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09-04 22:46:48

미테란트 공화국/역사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미테란트 공화국
강철의 누이들에 등장하는 미테란트 공화국의 역사


강철의 누이들의 서술시점으로부터 약 5백 년 전, 20여 개에 달하는 군소 제후가문들의 연합체로서 연합왕국이라는 이름만 걸었을 뿐 독립된 하나의 국가라고 할 수 없었던 당시의 미테란트는 서부의 강력한 군사국가인 에쉬르 제국의 침략을 받았다. 또한, 개전 직후 에쉬르 제국의 독점적인 지배를 저지하기 위해 다른 주변 3국이 군사적으로 간섭했다.

주변 3국의 개입 목적은 겉으로는 침략자를 응징한다는 것이었지만, 사실 이들 모두 미테란트의 자원 - 당시엔 주로 영토 그 자체와 거기에 딸린 농업생산물이었다고 한다 - 을 탐내 전쟁을 걸어온 것이었다. 그들 주변 3국은 에쉬르와의 전면전보다는 연합왕국을 구성하던 공국들을 병합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최종적으로 미테란트를 구성하고 있던 20여 개의 소공국들은 9개 주로 통합, 간섭 3개국에 2개씩, 에쉬르 제국에 3개 주가 귀속되었다.

그리고 이후 4백 년이 넘는 기나긴 식민통치가 이어졌다. 식민 지배자들은 미테란트의 모든 것을 강탈하고 갈취했으며, 수많은 미테란트 국민을 학살했다. 당연히 미테란트 국민은 이에 맞서 저항했고, 지배 1백 년째 되는 해에는 당시까지 있었던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 봉기가 벌어졌다. 이 봉기로 촉발된 1차 독립전쟁이 종결되는 데는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고, 이를 힘겹게 진압한 식민지배자들은 미테란트의 독립투쟁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길을 모색했다. 그래서 그들은 당시까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던 끔찍한 음모 한 가지를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그 음모의 입안자가 누구였는지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으며 그 음모는 하나의 마법이다.

에쉬르 제국과 다른 3국의 왕실마법사 전원이 모여서 기본 마법이론체계를 구성하는 데만 10년이 걸렸다. 그리고 다시 마법을 실행하는 준비에 10년이 걸렸고, 최종적으로 사상 최대의 마법진 - 지름이 자그마치 1,000km나 되는 - 을 그렸다. 그 다음, 마지막으로 발동시키기 위한 영창 및 술식 진행만도 거의 5년이 걸렸다. 그리고 그 마법의 이름은 ‘’‘광역성비조절마법’‘’이다. 이 마법의 내용은 신생아 중 남성 성비를 여성대비 5%대 이하에서 묶어버린다는 것이다. 그것도 <수태 후 4주 내에 남아는 95%가 자연유산>이라는 극도로 잔인한 방법으로.

게다가 그 끔찍할 정도로 황당한 마법 영향에다가 지나치게 오랫동안 계속된 여초현상 속에서 발생한 남성에 대한 과보호, 그리고 남성 유전자 풀의 축소로 인한 유전적 결함 등의 이유가 겹쳐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기껏 태어난 남자아이들의 사망률까지 올라가는 참사가 발생했다. 그렇게 해서 미테란트는 지금의 성비를 가지게 되었다. 또한 일이 그렇게까지 진행되자 식민지배자들은 너무 많은 여성 인구를 흡수한다는 핑계로 여성인구 상당수를 강제로 공출, 특수용도 노예로 삼기까지 했다. 말 그대로 이중의 수모였다.

하지만, 식민지배 하에 있던 미테란트 9개 주는 대규모 봉기가 실패로 끝난 뒤에도 독립을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무력항쟁은 포기했지만, 그 대신 다른 수단으로 독립운동을 계속한 것이다. 일단 각 주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각국으로부터 자치권을 조금씩, 교묘하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얻어냈다. 그리고 그 자치권을 활용해 가면서 아주 꾸준하게 인재와 독립을 위한 각종 기초 조직을 지하에서 비밀리에 키워 나갔던 것이다.

