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02-14 20:53:15

박동진(군인)

<colbgcolor=#000><colcolor=#fff> 박동진
朴東鎭
출생 1930년
경상북도 문경
사망 1950년 8월 20일
영흥도
복무 대한민국 해군
최종계급 해군 일등병조
복무 기간 1949 ~ 1950
1. 개요2. 생애 및 군 경력 3. 공훈4.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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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박동진(朴東鎭, 1930년 ~ 1950년 8월 20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

2. 생애 및 군 경력

해군 입대 및 복무
박동진은 1930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출생하였다.
1949년 1월, 해군 신병 12기로 입대하였으며, 6.25 전쟁 발발 후 해군 1함대 육전대(현 해병대) 1소대 1분대장으로 참전하였다.

6.25 전쟁 참전
덕적도 및 영흥도 탈환 작전 (1950년 8월 18일~20일)
6.25 전쟁 당시, 북한군은 서해 연안 도서를 점령하여 민간인을 학살하고, 아군 함정의 동태를 감시하는 거점으로 활용하였다.
이에 대한민국 해군은 인천 상륙작전을 준비하기 위해 서해 도서 탈환 작전을 전개하였다.
해군 함정 승조원들로 편성된 육전대(해병대 전신)가 투입되었다.
1950년 8월 18일, 해군 함포 사격 지원을 받으며 덕적도 상륙 작전이 개시되었다.
박동진이 분대장으로 있던 육전대 1소대는 선봉에서 전투를 수행하였다.
산악지대로 후퇴하는 북한군을 격파하며 덕적도를 완전 점령하는 데 성공하였다.

영흥도 탈환 작전 및 전사 (1950년 8월 20일)
8월 20일 새벽, 해군 육전대는 두 번째 목표인 영흥도 탈환 작전을 개시하였다.
덕적도를 잃은 북한군은 영흥도에서 격렬하게 저항하였다.
박동진과 그의 분대는 전투 중 국군 포로 4명을 구출하며 적을 압박하였다.
적의 저항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박동진은 부대원들에게 전진 중지를 지시한 후 단독으로 돌진하였다.

수류탄을 투척하며 적 기관총 진지로 돌입하였으나, 두 번째 수류탄을 투척하는 순간, 적의 총탄에 가슴을 관통당해 전사하였다.
그의 희생을 본 이삼재 부분대장이 그를 대신해 돌격하였으나, 이삼재마저 적의 집중 사격으로 전사하였다.
분대장과 부분대장이 연이어 전사하자, 격분한 해군 육전대 전원이 적진으로 돌격하였고, 치열한 백병전 끝에 영흥도를 완전히 탈환하는 데 성공하였다.
박동진의 희생은 영흥도 탈환을 결정짓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박동진 일등병조의 희생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51년 9월 28일,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또한 2016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그를 "8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태극무공훈장(1951년 9월 28일, 사후 추서)
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2016년 8월)

4. 참고 자료

6·25전쟁과 한국해군작전, 국방부, pp.242∼257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6.25 전쟁영웅 박동진 해군 일등병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