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96년부터 2003년까지 대구광역시의 낙후된 섬유산업을 고부가가치 섬유사업으로 탈바꿈 시키고자 김영삼 정부에서 마련한 정책이다. 대구광역시를 이탈리아의 밀라노처럼 국제 섬유패션 도시로 키운다며 시작한 조단위의 대형 국책 과제다. 이후 지역전략산업진흥사업으로 이름을 바꿔 더 지원했다. 지역 클러스터사업 시초 격이라 더 기대를 모았던 사업이나 결과는 만신창이다.2. 추진 배경
1950년대 이후 대구는 값싼 인건비와 경부선을 비롯한 편리한 교통망을 기반으로 섬유산업이 급속히 발전했다. 1960년대 정부가 수출을 위한 경공업을 집중 육성하면서 대구에는 염색산업단지가 조성되었고, 섬유산업은 1990년대까지 대구 경제의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따라 대구의 인구도 빠르게 증가하여 1955년 48만 명에서 1970년 106만 명, 1985년에는 202만 명으로 성장하는 등 산업 발전과 인구 증가가 맞물려 진행되었다.그러나 대구의 섬유산업은 고부가가치 제품보다는 저임금 노동력에 의존하는 방직산업 중심이었기 때문에 1990년대 이후 소득 수준 상승과 글로벌 경쟁 심화로 인해 급격한 쇠퇴를 맞았다. 동남아와 중국 등지로 생산기지가 이전되면서 경쟁력을 잃었고, 중국산 섬유제품이 내수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하며 대구 섬유산업의 하락세가 가속화되었다. 산업 다변화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상황에서 대구 경제는 1990년대 초반부터 전국 평균을 밑도는 성장률을 기록하기 시작했으며, 섬유산업 지원을 위한 1986~1997년 산업합리화 업종 지정과 2,700억 원의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효과는 미미했다. 결국, 1990년대 중반 이후 대구의 인구 증가도 정체되었으며,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인해 해외로 이전하지 못한 섬유기업들까지 연쇄 도산하면서 섬유산업의 침체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대구 섬유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전환하려는 정책이 추진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사업이 밀라노 프로젝트였다. 1996년 총선을 계기로 대구·경북 지역을 위한 대형 국책사업이 필요하다는 정치적 판단이 작용했고, 대구의 산업구조 개편을 위한 국가적 지원이 본격화되었다. 특히, 당시 섬유산업이 대구 전체 매출의 50%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했기 때문에, 지역 유권자의 표심을 고려한 정책적 접근이 이루어졌다는 분석도 존재한다.
밀라노 프로젝트는 침체된 대구 섬유산업을 패션 중심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발전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김대중 정부는 자민련과의 연정을 유지하고 보수적 성향이 강한 대구·경북 지역의 민심을 달래기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섰으며, 경제기획원 차관과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한 문희갑 대구시장의 중앙정치권 내 영향력도 사업 추진의 동력이 되었다. 이에 따라 섬유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탈바꿈시키려는 정책 방향이 구체화되었으며, 대구 경제 회생을 위한 국가 차원의 노력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2.1. 추진 상황
1단계로 1998년에서 2003년까지는 무려 6,800억원(국비 3,760억원, 지방비 515억원, 민자 2,615억원)의 혈세를 쏟아부어 섬유산업을 회생시키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였다.2단계 사업은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추진되었으며 혈세 1980억이 투입되었다. 섬유뿐만 아니라 메카트로닉스와 한방, 모바일산업 등으로 확대됐다. 이 시점부터 사실상 밀라노프로젝트는 죽은 프로젝트가 되었다.
3단계 사업은 2008년부터 추진되었다. 이명박 정권의 탄생으로 간신히 살아난 해당 사업에는 400억원의 예산이 투입되었다.
2005년 사업 초기 대구시의 요구에 의해 주어진 권한은 대부분 박탈되어 산업자원부가 다시 맡는 형태로 돌아갔다.