또한 미테란트 국민들은 열심히 일하고 학문을 연구했다. 그렇게 해서 동력혁명 시기에는 대륙 전체가 미테란트산 공업제품에 목을 맬 정도까지 경제적 역량을 쌓아올릴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심지어 식민지 자본이 한때 지배국 자본규모를 능가하는 시기에 이른 적도 있다. 물론 의심을 줄이기 위해 미테란트의 식민지 자본가 - 한국에서 식민지 자본가 하면 일제의 앞잡이 취급을 받지만, 미테란트에서는 저런 배경 때문인지 독립의 영웅 취급을 받는다고 한다. - 들은 그 자본 상당수를 알아서 지배자들에게 상납함으로서 이중의 효과, 즉 긴장을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내부의 부패를 촉발하는 효과를 거두기도 했고.

그런 식으로 수백 년에 걸쳐 독립의 역량을 차근차근 배양한 미테란트는 작중 서술시점 27년 전인 대륙력 2036년에 독립의 기회를 잡았다. 주변국 대부분이 공산주의 혁명의 열풍에 휩싸인 것이다. 역시 붉은혁명은 어디서나 일어난다는 패러렐월드의 절대명제인가?

이에 미테란트 자치주 전체는 서로 완벽한 타이밍을 맞춰서 기습적으로 각 자치주 독립선언과 동시에 미테란트 공화국의 건국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 독립선언과 동시에 미테란트는 당시로서는 끝이 보이지 않았던 치열한 제2차 독립전쟁, 공식적인 임시정부를 가지고 치르는 최초의 독립전쟁의 수렁에 빠져들었다.

마침 당시 가장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던 대륙 서부의 군사강국 에쉬르 제국은 공산혁명의 결과로 제국 자체가 붕괴해 버린 상태였다. 이후 에쉬르 제국은 독립선언을 전후해서 서부공화국연방으로 재탄생했고, 또한 가장 먼저 미테란트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미테란트의 독립은 문제없이 진행될 것 같았다.

그러나 다른 3개국은 비교적 탄탄한 국내 치안시스템에 힘입어 빠른 속도로 혁명을 진압해 나갔다. 이어 3국은 공화국의 독립선언을 부정하며 구 에쉬르 제국령 식민지 3개 주를 하나씩 분할 점령한다는 합의 하에 연합군을 구성해서 전면전을 걸어 왔다. 이것이 독립전쟁의 시작이었다.

비록 오랫동안 준비해 온 독립선언이었다고는 하지만, 장기간에 걸쳐 식민 지배를 받은 탓에, 신생 미테란트 독립군은 적어도 군사적으로는 제대로 된 경험을 쌓지 못했다. 그래서 독립군은 개전 초 4개월 동안 연전연패를 피하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중부주 승마동호회가 중부주 경기병여단이 되고 남부주 요트협회가 미테란트 해군 연안경비전단이, 서부주 비행클럽이 육군1항공정찰대가 되는 식인데 제대로 싸우면 그건 판타지다. 전투경험도 군대 운용경험도 뭣도 없는데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주인공 국가 보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 일어난다. 개전 직후 서부공화국연방이 압제에 맞서 싸우는 약소 프롤레타리아 동지들을 돕는다는 명분으로 50만에 달하는 의용군을 모집, 미테란트 독립군 지휘부에게 지휘권을 완전히 위임해 가면서 파견해준 것이다. 상식적으로 말이 전혀 안 되지만, 그런 지원이 없었다면 미테란트는 아마 세 나라에게 분할 정복당했을 것이다. 물론 그 지원 덕분에 독립이 완전히 확보된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백일천하 같은 참사가 발생하는 것을 막는 데는 충분히 유용했다.

서부공화국연방의 대대적인 병력지원에 힘입어, 미테란트는 독립전쟁의 독립전쟁 초기 4년 동안 간신히 서부 3개 주와 중부주를 사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부 3개 주와 남부, 북부주는 3국 연합군 점령 하에 있었고, 이 지역을 점령한 3국 연합군은 일부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기존의 식민통치를 초월하는 끔찍한 압제를 가했다. 그러나 간신히 수비하는 입장을 유지하던 미테란트 임시정부는 도저히 5개 주를 해방시킬 여력을 얻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김한얼의 아버지 김하연. 일명 하이니(…)가 등장하게 된다.

