 맨발로 도망칠 정도로 뻔뻔한 자 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1년 전부터 친밀한 조언담당의 한 사람으로서 왕자의 주변에 침투해 있습니다. 그가 모로윈드에 왔을 무렵엔 우정에 굶주려 있었으며, 저와 다른 몇명의 조언자를 적극적으로 주위에 두고자 했습니다. 지금도 그는 우리를 변함없이 신뢰하고 있습니다. 모로윈드에 있어 왕자의 정치적 존재감이 희박해짐에 따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악한 귀하께서 참고하시길, 다시 한 번 기본적인 사실을 써두자면 왕자는 전 모로윈드의 여왕이며 하이 락, 웨이레스트 왕국의 여왕이던 때도 있는 바렌지아의 장남입니다. 바렌지아의 남편이며, 헬세스 왕자의 계부였던 국왕 에드와이어의 사후, 에드와이어의 딸 엘리사나 공주와 헬세스 왕자 사이에는 권력 다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이 다툼의 자세한 경과를 알기 어려우나, 최종적으로 엘리사나가 이겨 웨이레스트의 여왕이 되고 헬세스와 바렌지아를 추방한 것은 확실합니다. 바렌지아의 다른 자식인 모르지아는 이미 결혼하여 서머셋 아일즈의 퍼스트홀드 왕국의 여왕이 되어 웨이레스트 왕실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바렌지아와 헬세스가 대륙을 횡단하여 모로윈드로 돌아온 것은 바로 작년의 일입니다. 바렌지아의 삼촌이며 바렌지아가 40여전 전에 퇴위한 후 왕위를 계승한 현 국왕 흐랄루 아틴 레탄(Hlaalu Athyn Llethan)은 극진히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바렌지아는 왕위를 되찾고자 하는 생각따위는 없이, 단지 그녀 가족의 저택에서 은거생활을 보내고싶은 것 뿐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헬세스쪽은 아시다시피, 왕궁에서의 직책에 매달려서, 많은 사람들은 웨이레스트의 왕위를 잃었던 그가 레탄의 사후에 모로윈드의 왕위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전 지금까지, 사악한 귀하께 왕자의 행동이나 만났던 인물, 기획, 조언담당자들의 이름이나 성격 등을 보고해왔습니다. 몇 차례 전해드렸듯이 저는 헬세스의 주변에 저 이외에도 첩보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전 어느 던머 상담역이 트라이뷰널 템플의 대주교 톨러 사요니(Tholer Saryoni) 와 함께 행동하던 인물과 닮았다고 전해드렸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다른 노르드의 젊은 여성은, 발모라에 있는 제국 수도의 요새를 방문했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경우 헬세스측이 각처에 보내고 있는 첩보원일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실제론 알 수 없습니다. 왕자가 웨이레스트 왕궁에 있을 무렵부터 시종을 맡고 있는 브레튼인 버게스 (Burgess) 의 충성심까지도 의심스럽게 생각되기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왕자와 같이 망상광인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듭니다.
이상, 어젯밤 사건의 배경이었습니다.
어제 아침에 왕자와의 만찬회에 오라는 간단한 초대장이 제 앞으로 도착했습니다. 꺼림직했던 저는 드레스 가문에 충실하고 유능한 부하를 왕궁에 투입시켜 뭔가 이상한 것은 없는지 조사시켰습니다. 만찬의 조금전에 그가 돌아와서 왕궁에서 본 것을 보고했습니다.
너덜너덜한 옷을 걸친 남자가 성에 들어오는 걸 허가받아, 당분간 성내에서 머물고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남자가 돌아갈 때 부하는 망토에 가려진 얼굴을 엿보았습니다만... 그는 악명높은 연금술사로 이국의 독약 밀매를 담당한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부하는 관찰력이 뛰어나 그자가 성에 들어갈 때 위크위트, 비터그린, 그외에도 익숙하지 않는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자가 성을 나왔을 때에는 그러한 냄새가 없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부하가 내린 결론은 저와 같았습니다. 왕자가 독약을 조합하기 위한 소재를 그로부터 조달했던 겁니다. 비터그린 만으로도 날것을 입에 대면 죽게 됩니다. 게다가 다른 소재를 더한다는 것은 뭔가 좀 더 교묘한 계획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악한 귀하라면 어렵지않게 상상이 되실거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모든 사태에 대해 각오하고 그날 밤의 만찬회로 향했습니다.
