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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로

파일:변영로.jpg

卞榮魯
1898년 6월 27일 ~ 1961년 3월 14일 (향년 62세)

1. 개요2. 생애3. 여담

1. 개요

대한민국시인, 교육자이다. 변영만 변호사와 변영태국무총리의 동생, 페미니스트 변진수의 아버지이다. 초명은 변영복(卞榮福), 호는 수주(樹州)이다.

2. 생애

1898년 한성부 회현방(현 서울특별시 중구)에서 태어났고 원적지는 경기도 부천시 고강동이다. 계동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사립 중앙학교에 재학하다 중퇴하였다.[1] 이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학교 영어반 과정을 수료하였다.

1918년 청춘에 영시 코스모스(Cosmos)를 발표하면서 시인으로 활동하였다. 이후 논개 등의 시를 발표하였다.

1923년에 이화여자전문학교 강사로 근무하였다. 1931년 미국으로 유학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중퇴하였다. 이후 귀국하여 동아일보 기자 등을 지냈다.

8.15 광복 후 1946년에 성균관대학교 영문과 교수, 1950년에 해군사관학교 영어교관을 역임하였다. 1953년 대한공론사 사장을 지냈다.

1961년에 후두암으로 타계하였다.

3. 여담

  • 5~6세 부터 음주를 시작해 당대에 애주가로 유명하였다. 1935년 이화여전 강사로 근무할 당시 제자와 재혼한 후 일간지에 금주를 하겠다고 글을 남겼으나, 이듬해 아들이 태어나자 기념으로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해 아내가 이혼을 요구할 정도였다고 한다.
  • 1920년 대에는 염상섭, 오상순, 이관구 등과 가불받은 원고료로 성북동 산골짜기에서 술을 마시고 옷을 벗은 채 소를 타고 혜화동 로터리까지 내려와 가족들이 데려갔다고 한다. 당시 일화는 그의 음주 일화를 수록한 수필 '명정 40년'에 실려있다.
  • 배우 최불암의 어머니가 운영하던 선술집 '은성'의 단골로 그 곳에서의 일화가 여럿 전해진다. 최불암이 대학에 합격하자 마시던 잔에 술을 따라주었고, 최불암은 술을 마시고 돌려드리기 위해 잔에 남은 술을 바닥에 털었다. 그러자 대뜸 뺨을 때리며 호통을 쳤는데 당시 받은 술은 막걸리였고, 귀한 쌀로 만든 술을 바닥에 버려서 혼을 낸 것이었다.
  •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인 이용상과도 친분이 있었다. 이용상은 1950년 대에 국방부 보도과장, 1960년 대에는 국립극장장을 역임할만큼 언론, 문화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었고, 당시 유명한 주당으로 문인들과도 가까웠다. 수주의 사후 상복을 입기를 청해 수주의 부인이 직접 상복을 지어줬으나, 형인 변영태의 반대로 입지 못했다.
  • 술집 은성에 전용 머그잔이 있었는데, 수주의 사후 이용상이 은성의 사장에게 부탁해 머그잔을 받아 소장하였다.

[1] 중앙교우회에서는 6회 졸업생으로 대우하고 있다.