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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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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9대 대통령경호실장
<colbgcolor=#003764><colcolor=#fff> 대한민국 제19대 국가보훈처장
박상범
朴相範 | Park Sang-beom
파일:박상범 경호실장.jpg
출생 1943년 4월 10일 ([age(1943-04-10)]세)
충청북도 옥천군
재임기간 제9대 대통령경호실장
1993년 2월 25일 ~ 1994년 12월 22일
제19대 국가보훈처장
1997년 3월 6일 ~ 1998년 3월 3일
학력 서울성남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 학사)
군사 경력
임관 OCS (해병대간부후보생 33기)
복무 대한민국 해병대
1964년 ~ 1969년
최종 계급 대위 (대한민국 해병대)
최종 보직 진해기지사령부 경비중대장

1. 개요2. 활동 내역3. 그 외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이다. 대통령경호실에서 오래 근무하였으며 대통령경호실장, 국가보훈처장 등을 역임하였다. 대통령 경호원으로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을 보좌한 역사의 산 증인이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매우 총애한 경호원으로 인지도가 높다. 아래 서술되어 있듯,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현장들을 몸소 겪은 인물이다.

2. 활동 내역

1943년 충청북도 옥천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상경하여 서울성남중학교, 서울성남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하였다.

1964년 대학 졸업 후 해병간부후보생으로 해병대 소위로 임관, 5년간 복무하고 대위로 전역하였다. 청룡부대 5대대 106mm 무반동총 소대장으로 베트남전에도 참전했다.

전역 후 사법시험 공부를 하러 절에 들어갔는데 청와대 대통령경호실의 연락을 받고 경호실 민간공채 1기로 경호관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그의 무술 실력은 청와대 경호실 내에서도 독보적이었다. 본인의 회고에 의하면 대략 중학교 시절부터 유도, 검도, 합기도 등을 수련했다고 한다. 합기도 7단이고 다른 무술까지 합하면 10단이 넘는다고 한다. 군 입대 전에는 6개월 정도 산에 들어가서 수련을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차지철 경호실장 시절, 통일교 계열의 무술단체가 청와대에서 시범을 보인적이 있는데 박정희 대통령이 그 무술단체의 안 모씨 무술실력을 칭찬했다고 한다. 그러자 경호실 자존심에 금이 갔다고 생각한 차지철 경호실장은 그 안 모씨와 청와대 경호실 경호관과의 실전 대련을 추진했다. 이게 말이 대련이지 약속 대련이 아니라 실제로 한쪽이 쓰러질때까지 붙는 말 그대로의 데스매치였다(...) 그리고 차지철이 경호실의 명예를 건 대련 선수로 지목한 사람은 당연히 박상범 경호관(...) 그나마 대통령 앞에서 피 보이며 싸우는게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와서 다행히(?) 실제 대련은 성사되지 않았고 서로 시범만 보이고 끝났다고 한다.[1]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박정희 대통령과 박근혜,박근령, 박지만 3남매가 모두 참관하는 자리에서도 박상범 경호관이 나가 무술 시범을 보일 정도였다. 이는 1977년, 청와대 경호원들의 무술 연마를 위한 연무관 준공식 기념 무술시범인데, 비하인드가 있다. 준공식 직전 박정희 대통령이 차지철에게 TV를 보니 차력쑈로 돌도 부수는 사람이 있던데 경호실엔 그럴 수 있는 사람 없나? 라고 묻자 자존심이 상한 차지철이 박상범을 시켜서 그 차력쑈의 대가인 안씨 형제와의 대결을 준비한 것. 근데 의욕 넘치는 차지철의 지시로 거의 안씨 형제가 박정희 앞에서 끔살당하는 수준의 살수 연습을 하게 됐고, 전두환이 영애들 앞에서 피바다 되면 각하 심기가 말이 아닐 것이라고 직언하여 대련은 취소되고 무술 시범을 각각 보이는 선에서 마무리됐다. 박정희는 박상범의 무술실력을 보고 대단히 흡족해했다고 한다.

파일:0506_108_3.jpg

1974년 박정희 저격 미수 사건 당시 현장에 있던 경호관 중 한 명이다. 사건 직후 권총을 뽑아들고 단상을 지키는 모습으로 널리 알려졌다. 영부인 피살에 대한 책임 차원에서 현장에 있던 다른 경호관들과 함께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반려되었다.

