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백성흠 白聖欽 | |
출생 | 1926년 2월 10일 |
사망 | 1950년 6월 30일 |
서울 한강 일대 | |
복무 | 대한민국 공군 |
최종계급 | 공군 소위 |
복무 기간 | ? ~ 19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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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백성흠(白聖欽, 1926년 2월 10일 ~ 1950년 6월 30일)은 대한민국의 6.25전쟁 참전 군인이다.2. 생애 및 군 경력
백성흠은 1926년 2월 10일 출생하였다. 대한민국 공군에 입대하여 조종사로 복무하였으며, 6.25 전쟁 발발 당시 공군의 주력 연락 및 정찰기인 L-5기에 탑승하는 조종사였다.6.25 전쟁 발발 후, 북한군이 한강을 넘어 서울을 점령한 뒤 빠르게 남하하고 있었다. 당시 대한민국 공군은 정찰기 L-5와 훈련기 T-6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항공 정찰을 통해 적의 동향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상황이었다.
1950년 6월 30일, 이경복과 백성흠은 한 조가 되어 수원기지에서 이륙하였다."북한군이 한강철교를 이용해 탱크를 도하시킬 가능성이 있다. 적의 움직임을 보고하라!"는 명령을 받고 한강 상공 및 한강 이남 지역을 정찰하였다. 흑석동 상공에서 한강철교를 중심으로 정찰하던 중 북한군 탱크 수십 대와 대규모 병력을 발견하였다.
정찰 도중, 북한군의 대공사격을 받아 기체 일부가 피격되었으나, 이경복·백성흠은 끝까지 임무를 수행하며 수원기지로 적진 상황을 무전 보고하였다.
그들의 보고를 받은 아군은 미 제5공군 전투기 4대를 긴급 출격시켜 한강철교 인근 북한군 탱크 및 지상군을 폭격하였다.
이 공습으로 인해 북한군의 한강 도하를 지연시키는 데 성공하였고, 아군의 철수 및 미군 참전 준비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무전 보고 후, 기지에서 복귀 명령이 내려졌으나, 기체 손상이 심해 복귀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경복·백성흠은 결국 적진을 향해 비행기의 기수를 돌렸다.
잠시 후, 한강철교 인근에서 거대한 폭음과 함께 그들의 비행기는 적진에 충돌하였고, 두 사람은 장렬히 산화하였다.
그들의 희생으로 인해 아군은 적의 남하를 저지할 수 있었고, 수많은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이경복·백성흠 소위의 희생과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51년 9월 28일 1계급 특진과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또한 2016년, 대한민국 국가보훈처는 그를 "6월의 6.25 전쟁영웅"으로 선정하였다.
3. 공훈
해군 하사 1계급 특진 (1951년 9월 28일, 사후 추서)충무무공훈장(1951년 9월 28일, 사후 추서)
국가보훈처 이달의 6.25전쟁영웅(2016년 6월)
4. 참고 자료
공군본부, "공군사", 2011.2공군본부, "6·25전쟁 증언록", 2002.2
대한민국 국가보훈처, "6.25 전쟁영웅 이경복·백성흠 공군 소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