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04 16:16:30

배종순

출생,사망 1890. 2. 28 ~ 1947. 3. 20 경상복도 성주
상훈 건국포장(2014)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독립유공자. 2014년 건국포장을 받았다

2. 생애

1890년 2월 28일 경상북도 성주군(星州郡) 대가면(大家面) 도남리(道南里)에서 태어났다. 호는 경당(敬堂)이고, 한말 유학자인 노상직(盧相稷)의 문인이다. 1919년 3월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청원하는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서명하며 항일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호서와 영남의 유림이 주축이 되어 추진한 파리장서운동은 ‘제1차 유림단(儒林團) 의거’로도 불린다. 이 의거는 1919년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지는 와중에 호서지방의 김복한(金福漢)·김덕진(金德鎭)·안병찬(安炳瓚) 등과 영남의 곽종석(郭鍾錫)·김창숙(金昌淑) 등이 필두가 되어 독립청원서를 작성한 후 파리강화회의에 보내는 것을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파리장서 작성은 곽종석·김복한 외에도 김창숙·곽윤(郭奫)·김황(金榥) 등이 참여하였다. 이 서한은 일제가 강압적으로 한국의 국권을 침탈하였음을 폭로하고, 한국 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었다. 한국인의 독립 의지를 나타내고, 일제에 한국 독립을 선언하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 장서에는 모두 137명이 연서하였는데, 그 중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다.

파리장서를 전달하는 임무는 문안 작성에 참여한 김창숙이 맡았다. 김창숙은 서한을 상하이(上海)로 가져간 이후 당시 상하이에 있던 손진형(孫晉衡)·신규식(申圭植)·신채호(申采浩) 등과 논의한 끝에 직접 파리에 가지 않고, 신한청년당 대표로 파리에 파견된 김규식(金奎植)에게 우편으로 보내 강화회의 의장에게 전달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파리장서는 의장회에게 전달되지는 않았다. 다만, 한문본 3,000부와 영문본 2,000부를 인쇄하여 각국 대표와 공사관으로 발송되었으며, 국내 향교에도 한문본이 우송되어 국내에도 퍼지게 되었다.

이 운동은 청원서의 서명자 중 한 사람인 송회근(宋晦根)이 4월 2일 경북 성주의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면서 발각되었다. 이후 파리장서에 서명한 유림과 관련된 사람들이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이때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4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