당시 독립전쟁 중 적으로부터 탈출하던 한 소환마법사가 자신에게 공간이동 마법을 걸었고, 그녀(5%의 확률로 그)는 실수로 우리 세계의 김하연에게 날아오게 된다. 그리고 함께 오게 되는데, 아마도 납치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작가 홈페이지의 쥔장/손님 자유연재 게시판에 있는 중지광복공 김하연전을 보면, 어느 정도 그 상황이 나와 있다.

김하연은 당시 ROTC 기초군사교육과정을 마친 시점이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 전훈으로 다져진 한국군 보병전술을 익힌 상태였다. 미테란트의 세계는 라인 배틀, 즉 병사들이 대오를 지어 걸어가면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구식 전술 수준을 간신히 벗어난 시기였다. 따라서 김하연의 기본적인 보병전술은 그를 혁신적인 전술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후 김하연은 연합군의 전차를 노획, 많은 공적을 세우며 동부주 독립군 총사령관 자리에 앉는다. 이후 미테란트 국방군이라 개칭한 정부군에 합류, 서부공화국연방의 인적,물적 지원에 힙입은 해방공세를 시작한다. 김하연은 이 공세에서 노획전차로 이루어진 기갑여단을 - 실 규모는 대대 - 지휘, 3국 연합군을 격파해 나간다. 그리고 이 시기에 누이들 다수가 임신된 것으로 보이며, 전우들 또한 많은 수가 전사한다. 따라서 실제 누이들 이외에 어떤 수정란(…)이 사망했는지는 모를 일.

독립전쟁은 김하연을 중심으로 서술했지만, 어쨌든 8년에 걸쳐 계속된 유혈 - 그중 실제 전면전이라고 부를 시기는 개전 초 2년과 마지막 2년간이고 나머지 기간은 적어도 전선에선 소강상태였다. - 끝에 작중 서술시점에서 19년 전인 대륙력 2044년에 끝났다. 미테란트는 예전에 미테란트를 식민통치했던 네 나라 모두에게서 독립을 승인받음과 동시에 명예로운 강화조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남부방면에서 해안선에 근접한 일부 도서지대만은 끝내 해방하지 못했지만(저지라든가…).

특이하게 국가원수는 종신제이다. 이유는 독립당시 여러 파벌들이 난립하였고 각각의 파벌이 요구하는 국가체제와 경제체제 등 각종 사안들의 충돌로 인한 혼란 때문에 결국 각 파벌은 국가원수를 무파벌인 군부의 전쟁영웅 중에서 고르게 되었고 선정된 인물이 현 국가원수인 크리스틴 하렐(미국의 워싱턴과 하딩 대통령의 사례 참고). 또한 종신제가 된 이유는 갓 태동한 미테란트 공화국이 안정기를 찾게 될 때까지 정책의 일관성 유지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정세가 안정되면 임기제로 전환할 예정이라 한다.

그리고 독립 4년 후, 우리 세계 시간으로는 7년 후 김하연은 다시 소환된다. 한참 독립국가로서의 기반을 다져가던 공화국이 이번에는 동부의 육군강국인 라스니아 공화국의 재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북부의 아타만 제국 역시 개전 2개월째가 되던 무렵 돌연 선전포고를 하고 북부주에 대한 전면 침공을 개시했다. 당시 공화국의 유일한 우방이었던 서부공화국연방은 지난 독립전쟁 당시 공화국에 너무 많은 지원을 해서 그 후유증에 한참 시달리던 참이었다. 서부연방은 병력뿐 아니라 경제적 지원 또한 엄청나게 퍼부었고, 특히 군수산업으로의 전환이 늦은 탓에 국가적 역량이 부족했다. 그래서 서부연방은 더 이상 미테란트를 지원할 수 없는 형편이었고, 공화국은 자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그리고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당시 공화국군 총사령부는 김하연을 다시 소환하는 것을 결의한다. 그리고 당시 김한얼의 친모는 사망한 이후였으며, 김하연김한얼을 이 세계로 데리고 오게 된다. 그리고 누이들을 만났으며, 지구로 귀환하면서 기억을 조작하지만, 어느 정도 파편은 남게 된다. 또한 이 기억 조작은 이후 인격분리현상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