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2-04-14 07:46:05

박규수(폭군 고종대왕 일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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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행적3. 평가

1. 개요

폭군 고종대왕 일대기의 등장인물이자 개항을 갓 시작하게 된 조선의 중심급 조연이다. 직급은 평안도 관찰사 → 영의정 → (대한제국 건국 이후) → 총리대신이 된다.

2. 행적

원래 역사처럼 효명세자헌종의 죽음과 안동 김씨의 전횡으로 평안도 관찰사로 재직 중이었지만 때마침 고종으로 환생된 주인공이 부국강병을 이루기 위해서 박규수 같은 인재들을 떠올리게 되었고, 마침내 중앙 요직에서 중용받게 된다.

그러나 이 시기의 조선은 청나라와 한창 대립 중이었고, 이때 박규수는 고종이 청과의 전쟁을 통해 흔들리는 국운을 다시 일으키려는 얘기를 직접 듣게 된다. 박규수는 고종에게 "나라와 백성들을 판돈으로 삼아서 도박을 하겠다는 겁니까?"며 크게 반발했지만 고종이 "그럼 어쩌자는 말이오? 이대로 부국강병의 마지막 기회를 놓쳐서 천천히 망하든 북적 오랑캐들에게 패하여 빠르게 망하든 똑같지 않소?" 라는 논리에 설득당하고, 양아버지 익종의 유지를 받들어 나라를 되살리겠다는 이형의 다짐에 감격하여 통신사로서 일본으로 건너가 서역인 공사들을 만나 청과의 전쟁에 조선을 지지해줄 것을 부탁했다.

이후, 제1차 조청전쟁이 조선의 승리로 끝나게 되고, 김좌근의 난이 진압되면서 박규수는 영의정으로 파격적인 승진. 미국 유학생들을 겸한 사절단 대표가 된다. 미국으로 떠나는 날에 이형이 직접 그를 독려해주자 박규수는 더욱 의지를 불태운다. 그러다가 반쯤 국외추방된 신세인 민치상과도 친구로서 잘 지내지만 그의 청탁에는 버거워한다. 그렇게 유학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칭제건원을 마친 대한제국의 첫 번째 내각 총리대신에 임명되었으며 이하응에게 "열강은 국내불만을 밖으로 돌리기 위해 식민지를 만든다."라고 알려주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하응이 고종에게 식민지라는 것을 만들자는 제안을 했지만 해군력이 빈약하고, 식민지를 만들고 유지할 돈이 없다고 기각당한다.

그렇게 이형이 내세운 범아시아 조약기구 1차 회담 이후 황후가 미리 짠 계획에 협력하여 이형이 강제로 불참석당하고 그 대신 박규수가 대한제국 대표로서 연회에 참석했는데, 작중 언급에 따르면 서양물을 먹기는 했어도 '망나니 같은 비행 청소년 황제'인 이형보다 신사적인 데다 사대부적인 감성이 남아서 예의도 바르고 말도 잘 통하는 박규수의 등장에 범아시아 조약기구 가맹국의 모든 정상들이 그를 더 반겼다고.

이후, 종교의 자유를 선포한 이형에게 대표로 나서서 이건 아니지 않냐고 하다가[1] 그에게서 허계 이후로 최초로 논리적인 설명과 설득[2]을 듣고 이에 크게 감동하여 국정 운영에 대해 식어가던 열의를 다시 불태운다. [3] 그리고 유림들이 적극적으로 개화에 나서는 걸 보면서 그들이 사고치지 않을까 걱정하는 김홍집에게 "너를 비롯한 유학파 관료들이 그들을 잘 지도해야 한다."라는 조언을 해주며 그를 후계자로 챙겨주고, 이를 계기로 그동안 해외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관료들에게 실무 경험을 쌓게 하려는 듯하다.

세계대전이 시작되려는 시점부터는 내각의 수장으로서 중국 전선에 대한 방책을 이형에게 물어보는데, 이 과정에서 그가 슬슬 태어날 자신의 자식과 황후를 걱정하는 걸 연륜으로 직감하면서 자신이 모시는 황제가 인격적으로 성숙하길 기원하는 등 허계의 뒤를 이어 그를 인간적으로 걱정해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지만, 천명대전에 또 다시 친정을 하겠다는 이형 때문에 뒷목을 잡으며 회의감에 빠지고는 전쟁이 끝나고 수습만 마치면 은퇴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천명대전을 위해 이형이 친정을 간 동안 국내정치를 살피면서 조선애국당의 존재에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이형을 대신하여 베를린에서 열리는 종전협의에 대한제국 전권대사로 파견된다.