만찬회에는 헬세스 왕자의 상담역 전원이 출석하였고 그들이 미묘하게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는 처음 여기 있는 전원이 첩보원이고 왕자와 수수께끼의 연금술사 사이의 밀회를 알고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되었습니다. 즉, 몇몇은 연금술사가 올 것을 알고 있었으며, 다른 몇몇은 만찬회의 목적 그 자체가 무엇인지 불안히 여겼고,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단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다른 상담역들의 긴장된 공기에 이끌려 긴장하고 있을 뿐일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왕자는 좋은 기분으로 그 자리 전원의 긴장을 풀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들은 9시에 식당으로 안내되었고 그곳에는 미리 요리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요리의 호화로움이란! 벌꿀이 첨가된 고라플로 시작해 향기로운 스튜나 갖가지 육즙의 소스로 맛을 낸 구운고기, 여러가지 복잡한 방법으로 조리되어 호화롭게 담겨진 생선과 닭고기. 수정이나 황금용기에 들어있는 와인, 플린, 셰인, 마츠등이 각각의 자리에 놓여있어 요리에 맞추어 즐길 수 있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요리나 술의 향기는 매우 훌륭한 것이었으나, 그러한 향신료나 다른 냄새가 복잡하게 섞여있는 와중에 독약의 미묘한 냄새를 구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찬내내 저는 홀린듯이 음식을 먹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무엇하나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마지막으로 테이블 위의 빈 접시나 남은 요리를 정리하고 커다란 뚜껑이 달린 그릇 가득히 향신료를 뿌린 스프가 옮겨져 왔습니다. 집사는 그것을 테이블 중심에 놔두고 식당을 나와 뒷짐을 쥔 채로 문을 닫았습니다.
"훌륭한 향기네요 왕자님." 노르드 여성 후작인, 콜가 (Kolgar)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전하." 저는 친근한 어조로, 달래고 어르는듯한 느낌을 담아 말했습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은 모두, 당신을 모로윈드의 왕으로 하기 위해서라면 기뻐하며 죽겠지요. 하지만 이대로는 그 전에 과식으로 죽고 말겁니다?"
다른 사람들도, 불안한 듯한 신음 소리와 함께 동의 했습니다. 헬세스 왕자는 미소를 띄웠습니다. 어둠의 지배자님, 기증자 베르미나에 맹세코 말씀드립니다만, 아무리 귀하라고 해도 그와 같은 미소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자네도 알다시피, 묘한 말이군. 이 안의 몇몇은 확실하게 알고 있을테지만 어떤 연금술사가 오늘 나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는 훌륭한 독약과 그 해독제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의 목적에 딱 맞는 강력한 독약이다. 일단 삼켜 버리면 더 이상 어떤 회복의 주문도 듣지 않아. 확실한 죽음으로부터 피하려면 이 스프에 들어간 해독약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만약 내가 들은대로라면 그 독에 의해 죽은 모습은 훌륭하다고. 그 연금술사가 말했던 효과가 나오는 걸 빨리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어. 독을 먹은 사람에게는 무서운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 모습은 볼거리라고 하니깐 말야"
모두 침묵을 지켰습니다. 저는 심장 박동이 격렬해짐을 느꼈습니다.
"전하." 알라라트(Allarat)가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트라이뷰널 신전에서 보낸 첩자가 아닐까 의심하던 던머입니다. "여기에 있는 누군가에게 그 독을 쓰셨습니까?"
"너는 정말 빈틈이 없구나 알라라트." 헬세스 왕자는 말하며 테이블을 둘러싼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사람 한사람과 눈을 맞추었습니다. "너는 중요한 상담역이다. 여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소중한... 그렇다, 이 안에서 내가 독을 쓰지 않았던 사람을 드는 편이 빠를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나를 단 한 명의 주인으로서 시중들고 나에게만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자에게는 독을 쓰지 않았다. 헬세스 국왕이 모로윈드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독을 쓰지 않았다. 제국이나 신전이나 텔바니 가문, 레도란 가문, 인도릴 가문, 드레스 가문의 첩자가 아닌 자에게는 독을 쓰지 않았다."
