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6-10 18:01:40

버디 로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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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URE BOY' BUDDY ROGERS

1. 프로필2. 개요3. 커리어4. 사망5. 기타6. 둘러보기

1.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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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WA 명예의 전당 헌액자
WWE 명예의 전당 헌액자
본명 허먼 구스타브 로드 주니어
(Herman Gustav Rohde Jr.)
링네임 Buddy Rogers
Dutch Rogers
Herman Rohde
별칭 Nature Boy
출생일 1921년 2월 20일
사망일 1992년 6월 26일 (향년 71세)
출생지
[[미국|]][[틀:국기|]][[틀:국기|]] 뉴저지 캠던
신장 183cm
체중 107kg
피니쉬 무브 파일드라이버
넥 브레이커
피겨 포 레그락
주요 커리어 A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시카고 버전) 1회
A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오하이오 버전) 3회
AWA 이스턴 스테이츠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헤비웨이트 챔피언(노스이스트 버전) 1회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태그팀 챔피언(노스이스트 버전) 2회
MWA 오하이오 태그팀 챔피언 4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몬트리올 버전) 3회
NWA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헤비웨이트 챔피언(시카고 버전) 1회
NWA 미드아메리카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
NWA 월드 태그팀 챔피언(샌프란시스코 버전) 1회
NWA 노스 아메리칸 헤비웨이트 챔피언(애머릴로 버전) 1회
NWA 텍사스 헤비웨이트 챔피언 7회
NWA 텍사스 태그팀 챔피언 1회
W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 1회[1]
메릴랜드 이스턴 헤비웨이트 챔피언 3회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잭페퍼 버전) 4회
테마곡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 교향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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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요

미국의 전 프로레슬러. 초대 WWWF 월드 헤비웨이트 챔피언으로 유명하다.[2]

3. 커리어

원조 " 네이쳐 보이" 버디 로져스는 가장 창의적이고, 재능있는 프로레슬러로 유명하면서도 비열하고, 악랄한 챔피언으로도 악명이 높은 그런 레슬러였다.

그는 프로레슬링의 황금기였던 1950년대와 1960년대의 초특급 슈퍼스타 중 가장 으뜸에 서있는 선수였다. 버디 로져스는 두 번의 월드 타이틀 획득을 포함해 무수히 많은 타이틀을 손에 넣은 바 있고, 1970년대와 80년대엔 매니저로써 또한 명성을 떨친 바 있다.

그는 처음에 본명인 허만 로드로 프로레슬러 생활을 시작했지만, 나중에 " 네이쳐 보이" 란 닉네임을 얻어 아예 네이쳐 보이란 링 네임으로 활약한 바 있다.

그는 태그팀 디비젼과 싱글 디비젼에서 모두 활약했었는데, 그 어느 쪽에서도 정상에 오르지 못한 적이 없었을 만큼 기량이 출중했다고 한다.

그는 1961년 6월 30일에 팻 오 코너란 선수를 물리치고 NWA 타이틀을 거머쥠으로써 처음으로 월드 타이틀을 따냈다.

그가 챔피언으로 올라있는 동안, 여러 프로모터들은 그를 최고의 흥행카드로 여겨 그를 유치하기에 바빴다고 한다. 이 때문에 그는 1주일에 무려 다섯 차례의 방어전을 치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1년여 넘게 타이틀을 지켜왔었다.

그러나 1963년 1월 24일, 그는 토론토에서 루 테즈에게 패해 타이틀을 넘겨주고 말았다. 3전 2선승제로 펼쳐진 이 경기는 논쟁의 여지가 많았지만, 판정이 번복되지는 않았다. 루 테즈가 챔피언에 오르자 많은 지역의 프로모터들이 그 판정에 불복하고 비난을 퍼붓기도 했다고 한다.

이들 판정에 불복한 프로모터들은 제휴를 통해 새로 WWWF 이란 단체를 설립했는데, 버디 로져스는 초대 WWWF 챔피언에 등극하는 영광을 누렸다. 로져스는 브루노 삼마르티노에게 타이틀을 내주기까지 6개월 동안 타이틀을 성공적으로 방어해 냈다고 한다.

버디 로져스는 사상 최초로 NWA와 WWF 월드 타이틀을 획득한 선수로 더욱 명성을 드높이게 되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그의 뒤를 이어 NWA와 WWF 월드 타이틀을 획득한 선수는 바로 그와 같은 닉네임을 가진 " 네이쳐 보이" 릭 플레어 였다.

릭 플레어는 어렸을 적부터 버디 로져스를 자신의 우상으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버디 로져스의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릭 플레어는 프로레슬러로 데뷔해서 버디 로져스와 같은 닉네임을 썼고, 피니쉬도 그처럼 피겨 포 레그락을 썼다고 한다.

