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통감》에 의하면 중종이 폐위된 뒤 비기(飛騎) 수십 명이 모여서 방곡(坊曲)에서 술자리를 가졌는데 이때 한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아무런 공적이 없다는 것을 진작 알았더라면 차라리 여릉왕을 모시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向知別無勳賞,不若奉廬陵。)
이 술자리에 있던 한 사람이 일어나 북문으로 가서 술자리에 대해 밀고를 했고, 술자리가 아직 끝나지 않은 가운데 우림군이 들이닥쳐서 병사들은 모두 체포되어 우림옥에 수감되었다. 문제의 발언을 한 병사는 참수형, 문제의 발언을 알고도 밀고를 하지 않은 나머지 병사들은 교수형에 각각 처해졌으며, 반면 밀고를 한 병사는 5품의 관직에 제수되었다. 자치통감에서는 이 사건으로 밀고를 장려하는 풍조가 시작되었다고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