사악한 지배자님, 왕자는 드레스 가문이라고 말하며 바로 내 쪽을 보았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저는 생각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도록 훈련했기 때문에, 그 때도 제 얼굴로부터 생각은 읽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둠의 지배자님, 내심 지금까지 한 모든 밀회나 귀하와 드레스 가문사이에 주고받은 암호문으로 된 통신 등이 순간적으로 머리에 스쳤습니다. 도대체 그 중에 뭔가가 왕자에게 알려져 버렸다는 것일까요? 만약 그것들을 몰랐다면 왕자는 어째서 그러한 의심을 품기에 이르렀는지요?
제 고동은 더욱 더 빨라졌습니다. 공포 때문일까요, 아니면 독이 퍼졌기 때문일까요?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뭔가 말하면 틀림없이 냉정한 무표정에 적합치 않은 소리가 나와 버릴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충실하며 나의 적을 혼내주고 싶다고 바라는 자들은, 내가 확실히 적에게 독을 먹일 수 있었는지 불안하게 생각할 것이다. 나의 적이라는 것보다 적들이라고 말하는 편이 좋겠군. 그들은 오늘 밤 나온 것을 마시거나 먹는 척했을 뿐일지도 모르니깐 말야. 그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 먹는 척해도 그 바보스러운 동작을 능숙하게 통과하려면, 비어있는 잔에 입을 대거나 아무것도 없는 포크나 스푼을 입에 넣거나 하지 않으면 안 돼. 알겠나? 음식에는 독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컵이나 식기에 발라 놓았지. 먹는 척하던 사람들도 먹은 사람도 똑같이 독을 먹었을 것이고, 먹는 척하던 사람은 거기에 더해 그 훌륭한 구운고기를 맛보지 못했다는 거지."
제 얼굴엔 구슬과 같이 땀이 흘러, 그것을 숨기기 위해 왕자로부터 얼굴을 돌렸습니다. 다른 상담역들은 모두 의자에 앉은채 굳어 있었습니다. 후작 콜가의 얼굴은 창백했고, 케마 이네브(Kema Inebbe)는 분명히 떨고 있었습니다. 알라라트는 분노에 눈썹을 찌푸렸고, 버게스는 동상과 같이 굳어진 채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되어 제게는 왕자의 상담역 전원이 첩보원들만르로 구성되어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이 테이블 주위에 왕자에게 충실한 사람따위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만약 제가 첩보원이 아니었다면, 저는 헬세스에게 의심받고 있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었을까요? 상담역의 사람은 모두 왕자의 피해망상의 심각함과 그의 야심에 대한 깊은 집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드레스 가문의 첩보원이 아니었다고 가정하면, 그걸로 자신은 안전하다고 생각되는지요? 충실한 자가 의심스러우면 처벌하라는 식의 잘못된 판단으로 독을 쓰게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도 충신이나 첩보원도 모두, 같은 걸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제 머릿속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어지럽게 떠오르고는 사라지려 하던 그 때, 왕자가 전원을 향해 한 말이 귀에 들려왔습니다. "이 독이 퍼지는건 빠르다. 만약 지금부터 1분 이내에 해독제를 먹지 않으면 테이블 주위에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저는 자신이 독을 먹었는지 어떤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위가 아팠습니다만, 그것은 사치스러운 요리를 눈앞에 두고 무엇하나 먹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몰랐습니다. 고동은 가슴 전체를 뒤흔드는 듯 하고, 트라마 뿌리와 같이 저리는 쓴 맛을 입술에 느끼고 있었습니다. 공포 때문입니까,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독의 탓입니까?
"나를 배반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마지막으로 듣는 말이 될 것이다.'헬세스 왕자는 그 빌어먹을 미소를 띄운 채, 의자 위에서 몸을 비틀고 있는 상담역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해독제를 먹고 살아남는건 어떤가."
그가 말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것인지요? 제가 아는 헬세스 왕자라는 인물에 대해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는 첩보원이라고 자백한 자를 죽일까요? 아니면 그 첩보원을 이용하여, 침입시킨 자에게 돌려보내 복수를 시킬까요? 왕자의 냉혹한 성격으로는 어느 쪽이라도 가능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분명히 이 만찬의 연극처럼 꾸민 티가 나는 연출은, 출석자에게 공포를 심는 걸 목표로 한 듯 보였습니다. 제가 만찬회에 출석하여, 독을 먹고 살해당해 저 세상에서 조상님을 만나면 어떻게 여겨질까요? 만약 제가 들은대로 해독제를 먹고, 귀하와 드레스 가문의 첩보원이라는 것을 자백하여 재판도 없이 처형되었다면 어떨까요? 게다가 자백하더라도, 제가 죽은 후 귀하가 제게 도대체 무엇을 할지도 무서웠습니다.
