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민기수(閔箕秀) |
본관 | 여흥 민씨 |
생몰 | 1884년 ~ ? |
출생지 | 함경북도 청진부 신암동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1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민기수는 1884년생이며 함경북도 청진부 신암동 출신이다. 민기수는 1919년 3월 24일 새벽 장채남,서성칠(徐星七),윤학송(尹學松) 등과 함께 '조선민족독립단 청진'의 명의로 된 조선독립선언서를 인쇄한 뒤 시내 곳곳에 독립선언서와 태극기를 배포했다. 그러나 헌병들이 태극기와 선언서를 압수하고 주동자를 체포하기 위해 수색하는 바람에 시위를 벌이지 못했다. 이후 민기수는 장채남 등과 함께 신암동에서 3월 31일에 거사를 벌이기로 정했다. 3월 31일 정오 신암동이 400명이 모이자, 그는 윤병후(尹炳厚)를 선두로 만세시위에 돌입했다. 한 시간 30분간 지속된 시위는 민기수, 윤병후 등 주도 인물 6명이 체포되자 일단 해산되었다. 그러나 일부 군중이 주동 인물 석방을 요구하면서 재차 시위가 전개되었고, 300명의 시위대가 다시 모여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면서 시위를 벌였으나, 일본 경찰에 의해 다시 해산되었다.민기수는 체포된 뒤 1919년 6월 21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후의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민기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