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6-08-30 00:44:27

박치도

<colbgcolor=#0047a0> 출생 1884년
경상북도 영덕군
사망 1926년
북만주 취원창(聚源昶)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

1884년생이며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이다. 그는 1905년 을사조약 체결 소식을 듣고 분개하여 경북 영덕군에서 신돌석 의병진에 참가해 3년간 의병 활동을 전개했다. 1910년 한일병합이 선포되자 만주로 망명하였고, 1919년 안도현 내도산에 들어가 대한제국군인 및 의병들과 함께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대한정의단(大韓正義團) 임시군정부(臨時軍政府)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19년 9월, 박치도는 안도현에서 조동식(曺東植)·최재용(崔載容)·엄홍구(嚴弘龜) 등과 함께 군자금과 곡식 등을 모금하는 활동을 전개하였다. 1919년 10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권고로 대한정의단이 대한정의군정사(大韓正義軍政司)로 개칭되자, 이에 동조하여 소모과장으로서 소모과 서기 박장석(朴長石)과 함께 활동하였다.

그는 독립군의 양성을 위하여 박동일(朴東一)·계성춘(桂成春) 등 10여 명을 남경군관학교(南京軍官學校)에 파견하였다. 그 후 응원단(應援團)을 조직하고 많은 무기를 구입하여 실력을 배양하던 중 1922년경 무기를 군정서에 인계하는 동시에 헌병대장에 취임하였다.

1923년 박세진(朴世鎭)·유기동·김만수(金萬秀) 등과 함께 북만 취원창(聚源昶)으로 집단 이주하여 활동하다가, 1924년 4월 6일 유기동 등과 함께 하얼빈 총영사관의 순사부장 쿠니요시 세이호(國吉精保)를 처단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유기동·김만수·최모 씨 등이 전사했다. 이후 일제의 추적을 받게 되자 1926년 취원창에서 자결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박치도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