나는 현기증을 일으켜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버게스가 의자에서 뛰어 올랐는데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제가 눈치챘을 때에 그는 그릇을 양손에 움켜 쥐고 안에 든 액체를 벌컥벌컥 마시는 중이었습니다. 주위에는, 어느샌가 많은 경비병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버게스." 헬세스 왕자가 미소를 띄운 채 말했습니다. "자주 고스트게이트에 출입하던 것 같은데... 레도란 가문의 사람인가?"
"몰랐나?"버게스는 자신을 비웃듯 웃었습니다. "어느 가문의 사람도 아니야. 너의 의붓 여동생 웨이레스트 여왕에게 정보를 보내고 있었다. 쭉 여왕에게 고용되어 있었어. 오... 아카토쉬여, 왕자는 내가 어딘가의 괘씸한 다크 엘프의 첩보원이라 생각하고 독을 쓴 것인가?"
"절반은 맞았어." 왕자가 대답했습니다. "난 네놈이 누구의 첩보원이지를 몰랐을 뿐 아니라, 첩보원인지도 몰랐어. 게다가 내가 네놈한테 독을 썼다는 것도 틀렸다. 넌 스스로 그 독이 들어있는 스프를 먹었으니까 말이야."
버게스의 죽어가는 모습에 대해서는 사악한 지배자님, 여기에는 쓰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귀하는 몇년이고 기나긴 세월을 살며 여러가지 것들을 봐 오셨겠지요. 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죽어가는 모습은 보고싶지도, 듣고싶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그의 단말마와 괴로워하는 모습을 기억으로부터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상담역의 만찬회는 그 후 바로 해산되었습니다. 제가 첩보원인 것을 헬세스 왕자가 알고 있었는지, 또는 의심하고 있었는지 어떤지는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저기 어젯밤의 만찬에 모인 자들 중에서 저와 같이 머지않아 버게스보다도 먼저 해독제에 손을 뻗을 뻔한 사람이 몇명이나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단지 알고 있는 건 만약 왕자가 지금의 저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해도 조만간 의심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저는 왕자가 이전 웨이레스트에서 터득한 이런 유희를 앞으로도 이겨 낼 자신이 없습니다. 부디 사악한 어둠의 지배자 더네인 님 부탁드립니다. 귀하의 힘으로 충실한 부하인 저를 이 임무에서 제외해 주실 것을 드레스 가문과 교섭해 주셨으면 합니다.
출판자주:
당연한 일이지만, 이 편지의 발신인의 이름은, 원본으로부터 복제된 어느 인쇄물에도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만찬의 유희
신원미상의 첩보원 지음
출판자로부터의 서문:
이 편지의 출판에 이르게된 경위는 편지 내용과 마찬가지로 수수께끼가 많고 재미있다. 수개월전, 더네인(Dhaunayne)이라고 하는 수수께끼의 인물앞으로 발송된 편지의 복사본이, 바덴펠 애쉬랜드에서 유출되어 알려지게 되었다. 이윽고 일부 복사본이 아말렉시아[1] 교외의 흐랄루 헬세스 왕자의 궁전까지 전해졌다. 저자는 왕자가 이 편지를 읽고 자신에 대한 악의에 찬 중상에 격노했다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실제 왕자의 반응은 완전히 반대였다. 왕자와 그의 모친인 바렌지아 여왕은 이 편지의 복사본을 개인적으로 장정본으로 만들게 하여, 그것을 모로윈드를 통해 각 도서관과 출판사에 보냈다.
기록해야 할 사항으로 왕자와 여왕은 이 편지가 완전한 창작인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묘사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공식적으로 공표하지 않았다. 드레스 (Dres) 가문은 이 편지가 창작이라며 비난하고 있으며, 또한 더네인이라는 인물과 드레스 가문 사이에는, 이 편지에서 제기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관계도 없다고 한다. 이 편지의 해석은 독자의 판단에 맡기고 싶다.
