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02 08:07:47

문경 부녀자 살인 사건


1. 개요2. 상세3. 사건 이후

1. 개요



1904년 경상북도 문경군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 초기에는 자살 사건으로 여겨졌으나 이후 진실이 밝혀졌다.

2. 상세

1904년 6월 3일 경상북도 문경군 신북면 화지리에 살던 양반 안도흠이 자신의 며느리 황씨가 한 달 전 같은 동네에 사는 정이문이라는 천민에게 강간당할 뻔하고 수치심에 그의 집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며 억울함을 풀어 달라는 내용의 고발장을 문경 관아에 제출했다. 그런데 이 고발장을 본 문경군수 김영연은 천민이 양반을 겁간하려고 했다는 것도 그렇고 아무리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자살했다고는 하지만 굳이 천민의 집에서 양반 가문의 며느리가 자살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다. 그리하여 김영연은 오작인[1] 김일남을 대동해 현장을 찾았다.

그러나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인 정이문이 이미 달아난 뒤였기 때문에 우선 죽은 황씨 부인의 남편인 안재찬을 심문했다. 안재찬의 증언에 따르면 5월에 정이문이 안방에 숨어들어와 아내를 겁간하려다가 들켜 도주했고 그를 잡으려다 실패했으며 아내가 여러 차례 자결하려는 것을 아버지와 자신이 여러 차례 설득해서 말리던 차에 이 사달이 났다는 것이었다. 이후에는 차례로 동네 사람들을 심문했지만 딱히 실마리가 될 증언은 나오지 않았고 정이문의 조부 정태극이라는 자는 시종일관 횡설수설하여 증언의 신빙성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이후 오작인 김일남이 검시를 진행했다. 그는 가장 먼저 독살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시신을 꼼꼼히 살피던 중 죽은 황씨의 시신 곳곳에 구타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시신의 뒷목에는 일(一)자 형태의 끈으로 조른 흔적도 있었다. 이에 김일남은 황씨 부인이 자살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 끈으로 목을 졸라 죽인 뒤 자살로 위장한 것이라고 판단해 검시 결과를 군수 김영연에게 보고했다.[2]

김일남의 보고를 받은 김영연은 안재찬을 재차 심문했는데 여기서 사건의 진상이 드러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안재찬이 아내 황씨의 불륜을 의심한 끝에 살해했던 것이었다.

사건의 진상은 이러했다. 일단 황씨가 정이문에게 겁간당할 뻔하고 이에 격분한 안재찬이 정이문을 뒤쫓아가 잡으려고 했으나 그는 이미 집을 버리고 도주한 뒤였기 때문에 실패한 것까지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정이문을 잡지 못한 안재찬은 집에 남아 있었던 조부 정태극을 추궁하면서 심하게 매질하는데 이때 정태극이 모진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정이문과 황씨가 불륜 관계였다고 거짓 증언을 하고 말았다. 분노로 자제력을 잃은 상태에서 정태극의 거짓 증언을 들은 안재찬은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다고 믿고 황씨를 구타한 끝에 올가미로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자살로 위장하여 정이문의 집에 아내의 시신을 유기했다.

3. 사건 이후

이렇게 황씨 부인의 죽음은 남편에 의한 타살로 결론지어졌으나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한 천민 정이문은 끝내 잡히지 않았고 이후에도 어떻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의 인상착의를 검안 말미에 '용파'라고 하여 별도로 첨부했다고 한다.
[1] 현대의 법의학자 내지는 검시관에 해당하는 하급 관리.[2] 이 검시 결과는 증수무원록언해의 "목 매달아 자살한 경우 대들보나 서까래의 올가미 흔적은 한 줄이 아니다. 먼지가 많은 곳이라면 어지럽게 줄 자국이 흩어져 있어야 스스로 목을 맨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올가미 자국이 한 줄로만 나 있고 먼지가 어지럽혀져 있지 않으면 스스로 목을 맨 것이 아니다."라는 구절에 기초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