그리고 황후의 부탁을 받았는지, 베를린에 파견되기 전에 김홍집을 태자의 스승으로 추천해 준 듯하다. 동아시아의 무술대회가 끝나갈 무렵에 그는 베를린에 도착. 세계대전으로 원하는 목적을 이루지 못한 각국의 열강들의 신경전을 보게 되고, 그 가운데에서 자신이 받는 푸대접에 대한제국의 지위가 아직도 부족하다는 걸 느끼고는 근심에 잠긴다. 그렇지만 옆 방에 투숙하고 있던 러더퍼드 헤이스 미국 전권대사의 격려와 제안에 용기를 얻고 러시아 제국 전권대사인 알렉산드르 대공과의 협상에 나서서 캄차카 반도 거래를 제안받는다. 여기에 박규수는 한-러 국경 확정의 일환으로 캄차카를 구매하는 것에 더해 예니세이 강을 경계로 시베리아를 반분하자고 역제안을 하고 이미 극동을 포기하고 유럽에 올인하기로 결정한 러시아가 여기에 동의한다. 그러나 러시아측이 본체인 캄차카 구입에 900만 달러라는 터무니 없는 가격을 고집하자, 잠시 난처해하지만 곧바로 일본에 그 부담을 모조리 떠넘긴다는 생각을 떠올린 그는 러시아의 가격을 받아들이면서 캄차카 거래를 성사시킨다. 이로서 캄차카가 일본 영토가 되는 대신 그 돈은 일본이 지불하며 캄차카를 제외한 예니세이 강 동쪽의 모든 러시아 영토가 대한제국령이 되었다. 쌩돈 한 푼 안들이고 극동의 광대한 영토를 얻어내는데 성공하면서 대한제국 입장에서 서희를 뛰어넘는 역사에 길이 남을 업적을 세운 셈.

이후, 금융공황 사태에서 대한제국에서 제공하는 금괴를 받은 영국에 의해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귀국[4]하나, 현장에 있던 이형에게 평소보다 깍듯이 예를 차려 인사를 올리고는 은퇴 의사를 밝힌다. 그간 그가 자기 때문에 누구보다 고생했을 것을 잘 아는 이형이기에 정월에 북경에서 개최될 중국 번왕들의 임명식 때까지라도 있어달라는 부탁을 받으며 사의를 윤허받는다. 그렇지만, 지금의 이형에게 매우 필요한 인물이기에 국가원로 대접평생직장을 받으며 이따금씩 이형이나 내각 관료들의 자문역을 하거나 전권대사급 특사 파견, 대학 등에서의 후진 양성 같은 일을 할 듯. 대기업으로 치면 고문급으로 물러나더라도 완전히 국정에서 손을 놓지는 못할 가능성이 높은 것.

그리고 김홍집을 만나보길 원하며 이것저것 묻는 이형에게 그의 장단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를 시험하고자 부른 황제의 곁에서 혹여나 자신의 애제자가 실수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지켜본다. 그 과정에서 김홍집이 민주주의에 대한 언급으로 자신의 신경을 긁는 말을 하여 그를 쏘아보기도 하지만, 오히려 이형은 그런 그를 맘에 들어하여 정식으로 태자태사 일을 맡기며 박규수의 후계자로 인정했으니 맘 놓고 일선에서 물러날 듯.

겨울이 되면서 한성에 홍역이 번지자 출범을 준비하는 범아시아 조약기구 산하 극동 보건기구에 대해서는 베를린 회담에서 배우고 경험한 다극체제를 토대로 범아시아 조약기구 전체를 아우를 수 없는 대한제국의 객관적/총체적 국력에 비해 조약기구 내 주도권이 너무 강함을 지적하며 오래 전부터 서양과 교류하면서 서양의학에 밝은 데다 조약기구 내의 No.2를 노리는 일본에 극동 보건기구의 주도권을 넘기자고 제안한다. 한편으로는 본국으로 압송되어 온 민치상을 보고는 그에 대한 처분을 이형과 의논한 끝에 외교관에 대한 인식과 선호도, 기강 등을 모두 고려하여 시베리아 유배 노역형을 권한다.