- 출판자 : 네리스 간
어둠의 군주 더네인 님,
귀하는 어젯밤의 사건과 저 드레스 가문의 주장에 대해 상세히 보고하라는 차기 지령을 내리셨습니다. 헬세스 왕자의 궁정내에 있는 정보제공자로서 지금까지의 제가 한 일이 기대에 부응하였다면 좋겠지만, 지금까지의 보고들 중에서 수차례 말씀드렸다시피, 헬세스 왕자라는 인물은 몰라그 발조차 맨발로 도망칠 정도로 뻔뻔한 자 입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1년 전부터 친밀한 조언담당의 한 사람으로서 왕자의 주변에 침투해 있습니다. 그가 모로윈드에 왔을 무렵엔 우정에 굶주려 있었으며, 저와 다른 몇명의 조언자를 적극적으로 주위에 두고자 했습니다. 지금도 그는 우리를 변함없이 신뢰하고 있습니다. 모로윈드에 있어 왕자의 정치적 존재감이 희박해짐에 따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악한 귀하께서 참고하시길, 다시 한 번 기본적인 사실을 써두자면 왕자는 전 모로윈드의 여왕이며 하이 락, 웨이레스트 왕국의 여왕이던 때도 있는 바렌지아의 장남입니다. 바렌지아의 남편이며, 헬세스 왕자의 계부였던 국왕 에드와이어의 사후, 에드와이어의 딸 엘리사나 공주와 헬세스 왕자 사이에는 권력 다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들려오는 소문으로는 이 다툼의 자세한 경과를 알기 어려우나, 최종적으로 엘리사나가 이겨 웨이레스트의 여왕이 되고 헬세스와 바렌지아를 추방한 것은 확실합니다. 바렌지아의 다른 자식인 모르지아는 이미 결혼하여 서머셋 아일즈의 퍼스트홀드 왕국의 여왕이 되어 웨이레스트 왕실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바렌지아와 헬세스가 대륙을 횡단하여 모로윈드로 돌아온 것은 바로 작년의 일입니다. 바렌지아의 삼촌이며 바렌지아가 40여전 전에 퇴위한 후 왕위를 계승한 현 국왕 흐랄루 아틴 레탄(Hlaalu Athyn Llethan)은 극진히 그들을 맞이했습니다. 바렌지아는 왕위를 되찾고자 하는 생각따위는 없이, 단지 그녀 가족의 저택에서 은거생활을 보내고싶은 것 뿐이라고 선언했습니다. 헬세스쪽은 아시다시피, 왕궁에서의 직책에 매달려서, 많은 사람들은 웨이레스트의 왕위를 잃었던 그가 레탄의 사후에 모로윈드의 왕위를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전 지금까지, 사악한 귀하께 왕자의 행동이나 만났던 인물, 기획, 조언담당자들의 이름이나 성격 등을 보고해왔습니다. 몇 차례 전해드렸듯이 저는 헬세스의 주변에 저 이외에도 첩보원이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전 어느 던머 상담역이 트라이뷰널 템플의 대주교 톨러 사요니(Tholer Saryoni) 와 함께 행동하던 인물과 닮았다고 전해드렸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다른 노르드의 젊은 여성은, 발모라에 있는 제국 수도의 요새를 방문했다는 것을 파악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경우 헬세스측이 각처에 보내고 있는 첩보원일 가능성도 있습니다만 실제론 알 수 없습니다. 왕자가 웨이레스트 왕궁에 있을 무렵부터 시종을 맡고 있는 브레튼인 버게스 (Burgess) 의 충성심까지도 의심스럽게 생각되기에 이르러서는 자신이 왕자와 같이 망상광인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듭니다.
이상, 어젯밤 사건의 배경이었습니다.
어제 아침에 왕자와의 만찬회에 오라는 간단한 초대장이 제 앞으로 도착했습니다. 꺼림직했던 저는 드레스 가문에 충실하고 유능한 부하를 왕궁에 투입시켜 뭔가 이상한 것은 없는지 조사시켰습니다. 만찬의 조금전에 그가 돌아와서 왕궁에서 본 것을 보고했습니다.