파일:external/www.chogabje.com/20132418423195561.jpg

많은 사람들이 맨 위 사진에서 총을 정조준하고 객석 쪽을 겨냥하는 사람을 박종규 경호실장으로 착각하는데, 사실은 박종규 경호실장이 아니라 박상범 당시 경호관이다. 박종규 경호실장은 이 때 총을 바닥에 떨어뜨린 상태였고, 2번째 사진에서 박상범 경호관 바로 옆에 행사기록부를 들고 있는 사람이 바로 박종규 경호실장이다. 그리고 2번째 사진 우측 하단을 자세히 보면 박종규 경호실장이 떨어뜨린 권총도 보인다.[2]

박정희 대통령은 군인 출신답게 총성이 울리자마자 재빨리 연단 뒤로 엄폐했고, 바로 앞에 있던 박상범 경호관에게 "박군 우리 내자(부인) 어떻게 됐나"라고 물어봤다고 한다. 박상범 경호관은 일단은 "별일 없으신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위의 사진 두 장 중에서 아래 사진이 박정희 대통령이 육영수 여사의 안부를 물어봐서 확인하기 위해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와중에 찍힌 것이라고 한다.

그 이후에도 박정희의 신임을 받으며 최근접 경호를 계속 담당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친밀감을 담아 늘 박상범 경호관을 "박군"이라 불렀다. 박정희 대통령이 저녁 행사에서 술이 과해서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면 박상범 경호관이 대통령을 업어서 모시기도 했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업혀가면서 기분이 좋았던지 "요놈아 요놈아" 하고 박상범 경호관 머리에 꿀밤을 먹였다고(...)[3] 박정희가 가장 총애했던 경호관이기도 했고, 늘 최 근접에서 대통령을 경호했기 때문에 박정희 대통령의 영상이나 사진에 박상범 경호관이 같이 찍혀있는 경우가 대단히 많다.
파일:0506_108_5.jpg
1975년 영동-동해 고속도로 개통식에서 박정희 대통령과 박상범 경호관

가장 왼쪽이 박상범 경호관, 한 사람 건너 순서대로 차지철 경호실장, 박정희 대통령, 김재규 당시 건설부장관(그 뒤에 중앙정보부장이 된다), 그 옆에 키 큰 사람이 전경환(전두환 대통령 동생) 당시 경호관,[4] 그 옆이 영애박근혜이다. 박근혜 한 사람 건너 얼굴만 보이는 사람은 노태우 당시 경호실 행정차장보이다. 제4~5공화국의 주역들이 모두 모인 실로 역사적인 사진이다.



1978년 박정희 대통령의 전방(제1보병사단 지역) 순시를 담은 대한뉴스 제1193호. 영상 시작장면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오른손 쪽에서 같이 걸어 올라가는 경호관이 박상범이다. 당시 제1보병사단장이었던 전두환, 대통령 경호실장인 차지철, 국방부장관 노재현 등도 등장하는 진귀한 영상이다.

박상범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박정희 대통령은 1978년에 "박군만 따라오라"고 하여 산책을 나가면서, 집권 20년째(2년 후)는 하야하겠다는 개인적인 구상을 밝히기도 했다 한다.출처

1979년 10.26 사건 때는 중앙정보부 관할의 궁정동 안전가옥에 박정희를 경호하러 갔다가, 중앙정보부 경비원들한테 총격을 받고도 부상만 입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이 때엔 대통령 경호관들이 중정 경비원들에게 경호를 위임하고 자기들은 식사를 하며 쉬는 것이 관례였다.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차지철 경호실장은 서로 잡아먹지 못해 으르렁대는 사이였지만, 원래 그쪽 세계가 다 그렇듯 그 밑의 대통령 경호관들과 중앙정보부 직원들은 거의 다 친구들이거나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당장 박선호 중앙정보부 의전과장과 정인형 청와대경호실 경호처장은 해병 동기로 친형제보다 더 친하단 소리를 들을 정도였고, 또 박선호는 경호부처장 안재송과도 해병 선후배로 절친한 사이였다. 중앙정보부 안가 직원들은 박상범 경호관을 형이라 부르며 따랐다. 10. 26 사건은 권력 다툼의 여파에서 친한 사람들끼리 총질을 해야 했던 비극인 것이다.[5]

박상범은 식당에서 중정 직원들인 안가 요리사 이정오와 식당차 운전수 김용남, 당일 대통령 차량 운전수 김용태와 다른 경호원 김용섭과 식사를 하던 중 김재규의 부하인 안가 경비조장 이기주와 경비원 유성옥이 가한 총격에 부상을 입고 쓰러지며 머리를 식탁에 부딪혀 기절했다.

