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19:51:03

박동이

성명 박동이(朴同伊)
이명 박영원(朴永源)
생몰 1874년 9월 19일 ~ 1941년 4월 22일
출생지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
사망지 경상북도 영덕군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박동이는 1874년 9월 19일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창수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19일 신기동 구장 이현설(李鉉卨)과 이수각(李壽珏), 이현우(李鉉祐), 권재형 등이 창수면에서 벌인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했다. 그는 150여 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치며 행진했고, 오후 4시경 창수경찰주재소에 이르러 400명의 군중을 모았다. 이후 군중과 함께 주재소를 습격해 건물을 파괴하고 기물과 서류를 파괴했으며, 객사 및 주임순사 타카기 이사부로(高木伊三郞)의 숙소와 소유물, 조선인 순사보 송상구(宋相九), 권찬규(權燦奎)의 비품 등을 파괴했다. 또한 권총 3정과 대검 2개를 빼앗아 파기한 후 일본인 순사의 가구, 의류, 식기까지 완전히 파기하고 오후 7시경 자진 해산했다.

그러나 이후 일제의 대대적인 검속 때 체포되었고, 1919년 6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요죄, 공무집행 방해, 건조물 손괴, 공문서 훼기, 상해 및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이후 고향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41년 4월 22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박동이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