너덜너덜한 옷을 걸친 남자가 성에 들어오는 걸 허가받아, 당분간 성내에서 머물고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남자가 돌아갈 때 부하는 망토에 가려진 얼굴을 엿보았습니다만... 그는 악명높은 연금술사로 이국의 독약 밀매를 담당한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부하는 관찰력이 뛰어나 그자가 성에 들어갈 때 위크위트, 비터그린, 그외에도 익숙하지 않는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자가 성을 나왔을 때에는 그러한 냄새가 없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부하가 내린 결론은 저와 같았습니다. 왕자가 독약을 조합하기 위한 소재를 그로부터 조달했던 겁니다. 비터그린 만으로도 날것을 입에 대면 죽게 됩니다. 게다가 다른 소재를 더한다는 것은 뭔가 좀 더 교묘한 계획이 있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악한 귀하라면 어렵지않게 상상이 되실거라 생각합니다만, 저는 모든 사태에 대해 각오하고 그날 밤의 만찬회로 향했습니다.
만찬회에는 헬세스 왕자의 상담역 전원이 출석하였고 그들이 미묘하게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물론 저는 처음 여기 있는 전원이 첩보원이고 왕자와 수수께끼의 연금술사 사이의 밀회를 알고 있을거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되었습니다. 즉, 몇몇은 연금술사가 올 것을 알고 있었으며, 다른 몇몇은 만찬회의 목적 그 자체가 무엇인지 불안히 여겼고,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단지 정보를 가지고 있는 다른 상담역들의 긴장된 공기에 이끌려 긴장하고 있을 뿐일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왕자는 좋은 기분으로 그 자리 전원의 긴장을 풀어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우리들은 9시에 식당으로 안내되었고 그곳에는 미리 요리의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요리의 호화로움이란! 벌꿀이 첨가된 고라플로 시작해 향기로운 스튜나 갖가지 육즙의 소스로 맛을 낸 구운고기, 여러가지 복잡한 방법으로 조리되어 호화롭게 담겨진 생선과 닭고기. 수정이나 황금용기에 들어있는 와인, 플린, 셰인, 마츠등이 각각의 자리에 놓여있어 요리에 맞추어 즐길 수 있게끔 되어 있었습니다. 요리나 술의 향기는 매우 훌륭한 것이었으나, 그러한 향신료나 다른 냄새가 복잡하게 섞여있는 와중에 독약의 미묘한 냄새를 구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만찬내내 저는 홀린듯이 음식을 먹는 척 하면서 실제로는 무엇하나 입에 대지 않았습니다. 이윽고 마지막으로 테이블 위의 빈 접시나 남은 요리를 정리하고 커다란 뚜껑이 달린 그릇 가득히 향신료를 뿌린 스프가 옮겨져 왔습니다. 집사는 그것을 테이블 중심에 놔두고 식당을 나와 뒷짐을 쥔 채로 문을 닫았습니다.
"훌륭한 향기네요 왕자님." 노르드 여성 후작인, 콜가 (Kolgar)가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은 먹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전하." 저는 친근한 어조로, 달래고 어르는듯한 느낌을 담아 말했습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은 모두, 당신을 모로윈드의 왕으로 하기 위해서라면 기뻐하며 죽겠지요. 하지만 이대로는 그 전에 과식으로 죽고 말겁니다?"
다른 사람들도, 불안한 듯한 신음 소리와 함께 동의 했습니다. 헬세스 왕자는 미소를 띄웠습니다. 어둠의 지배자님, 기증자 베르미나에 맹세코 말씀드립니다만, 아무리 귀하라고 해도 그와 같은 미소는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것입니다.
"자네도 알다시피, 묘한 말이군. 이 안의 몇몇은 확실하게 알고 있을테지만 어떤 연금술사가 오늘 나를 방문했다. 그리고 그는 훌륭한 독약과 그 해독제를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나의 목적에 딱 맞는 강력한 독약이다. 일단 삼켜 버리면 더 이상 어떤 회복의 주문도 듣지 않아. 확실한 죽음으로부터 피하려면 이 스프에 들어간 해독약을 먹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만약 내가 들은대로라면 그 독에 의해 죽은 모습은 훌륭하다고. 그 연금술사가 말했던 효과가 나오는 걸 빨리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어. 독을 먹은 사람에게는 무서운 고통을 수반하지만, 그 모습은 볼거리라고 하니깐 말야"
모두 침묵을 지켰습니다. 저는 심장 박동이 격렬해짐을 느꼈습니다.
"전하." 알라라트(Allarat)가 입을 열었습니다. 제가 트라이뷰널 신전에서 보낸 첩자가 아닐까 의심하던 던머입니다. "여기에 있는 누군가에게 그 독을 쓰셨습니까?"