이 긴박한 순간을 본인의 증언으로 직접 들어보자.
"네 발을 맞았습니다. 총을 뽑으며 벌떡 일어난 상태에서 한 발은 오른쪽 척추 옆을 관통하고 다른 한 발은 벨트에 찬 실탄에 맞아 튕겨 나가고. 두 발은 웃옷 좌우를 아슬아슬하게 뚫고 나갔죠.”
출처

그야말로 천운이 따랐다고 밖에 할 수 없다. 총상을 입었는데도 자연적으로 지혈이 되면서 과다출혈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용태와 김용섭은 그 자리에서 죽거나 확인사살 때 죽었으나, 그는 바로 기절해 죽은 것처럼 보인 데다 그의 옆에 이기주와 유성옥의 무차별 사격으로 부상을 입은 중앙정보부 직원 이정오와 김용남이 있어서, 나중에 궁정동 안가 경비원 김태원이 확인사살을 주저해 살 수 있었다.

박상범은 만 하루를 시체들 틈에 끼어 기절해 있다가, 다음날 현장을 장악하러 온 보안사령부 요원들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후송, 목숨을 건졌다. 가장 먼저 병문안을 온 사람이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다고 한다. 당시 전두환 합동수사본부장에 의해 행해진 10.26 수사 중간발표(28일 오후 4시)에 의하면 박상범도 사망한 것으로 발표되었다.

이후 회복된 뒤 최규하 대통령 시기에 다시 복귀하여 초토화된 대통령경호실을 다시 일으켰고, 그 뒤 전두환 정부에서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경호실에서 계속 근무하며 대통령 근접경호를 담당했다. 전두환 정부 당시의 영상에도 대통령의 외부 행사에 박상범 경호관이 같이 촬영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1983년 KBS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 중에 이산가족과 방송국 관계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KBS를 찾은 전두환 대통령. 영상 첫 장면에서 계단을 오르는 대통령 오른손 쪽에 있는 사람이 박상범 경호관이다. 왼쪽은 이순자 여사.

1983년 아웅산 묘소 폭탄 테러의 현장에도 그가 있었다. 당시 경호실 수행과장으로 전두환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여기서도 천운으로 폭발을 피했는데 전두환 대통령이 탄 차 바로 뒷차에 타고 있었다고 한다. 영빈관에서 아웅산 묘소까지는 차로 불과 10여분 거리였고, 자그만한 언덕을 하나 넘으면 아웅산 묘소에 도착하는데 그 언덕 막 넘어서는 순간 폭발이 일어나서 부랴부랴 차를 돌려 대통령을 대피시켰다.

전두환 대통령은 박상범 경호처장을 국회의원에 출마하도록 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으나 본인이 거절했다고 한다. 박상범은 전두환 대통령 임기 말에 경호실에 사표를 냈는데, 대통령이 직접 불러 "노태우를 좀 도와줘라"고 부탁하면서 사표 수리를 반려하여 결국 노태우 정부 시절에도 경호실에서 중책을 계속 담당하게 되었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자 청와대 대통령경호실장에 임명되었다. 당시 비 직업군인 출신으로서는 첫 대통령경호실장이라 하여 상당히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차남 김현철의 월권 문제에 대해 직언하다가 1994년 대통령경호실장직에서 경질되었다. 본인이 나중에 밝힌 바에 따르면, 김영삼 대통령의 사설 경호원들을 청와대 경호실에 특별 채용해달라는 부탁을 김현철 측으로부터 받았는데, 박상범 경호실장은 "경호실 직원이 되고 싶으면 시험을 통해 들어오는 방법밖에 없다"고 거절했다고. 그 외에도 김현철 측의 전횡을 보고하면서 갈등을 빚었다고 한다.

이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에 임명되어 1997년 3월까지 역임하였다. 1997년 3월부터 1998년 2월까지 국가보훈처장을 역임하였다. 이때도 김영삼 대통령이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하기도 했으나 역시 거절했다고 한다.

2021년 노태우 前대통령 빈소를 찾았다.#

2024년 기준, 현재 생존중인 몇 안되는 박정희 대통령의 최측근이기도 하며[6],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총 다섯 명의 대통령을 최근접에서 경호한 대통령경호실의 산 증인이자,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초대형 사건에서 모두 현장에 있었던 엄청난 이력의 인물. 늘 대통령 가까이에 머무르던 사람이다 보니 현재까지 남아있는 사진도 많다. 또 수많은 천운을 거쳐 여러 위험에서 살아남은 능력자이기도 하다. 진정한 생존왕.

