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안(몬스터 길들이기)

아몬의 계획은 실패했고,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혹시 그에겐 다음 계획이라도 있었던 걸까? 혹시 모든 드레이든의 엘리트들을 버리고 어디선가 또 새롭고 재미있는 계획을 꾸미고 있는 건 아닐까? 그라면 그럴지도 모른다. 사실 모리안은 세계를 멸망시키거나 구원하는 일 따위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그의 목표가 성공하든 성공하지 않든 모리안은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그녀에게는 어느 곳에 발 디디고 살아가든 그 곳이 바로 ‘지옥’이었으니까. 다만, 그가 가장 아름답게 빛나고 있을 때 죽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울 뿐이었다. 그가 정녕 미래를 볼 줄 아는 자라면, 모리안의 손에 죽지 않았더라도 이미 자신의 끝 또한 알고 있었으리라. 그리고 지금. 모리안의 앞에 선 두 남자, 해커스와 그의 동료는 모리안에게 아몬의 행방을 물었다. 모리안은 자신 앞에 선 같잖지도 않은 남정네 둘을 바라보곤 미소지으며 웃었다. 이제와서야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아몬에게는 그 어떤 정도, 의리도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정말이지 재미있는 남자였다. 그토록 무언가에 몰두하고 집착하고 연구하며, 어둠을 억지로 찢고 운명을 왜곡시켜가면서까지 세상에 빛을 비추려 하다니. 모리안으로선 상상도 못할 발상이었다. 그리고 그가 초래한 업보가 그녀의 눈 앞에 서있었다. 아몬에게는 그 어떤 정도, 의리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모리안은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아몬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독히도 개인적인 이유였다. 눈 앞의 두 남자는 너무도 위태로운 나머지 툭 건드리면 무너져버릴 것만 같았다. 모리안이 그 달콤한 열매를 마다할 리가 없었다. 모리안은 아몬을 위해 아껴두었던 요도 혈화의 봉인을 완전히 풀었다. 수천년의 원한을 가진 악령을 봉인한 채, 단순한 검으로써 기능하던 검은 순식간에 모리안의 몸을 집어삼켜 그녀의 몸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가 몸을 잠식하는 와중에도, 그녀의 정신은 그 어느 때보다도 명료하고 온전한 이성을 유지하고 있었고, 바로 그 점이 그녀를 상대하는 두 남성을 소름돋게 하였다. 이 순간 피를 갈구하는 검의 악령과 잘생긴 남성의 아름다운 죽음을 갈구하는 모리안의 이해관계는 정확히 일치했다. 이젠 그녀의 행동반경을 제어할 아몬도, 칼리도, 심지어 베르단디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반짝이며 빛나는 자가 최고조로 빛날 때 정확히 베어버리기 위해 스스로를 제어하던 모리안은, 이제야 비로소 그 사슬들을 끊고 진정으로 자유롭게 해방된 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