"너는 정말 빈틈이 없구나 알라라트." 헬세스 왕자는 말하며 테이블을 둘러싼 사람들을 바라보며 한사람 한사람과 눈을 맞추었습니다. "너는 중요한 상담역이다. 여기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소중한... 그렇다, 이 안에서 내가 독을 쓰지 않았던 사람을 드는 편이 빠를지도 모르겠는데. 나는 나를 단 한 명의 주인으로서 시중들고 나에게만 충성을 맹세하고 있는 자에게는 독을 쓰지 않았다. 헬세스 국왕이 모로윈드를 수습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독을 쓰지 않았다. 제국이나 신전이나 텔바니 가문, 레도란 가문, 인도릴 가문, 드레스 가문의 첩자가 아닌 자에게는 독을 쓰지 않았다."
사악한 지배자님, 왕자는 드레스 가문이라고 말하며 바로 내 쪽을 보았습니다. 틀림없습니다. 저는 생각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도록 훈련했기 때문에, 그 때도 제 얼굴로부터 생각은 읽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둠의 지배자님, 내심 지금까지 한 모든 밀회나 귀하와 드레스 가문사이에 주고받은 암호문으로 된 통신 등이 순간적으로 머리에 스쳤습니다. 도대체 그 중에 뭔가가 왕자에게 알려져 버렸다는 것일까요? 만약 그것들을 몰랐다면 왕자는 어째서 그러한 의심을 품기에 이르렀는지요?
제 고동은 더욱 더 빨라졌습니다. 공포 때문일까요, 아니면 독이 퍼졌기 때문일까요? 나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었습니다. 뭔가 말하면 틀림없이 냉정한 무표정에 적합치 않은 소리가 나와 버릴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나에게 충실하며 나의 적을 혼내주고 싶다고 바라는 자들은, 내가 확실히 적에게 독을 먹일 수 있었는지 불안하게 생각할 것이다. 나의 적이라는 것보다 적들이라고 말하는 편이 좋겠군. 그들은 오늘 밤 나온 것을 마시거나 먹는 척했을 뿐일지도 모르니깐 말야. 그건 그럴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잘 먹는 척해도 그 바보스러운 동작을 능숙하게 통과하려면, 비어있는 잔에 입을 대거나 아무것도 없는 포크나 스푼을 입에 넣거나 하지 않으면 안 돼. 알겠나? 음식에는 독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컵이나 식기에 발라 놓았지. 먹는 척하던 사람들도 먹은 사람도 똑같이 독을 먹었을 것이고, 먹는 척하던 사람은 거기에 더해 그 훌륭한 구운고기를 맛보지 못했다는 거지."
제 얼굴엔 구슬과 같이 땀이 흘러, 그것을 숨기기 위해 왕자로부터 얼굴을 돌렸습니다. 다른 상담역들은 모두 의자에 앉은채 굳어 있었습니다. 후작 콜가의 얼굴은 창백했고, 케마 이네브(Kema Inebbe)는 분명히 떨고 있었습니다. 알라라트는 분노에 눈썹을 찌푸렸고, 버게스는 동상과 같이 굳어진 채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가 되어 제게는 왕자의 상담역 전원이 첩보원들만르로 구성되어 있다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이 테이블 주위에 왕자에게 충실한 사람따위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만약 제가 첩보원이 아니었다면, 저는 헬세스에게 의심받고 있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었을까요? 상담역의 사람은 모두 왕자의 피해망상의 심각함과 그의 야심에 대한 깊은 집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드레스 가문의 첩보원이 아니었다고 가정하면, 그걸로 자신은 안전하다고 생각되는지요? 충실한 자가 의심스러우면 처벌하라는 식의 잘못된 판단으로 독을 쓰게 될 수도 있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도 충신이나 첩보원도 모두, 같은 걸 생각하고 있었을 겁니다.
제 머릿속에서 여러가지 생각이 어지럽게 떠오르고는 사라지려 하던 그 때, 왕자가 전원을 향해 한 말이 귀에 들려왔습니다. "이 독이 퍼지는건 빠르다. 만약 지금부터 1분 이내에 해독제를 먹지 않으면 테이블 주위에 사망자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저는 자신이 독을 먹었는지 어떤지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위가 아팠습니다만, 그것은 사치스러운 요리를 눈앞에 두고 무엇하나 먹지 않았기 때문일지도 몰랐습니다. 고동은 가슴 전체를 뒤흔드는 듯 하고, 트라마 뿌리와 같이 저리는 쓴 맛을 입술에 느끼고 있었습니다. 공포 때문입니까, 아니면 이번에야말로 독의 탓입니까?