1979년에 중부 대서양 지역의 단체에서 플레어는 탑 힐로 군림하고 있었는데, 그는 버디 로져스에게 이른바 배틀 오브 더 네이쳐 보이(Battle of the Nature Boy - Nature Boy란 닉네임을 차지하기 위한 다툼)를 제안했다. 그들은 닉네임뿐만 아니라 누가 피겨 포 레그락을 피니쉬로 사용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고 한다. 버디 로져스는 자못 당돌한 후배를 맞아 선전했지만, 너무 나이를 많이 먹은 탓에 젊은 릭 플레어에게 패하고 말았다.

플레어와의 퓨드 이후, 버디 로져스는 현역에서 완전히 은퇴하여 매니저로만 활약했다. 그는 지미 스누카, 진 앤더슨 등의 매니저를 맡으면서도 악행을 일삼아 팬들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비록 더 이상 메인 이벤터가 아니었지만, 그는 항상 여론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었다.

버디 로져스는 스누카가 WWF를 떠나자 잠시 TV에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얼마 뒤 다시 WWF에 돌아와 로져스 코너란 간판을 달고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 무렵 역시 WWF에 돌아와 있던 지미 스누카가 하루는 로져스 코너에 출연해 인터뷰를 가졌는데, 캡틴 루 알바노란 이가 그 자리에 나타났다. 버디 로져스는 스누카가 캡틴 루 알바노와 불공정 계약을 맺고 있다는 사실을 스누카에게 주지시켜 주고 함께 힘을 합쳐 알바노를 혼내주려 했다. 이를 계기로 버디 로져스는 지미 스누카의 매니저로 다시 한 번 활약하게 되었다.

이후 얼마간 스누카의 매니저로 활약하던 버디 로져스는 헐카매니아가 태동하기 직전 무렵해서 프로레슬링계를 떠나 새로 플레이보이 카지노의 매니저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끝내 프로레슬링에 대한 열정을 지우지 못하고 70의 노구를 이끌고 3세대 네이쳐 보이를 칭하던 버디 란델란 선수와 ECW의 전신인 TWA란 단체에서 대립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 그는 1992년 6월 26일,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4. 사망

1992년 6월 26일, 71세를 일기로 심장질환 및 각종 합병증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그리고 사후 2년째 되던 해인 1994년, 브렛 하트의 도움으로 WWE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5. 기타

별명은 ‘네이쳐 보이’이며 이 별명은 고관절 부상으로 인해 은퇴하기 직전까지 사용되었다. 상술했듯 버디 로저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은 릭 플레어 또한 네이처 보이로 불리기 때문에 구분을 위해 오리지널 네이처 보이로도 불린다.

테마곡은 베토벤 교향곡 제5번 운명이며, 초창기 텔레비전 시대의 최고의 레슬링 스타로 불리었다.

상당한 실전 강자다. 사망하기 2년 전인 1989년, 한 샌드위치 가게에서 젊고 건장한 남성 두 명과 시비가 붙어 그 중 한 명을 반죽음 상태로 만들었다. 싸움의 사유는 두 남자가 여성 직원에게 폭언을 날리고 있던 것을 버디 로저스가 저지했는데, 이에 남자들이 버디 로저스를 늙은이라 부르며 시비를 걸어왔기 때문이였다.

남자가 버디 로저스에게 의자를 던지는 등 저항을 했으나 버디 로저스는 남자를 벽에 몰아붙이고 수 차례 공격하는 등 거의 일방적 폭행에 가까운 우위를 점했다.

당시 버디 로저스의 나이 68세, 남자들은 20대였다. 물론 버디 로저스도 머리를 14바늘이나 꿰매야 하는 부상을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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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드라이버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6. 둘러보기

파일:WWEHOF.jpg
1994년 WWF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프로레슬링 옵저버 로고.png
1996년 레슬링 옵저버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jpg
2002년 프로레슬링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NWA 명예의 전당.jpg
2010년 NWA 명예의 전당 헌액자


[1] 초대 챔피언[2] 다만 챔피언 자리는 WWWF로부터 수여받았는데 이미 당시 버디 로저스는 명성높은 전국구 레슬러였기 때문에 WWWF가 그 명성을 이용하려고 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실제로 버디 로저스의 챔피언 제위 기간은 얼마 되지 않으며 금세 부상으로 그 자리를 브루노 삼마르티노에게 물려주게 된다. 그래서 진정한 WWE 역사상 초대 챔피언으로 삼마르티노를 꼽는 이들도 적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