3. 그 외

이력을 보면 성격도 괄괄하고 말보다 주먹이 먼저 나갈것 같지만, 나중에 국가보훈처장 퇴임하고 인터뷰했던 여러 기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몇시간 동안 인터뷰하는 내내 자세가 흐트러지지도 않고, 태도나 언행 또한 매우 점잖고 진중한 말 그대로의 "신사"였다고 묘사했다. 10.26 사건에 대해 오랫동안 입에 담지 않았었는데 제18대 대통령 선거가 이루어지던 당시 이 일이 객관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면서 기자가 반 년 동안 설득하자 응했다고 한다. 당시 칠순의 나이임에도 무인의 풍모가 느껴졌고 매우 다부진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문민정부에서 일하던 당시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는데 김일성이 죽는 꿈을 꿔서[7] 이를 아내와 주변사람들에게 말했더니 친구들은 도사냐라고 비웃었지만 얼마 후 정말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고 한다. 본인은 그에 대해 '김일성이 죽었을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거지?'라고 몰입해서 고려하다 보니 그리 된 거 아닐까 생각한다고 한다.

박근혜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고 하는데, 대통령 개인의 경호와 가족의 경호는 별개라서 공식행사가 있을 때나 박근혜가 박정희를 만날 때만 근처에서 마주치는 정도였다고 한다. 무언가를 기록하는 것과 의연한 건 아버지를 닮았다고 여긴 모양이지만 실상은...

여러 대통령의 곁에 있으면서 권력의 무상함을 많이 봐온 탓인지 대통령들의 정치 입문 제안을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친인척 비리에 대해서는 대통령 본인도 통제하고 싶어도 가족 문제인 만큼 생각대로 안 되는 경우가 많으니 어쩔 수 없는 면이 있다고 한다.[8] 대부분의 경호실장은 권력화되어 말로가 비참한 경우가 많지만 그는 권력에 손대지 않고 은퇴 이후 공직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온한 노후를 보낼 수 있었다.

박상범을 2011년에 인터뷰한 기자는 그를 보면서 지금은 이미 박제화된 박정희 시절의 체현이지만 직업인으로서 가져야 할 몰입과 프로의식을 느낄 수 있었으며 그 시대 사람들이 모두 그같은 자들이었다면 무에서 유를 만든 박정희 시대의 기적은 박정희 한 사람만이 아닌 그와 같은 사람들이 모두 힘을 합쳐서 만들어낸 것이라고 평했다.

제4공화국에서는 레이 송금식이 그를 연기하였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인터뷰 기사에 보다 많은 내용이 실려있다.

월간조선 2005년 인터뷰
동아일보 2011년 인터뷰


[1] 이 대결을 만류한 사람이 당시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있던 전두환이라고 한다.[2] 이 사진에 대한 일화가 하나 있는데, 이때 유일하게 사건을 생생하게 촬영한 사람이 바로 당시 조선일보편집국 사진부였던 임희순 단 1명이었다. 당시 사진기자들은 엄숙한 경축행사장에서 경호원들의 눈치도 있고 해서, 일단 행사가 시작되면 전경을 찍고 연설하는 대통령 사진 몇 장 찍은 뒤 철수하는 게 일상적이었지만, 유일하게 임희순 사진기자는 '어떤 현장이든 항상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고 해서 끝까지 현장에 남아 끝내 엄청난 특종 사진을 얻었다. 당시 위의 사진을 비롯한 총격 후 찍힌 사진들은 거의 다 임희순 기자가 촬영한 것이다.[3] 출처 : 조갑제,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제1권.[4] 전경환 경호관은 10. 26 사건 당시 경호실 경호계장으로, 그날 청와대 본관 당직조였다. 사건이 발생한 직후에 관련 상황을 형인 보안사령관 전두환에게 재빨리 알림으로서 전두환과 보안사령부가 10. 26 이후의 상황을 장악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5] 박선호, 정인형, 안재송, 박상범 모두 같은 과정인 해병간부후보생 (지금으로 보면 해병대 학사장교)출신으로 과정마저 같아 더욱 사이가 돈특했다. 또한 시절이 시절인지라 월남전에서 함께 근무한 직원들도 많았다.[6] 또한 생존 중인 박정희 대통령 측근 중 나이가 젊은 편이며, 건강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7] 정확히는 김일성의 장례식.[8] 실제로 역대 대통령 중 본인은 비리를 저지르지 않았는데 주변 사람들이 사고쳐서 감옥에 가거나 주변 사람들 때문에 자기가 말려들어서 피해보는 경우도 많다. 전자가 김영삼김대중, 후자는 노무현이다. 특히 노무현은 피해가 극심한데, 권양숙 여사의 행실로 인해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계 내에서 작은 어른 대우를 받고 있는 데 반해, 권양숙에게는 육두문자부터 날리는 경우도 흔하여 결국 진영읍 내 다른 집에 숨어버렸다. 윤보선최규하는 대통령으로서 재임 기간이 너무 짧았으므로 논외로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