연말 즈음에는 대만에서 온 국서를 보고 이형과 함께 대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강의 상황을 추론하고, 토마스 공사를 접견한 이형을 통해 대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대응방안을 의논하나, 궁중암투에 가까운 사태의 특성상 이 방면에는 영 젬병인 걸 스스로 인정한 황제(...)에 의해 황후와 만나서 구체적인 방안들을 논의하고 실행에 옮긴다.

정월에 열린 책봉식 뒤에는 이형과 독대하여 은퇴 의사를 바꾸지 않았음을 밝히고, 허계처럼 그가 낙향하는 길에 세상을 뜨는 걸 볼 수 없었던 이형에 의해 총리직에서 물러난다. 은퇴하는 과정에서 이형이 그에게 전답 등을 챙겨주려했지만, 그렇게 되면 토지 개혁의 의미가 퇴색되는 걸 걱정하여 이를 고사했고[5], 유일하게 받은 은퇴 선물은 그가 수원으로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매진할 거라 하여 이형에 의해 반강제로 수여된 수원후 작위였다고 한다.[6] 그리고 박규수가 은퇴한 이후, 임시 총리는 유홍기가 되었다.

3. 평가

이형에게 완전히 무시당하는 다른 장관들에 비해 이형과 그나마 회의라거나 설명을 듣는 특별한 위치. 이형이 이 정도로 특별대우를 해주는 대신은 이하응과 허계 등을 제외하면 없었다. 애당초 작품 소개 글에서부터 "방해하는 놈들은 모조리 죽이고 억지로라도 밀어붙이자." 그러나 그런 박규수도 이형의 생각을 완전하게 이해하지 못하기에 왕이 사실은 자신을 그냥 자기 정책을 시행하는데 필요한 부품 정도로나 여기는 게 아닌가 하고 회의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에 자기 후임만큼은 자기같은 회의감을 느끼지 않길 바라면서 김홍집을 후임으로 세울 생각을 하지만 김홍집은 영국 유학 이후로 영국을 이상적인 국가로 생각하는 경향이 심해져서 조금 못 미더우니 자신이 어느 정도 교육을 해야겠다고 다짐한 상태.[7]

여기까지면 그냥 황제의 주요 말상대에 지나지 않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그래도 총리로서의 능력은 상당하다. 통신사의 신분으로 일본으로 건너가 다른 조선인 일행들이 게이샤의 유혹에 넘어가는 와중에도 홀로 꿋꿋하게 부동심을 유지하여 쇼군인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초대한 서역인들을 만나고 그들로부터 조청전쟁에서 조선을 지지해달라는 부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

국제 정세를 파악하는 것도 능하다. 서역인들이 어떤 사고를 하며 어떤 이치에 따라 나라를 움직이고, 세상을 좌지우지하는가를 깨닫고 그것을 통해 어떤 식의 스탠스를 취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해내며 국정을 이끄니 이형의 신임을 받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부담없이 시베리아 동부를 구입하게 되면서 후대에 대한제국 역사상 최고의 명재상 후보 0순위에 들 수 있을 전망이다.



[1] 박규수 또한 유림이기에 굳이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2] 무지한 백성들을 계도하는 것이 유림일 텐데 그렇다면 불교의 잘못된 가르침에 이끌리지 않게 하면 될 것을 그것조차 못하느냐고 말했다. 게다가, 학교도 많이 짓고 있는데 그것도 못하면 그냥 붓을 꺾으라는 신랄한 말은 덤.[3] 이때 이형은 갑자기 왜 의욕적이냐고 당황한다.[4] 영국령 인도에 기항했을 때 최신형 쾌속 기선으로 환승되고, 동방함대 함선들의 호위를 받으며 인천항에 입항한다.[5] 무슨 소리냐면 이하응이 조선의 섭정공 시절 때 대지주들인 양반의 땅을 유상몰수한 뒤에 그것을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 나눠줬는데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자신이 전답을 받게 된다면 애써 토지 개혁을 한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까 걱정한 것이다.[6] 이마저도 거절했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의 평판이 인색하다고 퍼질 거라는 이형의 억지에 어쩔 수 없이 받았다고 한다.[7] 하지만 강남 사태로 친영파는 싸그리 망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