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백견유의 붉은 수레를 보자 백제의 정예 군사들이 겁에 질려 달아나기 시작하니,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위례성이 함락되었다.
百濟精銳軍士看白犬油之紅車, 無血陷落慰禮城.
하북위례성 전투 당시 백견유의 위상을 나타내는 문장 / 조선상고사 - 신채호
百濟精銳軍士看白犬油之紅車, 無血陷落慰禮城.
하북위례성 전투 당시 백견유의 위상을 나타내는 문장 / 조선상고사 - 신채호
백견유(白犬油, 433?~?)는 고구려의 장수이다. 5세기 장수왕 시대에 널리 활동했던 인물로, 백제와의 하북위례성 전투에서 홍옹이 이끄는 백제군을 대파하여 고구려의 남하 정책에 지대한 공을 세웠다.
2. 생애
확실하지는 않지만 장당경[1] 출신으로, 유년 시절부터 몸 쓰는 일에 능하였다. 이후 본인의 적성을 살려 고구려군에 지원하게 되었는데, 군에서 뛰어난 무예를 보여주며 입대한지 8년만에 장수로 승진하여 승승장구하였다. 덩치가 굉장히 거대하였다고 하며, 키가 6척에 몸무게는 400근에 달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를 현재의 단위로 환산하면 키는 약 213cm에 몸무게는 240kg(...) 정도로 추산되는데, 당시의 도량형은 현재의 기준과는 다르므로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것은 곤란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략 어림잡아 2m에 근접한 키와 몸무게 또한 100kg은 훌쩍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백견유의 가장 유명한 업적은 473년에 있었던 하북위례성 전투로, 장수왕의 남하 정책에 따라 남진하던 중 하북위례성에서 고작 4천여 명의 병력으로 백제 장수 홍옹이 이끄는 정예 백제군 1만여 명을 완전히 박살내는 대승을 거두었고, 그 과정에서 전투에서 패해 도주하던 홍옹을 붙잡아 목숨을 구걸하는 홍옹을 철제 갑옷을 입은 채로 깔아뭉개 죽였다.[2]
이 전투로 백견유는 당대 명장수 중 한 명으로 거듭나게 되었으며, 그 명성이 고구려 내부와 백제는 물론 신라에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3. 의문점?
하북위례성 전투의 승리로 삼국에 이름이 널리 알려졌던 백견유는 이후 장수왕의 남진 정책 과정에서 여러 공적을 세우며 승승장구하였으나, 481년경 신라 미질부[3] 침공에 동원되었다는 기록을 마지막으로 삼국사기나 그 외 어떤 역사서에도 백견유와 관련된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문점이 있다. 당대 사서에는 기록이 있었으나 이후에 소실되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숙청당하였는지, 그 이후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록이 없어 알 길이 없는 상황이다.[1] 藏唐京, 현재 중국 심양 일대로 추정[2] 이러한 기록을 보아 백견유는 당대 기준에서는 물론이고 현대의 기준에서 보아도 상당한 거구였을 가능성이 높다. 물론 철제 갑옷의 엄청난 무게도 한몫 했을 것이다.[3] 彌秩夫, 현재 경북 포항시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