"나를 배반하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마지막으로 듣는 말이 될 것이다.'헬세스 왕자는 그 빌어먹을 미소를 띄운 채, 의자 위에서 몸을 비틀고 있는 상담역들을 둘러 보았습니다. '해독제를 먹고 살아남는건 어떤가."
그가 말하는 것을 믿어야 하는것인지요? 제가 아는 헬세스 왕자라는 인물에 대해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는 첩보원이라고 자백한 자를 죽일까요? 아니면 그 첩보원을 이용하여, 침입시킨 자에게 돌려보내 복수를 시킬까요? 왕자의 냉혹한 성격으로는 어느 쪽이라도 가능성이 있어 보였습니다. 분명히 이 만찬의 연극처럼 꾸민 티가 나는 연출은, 출석자에게 공포를 심는 걸 목표로 한 듯 보였습니다. 제가 만찬회에 출석하여, 독을 먹고 살해당해 저 세상에서 조상님을 만나면 어떻게 여겨질까요? 만약 제가 들은대로 해독제를 먹고, 귀하와 드레스 가문의 첩보원이라는 것을 자백하여 재판도 없이 처형되었다면 어떨까요? 게다가 자백하더라도, 제가 죽은 후 귀하가 제게 도대체 무엇을 할지도 무서웠습니다.
나는 현기증을 일으켜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했기 때문에, 버게스가 의자에서 뛰어 올랐는데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제가 눈치챘을 때에 그는 그릇을 양손에 움켜 쥐고 안에 든 액체를 벌컥벌컥 마시는 중이었습니다. 주위에는, 어느샌가 많은 경비병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버게스." 헬세스 왕자가 미소를 띄운 채 말했습니다. "자주 고스트게이트에 출입하던 것 같은데... 레도란 가문의 사람인가?"
"몰랐나?"버게스는 자신을 비웃듯 웃었습니다. "어느 가문의 사람도 아니야. 너의 의붓 여동생 웨이레스트 여왕에게 정보를 보내고 있었다. 쭉 여왕에게 고용되어 있었어. 오... 아카토쉬여, 왕자는 내가 어딘가의 괘씸한 다크 엘프의 첩보원이라 생각하고 독을 쓴 것인가?"
"절반은 맞았어." 왕자가 대답했습니다. "난 네놈이 누구의 첩보원이지를 몰랐을 뿐 아니라, 첩보원인지도 몰랐어. 게다가 내가 네놈한테 독을 썼다는 것도 틀렸다. 넌 스스로 그 독이 들어있는 스프를 먹었으니까 말이야."
버게스의 죽어가는 모습에 대해서는 사악한 지배자님, 여기에는 쓰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귀하는 몇년이고 기나긴 세월을 살며 여러가지 것들을 봐 오셨겠지요. 하지만 절대로 그렇게 죽어가는 모습은 보고싶지도, 듣고싶지도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 그의 단말마와 괴로워하는 모습을 기억으로부터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상담역의 만찬회는 그 후 바로 해산되었습니다. 제가 첩보원인 것을 헬세스 왕자가 알고 있었는지, 또는 의심하고 있었는지 어떤지는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저기 어젯밤의 만찬에 모인 자들 중에서 저와 같이 머지않아 버게스보다도 먼저 해독제에 손을 뻗을 뻔한 사람이 몇명이나 있는지조차 모릅니다. 단지 알고 있는 건 만약 왕자가 지금의 저를 의심하지 않았다고 해도 조만간 의심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저는 왕자가 이전 웨이레스트에서 터득한 이런 유희를 앞으로도 이겨 낼 자신이 없습니다. 부디 사악한 어둠의 지배자 더네인 님 부탁드립니다. 귀하의 힘으로 충실한 부하인 저를 이 임무에서 제외해 주실 것을 드레스 가문과 교섭해 주셨으면 합니다.
출판자주:
당연한 일이지만, 이 편지의 발신인의 이름은, 원본으로부터 복제된 어느 인쇄물에도 전혀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