3. 결과
2005년 감사원은 지난 달 31일 대구시가 섬유산업 진흥을 위해추진해온 일명 ‘밀라노 프로젝트’의 핵심인 패션어패럴밸리 조성사업에 대해 “타당성을 면밀히 분석,사업의 추진 여부를 전면 재검토 하라”고 통보했다. 사업을 시작한지 5년째인 2004년 8월말까지도 사업 진척률은 1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한국개발연구원(KDI)·산업연구원은 ‘4대 지역 진흥사업 평가와 후속사업 기본방향 연구’에서 “패션어패럴밸리를 조성하겠다는 사업은 현실성이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대구 지역 내 봉제업체가 지나치게 적어 해외 기업 유치는커녕 국내 비(非)대구지역 기업 유치도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각종 비리로 인해 자금은 떼먹히고 시장은 구속되고 대기업 유치도 실패하는 바람에 결국 밀라노 프로젝트는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진보적인 패션과 보수적인 지역정치권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결과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을 정도. 결국 대구의 인구는 인천에게 밀리기 시작하여 전국 제4의 도시로 전락해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건진게 있다면 섬유산업단지 이시아폴리스 정도이다. 이시아폴리스엔
이같은 혹평에도 불구하고 대구시와 일부 섬유 관련기관들은 밀라노프로젝트를 아직 실패라고 단정짓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구조개선 정책 추진때의 산업 성과는 초기에 악화됐지만 이후 10년에 걸쳐 개선 성과가 나타나는데 밀라노프로젝트도 이 경우에 속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14년 뒤, 이 사업과 관련해 밀라노와 맺었다던 자매결연은 '거짓'으로 드러났다.
밀라노 프로젝트 전면 재검토(2005.03, YTN)
당시 대구의 섬유패션도시 이미지를 홍보하기 위해 2000년에 '패션이'라는 마스코트를 만들기도 했다. 물론 아직까지도 이 '패션이'를 잘 아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대구시에겐 일종의 흑역사가 된 캐릭터이다.
대구 FC 관련 짤방 "쉬메릭 선수"가 이 밀라노 프로젝트의 흔적.
4. 왜 실패했나
‘밀라노 프로젝트’는 막대한 예산 투입에도 불구하고 실패로 귀결되었다. 사업 초기 기대와 달리 대형 섬유업체들은 몰락했고, 중소기업들은 정체되었으며, 패션산업은 거의 형성되지 않았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지원이 이어졌으나,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에서 대표적인 예산 낭비 사례로 지적되었고, 각종 비리 문제까지 불거졌다.이 프로젝트가 실패한 주요 원인은 실행 주체와 전략 부재, 비효율적인 예산 분배에 있었다.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구체적인 방안 없이 지원금만 투입되었고, 실질적인 산업 생태계 조성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또한, 패션산업이 창의성과 유행 주도로 성장하는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인위적으로 추진되었다는 점도 실패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더 큰 문제는 사업이 정치적 논리에 의해 추진되었다는 점이다. 김대중 정부의 ‘동진(東進) 정책’과 당시 대구시장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물리면서 경제적 타당성보다 정치적 필요성이 우선시되었다. 결과적으로 산업 정책이 본연의 목적을 잃고, 정치적 목표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면서 효과적인 실행이 어려웠다.[1]
이는 산업 정책에서 정치 논리가 경제 논리를 앞설 경우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보여준다. 정책이 정치적 목적에서 출발할 수는 있지만, 실행 단계에서는 철저한 경제적 분석과 전략이 수반되어야 한다. 또한, 지역 특성과 산업의 적합성을 고려한 맞춤형 접근이 필요하며, 예산은 단순 지원금이 아니라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실질적인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
[1] 반면, 부산의 패션산업은 정부 지원 없이도 활성화되었으며, 서울 동대문, G밸리, 신사동 가로수길 등은 시장과 소비자가 주도하는 자연스러운 성장 구조를 형성했다. 밀라노 프로젝트의 예산 일부라도 이러한 패션 중심지에 투자했다면 더 효과적인 결과를 낼 수 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